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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게임 회고록]제3화. 패스파인더 어드벤처 카드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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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9 07:3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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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신나요
누군가는 소장한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지금은 단종되어 달리 구할 길이 없어진 게임들을 하나하나 추억하며 곱씹어 봅니다.
경험과 기억에 의존하여 쓰는 글입니다. 부정확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므로, 댓글로 알려주시면 가능한 한 수정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본 게시글의 사진은 직접 촬영하였거나 보드게임긱에 올라온 이미지를 활용한 것입니다.
D&D는 아마 유명해서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패스파인더를 얼마나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잘 아는 건 아닙니다만, 알아본 바로는 D&D 3판의 계보를 잇는 TRPG 시스템이라고 하는군요. 파이조(Paizo)에서는 패스파인더와 스타파인더 두 TRPG를 주축으로 다채로운 상품을 유통하고 있습니다. 그런 파이조에서 2013년부터 오랫동안 출시해 왔던 게임, 바로 패스파인더 어드벤처 카드게임이 2019년 진홍 왕좌의 저주 확장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신제품 출시를 하지 않는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정말 좋아하고 재미있게 즐긴 게임이라, 이 게임의 단종 소식을 접했을 때 안타까운 마음이 컸는데요. 공홈에서 할인도 크게 하곤 했던 걸 보면 재고를 정리해 가고 있는 듯합니다. 사실 그런 지 제법 오래 되기는 했지만요(그리고 대부분의 물건을 여전히 구할 수 있기는 하지만요 ㅎㅎ).
반복적인 플레이가 지루하다 등의 평가를 하는 분들도 있고, 내러티브가 부실하거나 약한 편이기도 하고, 하나의 캠페인을 다 즐기기 위해 들여야 하는 비용도 높습니다. 그러나 D&D의 팬이라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많이 가진 게임입니다. 같은 주사위를 사용하고, 시리즈에 있던 영웅들과 마법, 적 등이 두루 출현합니다. 카드게임으로서는 모험과 파밍, 캐릭터 육성의 매력을 꽤 잘 살렸다고 생각해요. 오늘은 그 패스파인더 시리즈에 대해 간단하게 짚어가 보겠습니다.
플레이어 인원수가 몇 명이든 간에 총 30라운드가 진행됩니다. 그 30라운드 동안, 앞에 깔려 있는 여러 개의 장소 덱 중 한 군데를 가서 그곳을 탐험합니다. 탐험한 카드가 이득이 되는 것들(무기, 방어구, 마법, 동료, 아이템, 축복)이라면 그것을 획득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고, 해악(괴물, 장애물)이라면 그것을 제압해야 합니다. 각 장소에는 악당이나 그 악당의 추종자인 부관들이 들어 있는데, 일반적인 시나리오 목표는 해당 시나리오의 여러 장소 중 한 군데에 들어 있는 악당을 찾아내어 물리치는 것입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도울 때는 굴리는 주사위를 추가해 주거나 주사위 결과값에 보정을 해 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한 번의 테스트에서 주사위를 2개에서 대여섯 개까지도 굴리고요. 굴리는 주사위 개수가 많아질수록 성공 가능성도 올라가겠죠. 물론 주사위 여섯 개를 굴려서 1 1 1 2 2 3이 나온다면 그건 그것대로 가슴이 아픕니다만…(실화에 기반을 한 예시로서…)
덱이 체력이 되는 시스템도 저는 이 패스파인더에서 처음 접했는데요. 대략 20장 정도의 카드를 가지고 시작합니다. 덱에 있는 이 카드가 다 떨어지면 캐릭터는 탈락합니다. 적에게 공격받으면 그 피해만큼 손에서 카드를 버리는데요. 손에 들린 카드 장수 이상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마법사는 손에 들 수 있는 카드 장수가 많고 전사는 적은 편입니다. 즉, 마법사는 다재다능하지만 공격에 죽을 가능성도 그만큼 높죠. 전사들은 자신의 차례에 활용할 수 있는 카드 장수가 많지 않아서 행동 수는 적지만 카드를 버리면서 행동하는 경우도 많지 않고, 손 크기가 작기 때문에 적의 공격이 들어와도 체력이 쉽게 깎이지 않죠.
시나리오가 끝나면, 그 시나리오에서 획득한 이득이 되는 것들을 잘 추려서 기존 덱의 카드와 맞바꿉니다. 그렇게 덱을 키워가는 것이기 때문에, 디아블로식 파밍의 맛이 살아 있죠. 그리고 시나리오 보상으로 캐릭터의 능력을 하나하나 해금해 갈 수 있습니다. 능력값이 올라갈 수도 있고, 특수한 능력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레벨링의 느낌은 제법 잘 살렸습니다. 사실 자기 캐릭터를 보유하고 플레이하는 게임에서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맛은 아주 중요한데요. 처음에 하나 둘 찍을 때는 모르지만 몇 개 특기 찍고 나면 확연히 느낌이 다릅니다. 게다가 게임 중반에서는 캐릭터 전직까지 있죠. 두 개의 성장 라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겁니다.
각 시리즈별로도 특색이 있습니다. 맨 처음 나왔던 룬로드의 부활(Rise of the Runelord)은 마을에 쳐들어온 고블린들을 해결한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첫 모험다운 맛이 돋보이는 어드벤처 패스(캠페인과 같은 개념으로 보시면 됩니다)입니다. 두 번째 출시된 어드벤처 패스인 해골과 쇠고랑(skull and Shackles)은 바다를 누비는 해적의 싸움을 표현했습니다. 세 번째 출시된 의인의 분노(Wrath of the Righteous)는 지옥의 문이 열려서 쏟아져 나오는 악마의 군단들에 맞서, 신의 힘을 빌어 싸우는 영웅적 모험담을 잘 구현했죠. 그리고 이들 각 시리즈의 장점들을 모두 아울러서 출시했다고 하는 어드벤처 패스가 바로 미라의 가면(Mummy’s Mask)입니다. 저주와 함정 등이 들어 있는 어드벤처 패스로, 각 어드벤처 패스가 저마다의 색깔을 확실히 담고 있어서 흥미진진했습니다.
패스파인더의 단점은 초반에 잠깐 언급했는데요. 또 한 가지 중요한 단점이, 시나리오 개수가 좀 많다는 거였습니다. 하나의 어드벤처 패스를 다 모으면 총 36개 시나리오(프롤로그격의 독립 모험 하나를 더 포함한다면 39개)를 진행하는 대장정인데요. 한 시나리오의 세팅과 플레이에 1시간 반 가량 소요되니, 이 패스 하나를 주파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거였죠. 게임 플레이 자체는 심플하다 보니, 단순한 모험과 주사위 굴림이 36개 시나리오 동안 반복되는 것은 방대한 캐릭터들이 놀라울 정도로 각자의 특색을 보유하고 있어서 그걸 다 즐긴다 하더라도 길었습니다.
디자이너 본인도 어느 시점에서 다른 단점들을 더 거론했습니다. 하나의 패스를 즐기기 위해 들여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어드벤처 패스 하나는 본판 1부, 시나리오 팩 5개, 추가 캐릭터 세트 팩 1개로 총 6개를 구매해야 했고, 이를 다 구매하면 어드벤처 패스 하나 완결시키는 데에만 150달러 정도 들었을 겁니다)는 점, 그런데 패스가 달라지더라도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마법(대표적으로 힐링)이나 적들이 있다 보니 불필요한 카드 중복을 막을 수 없다는 점 등을 거론했죠.
그리고 2019년. 새로워진 패스파인더 시리즈가 나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패스파인더 어드벤처 카드게임 코어 세트입니다. 코어 세트와 함께 출시된 첫 번째 확장이 진홍 왕좌의 저주(Curse of the Crimson Throne)이고요. 베이스 세트 때의 제품군은 하나의 어드벤처 패스가 베이스 세트 하나에 시나리오 팩 다섯 개를 붙여서 완성되는 방식이었고, 각 어드벤처 패스끼리는 서로 호환이 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했습니다. 그런데, 코어 세트가 출시되면서 코어 세트와 어드벤처 패스를 항상 섞어 쓰게 되었습니다. <아컴호러 카드게임>이 새 캠페인을 늘 코어 세트와 함께 섞어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가격도 저렴해졌고, 중복 카드도 없어졌습니다.
게임 내적으로도 꽤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더 좋게 보는데요. 우선 카드들의 개성이 더욱 또렷해졌습니다. 기존에는 마법들이 특별히 특색있지 않았는데 각 마법들이 하나같이 개성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예를 들면 번개 마법의 경우 적을 제압하면 그 적이 전투 후에 입히는 피해 등을 못 입히게 하는 거죠. 감전시키는 것처럼요. 아이템도, 동료도, 다들 좀 더 성격이 또렷해졌습니다.
시나리오 개수는 줄어들었어요. 코어 세트에 들어 있는 캠페인인 용의 명령(The Dragon’s Demand)은 10개이고, 진홍 왕좌의 저주 캠페인 시나리오는 24개입니다. 24개도 많다면 많지만, 그래도 36개보다는 훨씬 나아진 거죠. 영웅들의 성장도 빨라졌고, 성장 시스템도 보완되었습니다. 그리고 테마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빈약했던 스토리 라인을 상당히 보강했죠. 뻔한 느낌도 물론 있습니다만, 천편일률적이고 유치한 여타 판타지 보드게임의 스토리 라인과는 다르게, 시나리오도 나름 흥미진진해졌습니다.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나아진 이 게임이 두 번째, 세 번째 어드벤처 패스를 내면서 승승장구하길 기다렸는데, 갑자기 더 이상 신제품 출시는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온 겁니다. 팬으로서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는데요. 공홈에서 PDF 시나리오는 꾸준히 나오고 있는 듯합니다. 패스파인더 앱도 괜찮게 만들어져 있다고 하더군요. 사실 이 보드게임 상품에 대해서 좀 좋지 않은 이슈들도 있긴 했습니다. 카드게임인데 카드 뒷면 색감이 고르지 않았던 문제도 있었고, FFG의 에라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에라타도 매 어드벤처 패스마다 있었지만 이에 대해 공지로만 일관해 오기도 했거든요. 파이조 입장으로서는 다시 찍어주지 않는 게임이 낳은 이런 문제들이 애물단지이기도 했겠다는 생각이 없잖아 들기도 합니다.
파이조에서는 디지털 시나리오는 계속 낸다고는 했으니, 풀확장은 물론 상당수의 부가 확장들까지 거의 소장(그간 출시된 캐릭터 팩 등 각종 확장 팩들이 엄청나게 많았거든요.)한 입장으로서는 그 pdf 시나리오라도 언젠가 하나하나 즐겨보겠다는 심정으로 모으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단종이 아닌 거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더 이상 새로운 카드와 캠페인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집 책장 위에 고스란히 잘 꽂아둔 패스파인더 세트를 보면서, 안타까운 감회는 제쳐두고 언제 저걸 다 즐길까를 고민하곤 있지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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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 어드벤처 카드게임: 룬로드의 분노
Pathfinder Adventure Card Game: Rise of the Runelords – Base Set (2013)- Noah Bradley, Vincent Dutr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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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hfinder Adventure Card Game: Skull & Shackles – Base Set (2014)
- Noah Bradley, Vincent Dutr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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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hfinder Adventure Card Game: Wrath of the Righteous – Base Set (2015)
- Noah Bradley, Vincent Dutr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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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hfinder Adventure Card Game: Mummy's Mask – Base Set (2016)
- Noah Bradley, Vincent Dutrait, Jay Epperson, Tyler Jacob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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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hfinder Adventure Card Game: Core Set (2019)
- Noah Bradley, Vincent Dutrait, Jay Epperson, Tyler Jacobson, Jay Epp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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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보면 저랑 다른 길로 오셨어요. 이 개임도 입맛만 다시다가 같이 할 사람이 없어 패스했는데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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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듣기만 해도 안타깝네요!! 저는 너무너무 좋아하는 게임이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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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도 뭔가 무한확장의 느낌이 나는 게임이었군요 재미있어 보이는데 아쉽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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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테마 게임을 참 좋아하다 보니 저도 많이 아쉽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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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가 좋은게임이긴 한데....
저는 테마 몰입을 잘 못해서 저에겐 매우 어려운게임 이였습니다. ㅠ.ㅠ
룬로드의 부활 풀셋을 가지고 있다가 얼마전에 방출 했습니다.
패스파인더의 한가지 더 큰 걸림돌은 한글화이죠.
어마어마하게 많은 카드에 많은 텍스트. 그걸 한글화 하지 않으면
게임이 어려워 지니까요. -
사람마다 안 맞는 게임은 다 있는 거 같아요 ㅠㅠ
맞아요. 사실 텍스트 의존도가 꽤 높은 게임이죠. -
하다가진이빠졌던게임이네요.
재미는괜찮았었던 -
진빠질 만하죠 ㅎㅎ 의외로 길이가 긴 게임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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