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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 콘텐츠 [1.5] 성불하였습니다. 안드로이드 넷러너
  • 2023-02-13 20:03:09

  • 7

  • 533

Lv.31 [개굴이]
​-1. 
이 글은 2018년 보드라이프에 작성했던 글을 재작성한 글입니다.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많이 변해서 반 쯤은 새로 썼네요.



0. 
대단한 글쟁이는 아니지만, 보통 리뷰를 쓸 때에 바로 게시판에 쓰는 일은 잘 없습니다.
게임을 하다가 리뷰를 하고 싶은 게임이 생기면, 그 게임을 최소 5회플, 되도록이면 10회플 이상 해 보고,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진 뒤, 태블릿을 들고다니며 아이들이 자습하는 동안 틈틈이 보통 1주일, 길 때엔 두 달 정도 글을 쓰죠. 그리고 어느정도 완성되었다면 게시판에 붙여넣어서 다시 한 번 가다듬고, 마지막으로 필요한 사진들을 넣으면서 3차로 코멘트를 다는 형식으로 작성하는 편입니다. 정신상태가 워낙에 산만한 편이다 보니, 이런식으로 퇴고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제가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는 괴랄한 글이 나오더라고요.

하지만 이 게임은 조금 저에게 특별합니다. 무려 리뷰를 2018년 기준 1년 넘게 5번 가량 갈아 엎으면서 가다듬고 가다듬고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6번째로 리뷰를 갈아엎은 후 어떤식으로 가다듬어도 도저히 제 필력으로는 이 게임에 대한 저의 생각을 다 담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왜인지 모르겠어요. 설명하기 어려운 게임도 아니고, 특징도 확실하고 개성도, 장단점도 모두 똑부러지는 게임인데 아무리 열심히 써도 게임에 대해 제 마음을 오롯이 전달할 수가 없더라고요.


▲ 한계가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과감하게 그냥 게시판에다가 의식의 흐름대로 썰을 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전 이 게임을 감히 <리뷰>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게임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넷러너와 함께한 저의 이야기에 가까울 것 같아요. 그럼 꼬!
 


1. 
중학교때 언저리였던 것 같습니다. 집 안에 어딘가에서 굴러다니던 무슨 잡지에서 매직 더 개더링이라는 카드게임에 대한 만화를 봤던게요.
당시 즐길거라곤 워크맨으로 음악 듣는 것 정도였던 저에게 MTG 라는 카드게임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는 분들은 아재 강제인증인겁니다.

하지만 경기도 평택, 그 중에서도 구석진 동네에서 쥐불놀이를 하며 자라던 소년에게 저런 게임은 너무나 큰 신문물이죠. 재미있어 보이는 물건이 책 속에서 유혹하고 있지만 그걸 사달라고 엄마에게 얘기했다간 그 책으로 등짝을 맞을건 불보듯 뻔한 일. 아쉬운 마음으로 그렇게 15살의 개굴...아니, 올챙이는 MTG를 머릿속 한 켠의 서랍에 고이 넣어둡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때는 2001. 문명3라는 타임머신이 발매되고, HOT가 해체되고, 짱구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을 보면서 전일본이 눈물을 흘리던 격동의 2001. 이제 뒷다리 정도 자라난 개굴이는 어찌보면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을 지도 모르는 악마같은 친구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 악마의 손에는 매직 더 개더링, 그 MTG가 들려있었지요. 

그 악마는 저의 귀에 달콤한 말을 소근거렸습니다. "MTG? 택배로 얼마든지 덱을 구할 수 있단드아...드아...드아..."
저는 그 속삭임에 홀린듯 용돈을 모아모아 3만원짜리 번덱을 손에 쥐게 됩니다. 어머니 몰래요.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더 좋은 카드를 구매하려고 용돈을 다시 모으기 시작하고, 학교 사물함에 책대신 카드를 쌓아놓게 되고, 남는 카드를 친구들에게 뿌리고, 교무실에 불려가고, 어머니께서 불려오시고...(이하 생략)

아무튼 이 아이는 그리고, 대학물을 먹고 자취를 하며 아그리콜라를 시작으로 보드게임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하고요, 친구들을 자취방에 불러모아 약 50여판의 푸코 리그를 열기도 하고요,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만지기 시작한 이후로 보드게임을 사모으기 시작했고요, 지금은 소소하게 벽장 한 칸 정도를 보드게임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이 모든걸 30년 라이브로 아들육성 게임을 하던 어머니의 얼굴에는 "배드엔딩" 이라는 표정이 가득.

자 자, 시간을 잠시 뒤로 돌려 2016년즈음이었던가요, (구) 다이브다이스에 라이카 라는 분의 만화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짜잔, 잠시 후 정신차리고 나니 지갑에서 4만원 가량의 돈이 사라졌더라고요.
그리고 며칠 후 경비실에서 연락이 와서 내려갔더니 저를 기다리던 게임이 바로 오늘 이야기 할 게임, 안드로이드 넷러너(이하 넷러너)입니다.
 -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넷러너의 제작에 MTG의 제작사인 리처드 가필드가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소오름. 
 


2. 
그래서 저 넷러너가 무슨게임이냐, 간단히 말하면 유희왕 같은 게임입니다. 
플레이어 둘이서 서로 40~50장 가량으로 이루어진 덱을 짜서 누가누가 짱센가 지지고 볶고 싸우는 게임이죠. 더 길게 이야기 하고 싶지만 일단은 이정도.

▲대충 이런 게임입니다. 아뇨, 진짜라니까요?

 

3. 
넷러너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이라면, 상대를 농락할 수 있다는 부분입니다. 뭐 대부분의 덱짜서 들이박는 게임에는 상대가 상상도 못한 날빌덱을 짜서 통수를 때리는 재미는 있지만, 넷러너의 경우 조금 다른 느낌의 농락이에요. 바로 넷러너의 가장 큰 특징인 비대칭성 때문입니다. 넷러너는 두 명의 플레이어가 한 명은 기업, 한 명은 러너(해커)가 되어서 누군가 먼저 7점을 먹으면 되는 게임인데, 기업은 자신의 덱에 포함되어있는 점수카드를 설치한 다음 시간과 돈을 들여서 <완성> 시켜 득점하고, 러너는 기업이 완성중인 카드를 훔쳐가서 득점을 하거든요.

이 과정에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뒤로 내려놓은 카드가 점수카드인가 아닌가에 대한 심리전이 나타나는데 이 심리전이 아주 진국입니다.

예를들어 1턴에 아무런 방어도 없이 바로 뒷면으로 카드를 내려놓은 상대. 과연 저건 무슨 플레이일까요?
저의 소극적인 대응을 기대하고 제가 확인을 안하면 2턴째에 바로 득점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걸 대비해서 한 번 찔러볼까요?
하지만 저의 소극적인 플레이를 예상한 플레이라고 예상한 저의 찔러보기를 예상한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보지 말아야 할까요?
하지만 저의 소극적인 플레이를 예상한 플레이라고 예상한 저의 찔러보기를 예상한 함정이라고 예상한 날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역시 열어볼까요?
하지만 저의 소극적인 플레이를 예상한 플레이라고 예상한 저의 찔러보기를 예상한 함정이라고 예상한 날빌이라고 예상한 플레이를 예상한 함정일수도 있겠군요.

 
▲ 함정을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한 플레이를 합니다.

이런 심리전이 게임 내내 이루어집니다. 사실 넷러너의 가장 큰 아이덴티티가 저러한 "이게 뭐게?"와 "저게 뭘까?" 라는 플레이 흐름이에요. 



4.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변에 넷러너 유저를 확보하려는 저의 플랜은 항상 실패로 돌아가고는 합니다.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요,

먼저 카드를 많이 알 수록 재미있다는 부분입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카드를 적게 알면 재미가 반감되고요, 한 두판 만으로는 게임을 온전히 즐길 수 없어요. 유희왕이나 포켓몬카드, MTG나 요즘이라면 아딱을 해보신 분은 알겁니다. 이러한 카드게임은 덱을 플레이하는 맛도 맛이지만, 덱을 짜는 맛도 큰 비중을 차지하잖아요. 그러다보니 게임을 가지고 있지 않은 ( = 게임을 몇번 안해본 = 카드를 잘 모르는 = 덱을 짤 일이 없는)유저들은 저 큰 비중을 즐기지 못하니 영업이 쉽지가 않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넷러너는 내 게임이 없으면 반의 재미도 느낄 수 없어요.

그리고 1:1이라는 것도 단점. 모임에서 1:1 할 각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여섯이 만나면 보통 3-3으로 쪼개져서 게임하지 넷이 게임하고 둘이 1:1로 게임하지는 않잖아요?

 


5. 
하지만 있잖아요, 글을 리뉴얼중인 2023년 현재, 저 단점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야호!!

일단 카드에 대한 문제는 NISEI프로젝트가 해결해줬습니다. 혹시 넷러너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생긴 여러분 이거 집중하세요!! 
현재 넷러너는 판권을 갖고있는 FFG에서 더이상 확장을 발매하고 있지 않습니다. 넷러너는 더 이상 Living Card Game이 아니에요...흑흑. 하지만 팬들이 힘을모아 NISEI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 NISEI는 간단히 말하면 팬메이드 넷러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돈을 주고 정식제품 퀄리티의 게임세트를 구매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무료로 PNP를 공개하고 있어요. 인쇄해서, 오리고, 안쓰는 카드에 플텍과 함께 넣으면 여러분도 넷러너 오너!!

이렇게 카드에 대한 문제는 해결했고.... 할 사람에 대한 문제는....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아리에서 해결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어머 얘들아 선생님이 까라면 까야지. 오늘은 넷러너 하는 날이야 :D

애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넷러너를 막 돌리면서 아쉬워하고 환호하고 덱튜닝하고 하는데 막 기분이 좋고 막 ㅋㅋㅋㅋ
추가로 쓸 수 있는 카드 출력해주면 안되냐고 먼저 와서 얘기하는데 괜히 막 으쓱으쓱하고 ㅋㅋㅋㅋㅋ
저요? 아이들이 스스로의 실력에 자만이 생길 때 쯤 강림해서 한 번씩 눌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충 다른 친구가 짠 덱으로요. ㅋㅋㅋ 
친구들아 30대의 심리전을 얕보지 말라구!!

  

6. 
최근들어 사이버펑크 2077이 게임으로 나오고, 이와 관련된 엣지러너 애니메이션도 흥행을 해서 사이버펑크와 관련된 테마가 이슈가 되고 있죠? 이걸 접한 학생들이 더 몰두해서 플레이 하는걸 보면 꽤 뿌듯합니다. 아끼는 게임을 다른 사람이 즐겁게 플레이해주는건 좋은 기분이더라고요.

이렇게 2002년 재학중인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MTG를 뿌리며 전도하던 소년은 2023년 재직중인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NISEI를 뿌리며 전도하고 있습니다. 아아아아주 행복해요. 이제야 저는 주변사람들에게 무리해서 넷러너를 전도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게 바로 성장일까요 ㅋㅋㅋㅋ

이제 차가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올 겁니다. 저희 아이들도 조금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오겠죠. 그리고 그 때, 저는 그 친구들에게 다시 한 번 얘기할겁니다. 


▲ "얘들아, 오늘은 확장 가져왔는데 NISEI 한판 하지 않을래?"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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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드로이드 넷러너
    Android: Netrunner (2012)
    • Bruno Balixa, Ralph Beisner, Del Borovic, Adam S. Doyle, Amelie Hutt, Thomas Lishman, Henning Ludvigsen, Ed Mattinian, Dallas Mehlhoff, Adam Schumpert, Mark Anthony Taduran, Matt Zeilinger
1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Junebug
    • 2023-02-13 20:18:45


    과거에 유희왕을 해서 이런 짤을 알고 있지만 아실 분이 있을려나... ㅠ

    함정을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한 플레이를 합니다. 이 부분이랑 짤이랑 정말 잘 맞군요 ㅋㅋㅋㅋ

    보라에서도 개굴이님 글을 재밌게 읽었는데 이제 다다에서도 활동하시는군요 ㅎㅎㅎ
    • Lv.31 [개굴이]
    • 2023-02-13 20:52:44

    넷러너에서도 저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ㅋㅋ
    저는 첫 턴에 기업으로 방화벽 없이 서버에 카드만 덜렁 설치해놓고
    "이게 깡좋게 점수카드를 설치한건가... 아니면 밟으면 터지는 함정인가" 라는 이지선다를 거는게 재밌더라고요 ㅎㅎ

    앞으로 다이브다이스에도 병행해서 글 올리려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 Lv.11 라퓨타_파즈
    • 2023-02-13 22:48:13

    저도 넷러너를 제대로 해보고 싶은데 아직 기회가 없네요 ㅠㅠ
    환경이 부럽습니다 ㅎㅎ
     
    자신이 재밌게 즐기는 것도 좋지만 좋아하는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뭔가 뿌듯하고 즐거운 것 같아요 ㅎㅎ
    • Lv.31 [개굴이]
    • 2023-02-14 09:02:40

    2인게임이 의외로 할 기회가 잘 안생기죠...
    • 관리자 신나요
    • 2023-02-14 08:01:25

    다이브다이스에 잘 오셨습니다. 넷러너 리뷰라니 너무나 반갑네요. 요즘 사이버펑크 2077을 하다 보니 친숙한 용어들이 나와서 반가운데 혼자 속으로 'NBN 어디갔냐아' 이러고 있었더랬습니다... '니가 그럴 줄 알고'의 연속인 게임이라 참 흥미진진했죠.
    • Lv.31 [개굴이]
    • 2023-02-14 08:59:35

    크으...이럴 때 CDPR이랑 FFG랑 사이버펑크 콜라보 ID같은거 내주면 딱인데 말이에요!!
    • Lv.47 채소밭
    • 2023-02-14 12:46:13

    아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는 개굴이님 글이 너무 좋아요!! 라이카님 만화도 다시 보고 이 리뷰까지 읽으니 넷러너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는군요. 예상할걸 예상할걸 예상할걸에서 빵 터졌어요 ㅋㅋㅋㅋ 1:1 대전 게임들은 그런 느낌이 있나봐요. 벚꽃결투에서 쪼끔 느껴본 맛이에요 ㅋㅋ
    • Lv.31 [개굴이]
    • 2023-02-14 18:10:27

    1:1 카드게임은 진정한 듀얼리스트들의 전장입니다.... 야생이에요 완전!
    • 관리자 [GM]언테임드
    • 2023-02-15 13:43:00

    카드게임을 엄청 좋아하니까 안드로이드 넷러너도 손댈까말까 엄청 고민하다가 결국 이건 참자.. 했는데 이런 글은 볼 때마다 매번 그 결정을 돌이키게 만드네요 ㅠ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 Lv.31 [개굴이]
    • 2023-02-15 23:33:27

    카드게임을 좋아하신다면..... 와 안넷러너하시죠???
    니세이 무려 한글판도 있습니다!!
    • Lv.53 상후니
    • 2023-02-18 14:00:44

    매직 더 게더링 영어도 제대로 못읽고 룰도 모르면서 구매해서 마음대로 몇번 했다가 접은 기억이 나네요ㅠㅠㅋㅋㅋ
    넷러너 재미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글 읽으니까 더 재미있어 보이네요ㅎㅎ
    • Lv.31 [개굴이]
    • 2023-02-18 15:42:11

    제 글은 넷러너의 재미를 50%도 담지 못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게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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