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규칙에서는 총 주사위의 중요도가 너무 높았습니다. 또한 아무 주사위나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에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정체를 추리하여 맞힌다는 것은 운만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정해진 턴 안에 자신의 정체를 순차적으로, 그리고 강제적으로 공개하도록 하여 “추리”라는 요소를 더욱 살리기로 했습니다. 쉽게 생각해서 턴이 지날수록 자신에 대한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먼저 상대의 정보를 추리하여 제거해야 하는 것이죠. 저희는 자신의 정체 주사위와의 공통점을 가지고 주사위를 가져가도록 만들어서 이를 해결해보기로 했습니다.

이 규칙도 처음에는 “공통점이 있는 주사위를 무조건 먼저 가져가라!”라는 규칙에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총 주사위는 여전히 모든 조건에 우선하였고, 여전히 중요도가 높은 편이었습니다. 아니 달리 말하자면, 다른 주사위들이 총 주사위만큼 기능이 없었던 것이죠. 변경된 규칙으로는 처음엔 제법 추리하는 맛이 쏠쏠했습니다. 하지만 테스트를 반복할수록, 나중에 차례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남아있는 주사위가 적기 때문에 정체주사위와 공통점이 없는 주사위를 어쩔 수 없이 가져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이 때문에 추리라는 장점이 자꾸 희석되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가 개발팀의 한 재원의 아이디어로 주사위의 “위치”라는 요소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정체 주사위와 공통점이 있으면 컵 위에 올려놓고, 공통점이 없으면 컵 아래에 놓자는 거죠. 이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건 주사위를 가져가는 규칙이 명확해졌죠. 자신의 차례에 바닥에 놓여있는 주사위를 보고 자신의 정체 주사위와 공통점이 있는가를 따져서 주사위를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상대가 가져가서 주사위를 놓는 위치를 보고 상대의 정보를 추리하는 게 가능해 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맛이 싱거운 요리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왜냐면, 누구라도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싶진 않았기에 정체와 공통점이 없는 주사위만 가져가고자 했기 때문이죠. 추리를 살리고 싶었으나, 아직도 추리라는 맛이 우러나진 못한 상태였달까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주사위 시스템을 손 봐야 했죠. 이번엔 주사위를 가져가는 것에 패널티를 부여하기 보다는 정체와 공통점이 있는 주사위를 가져가는 행동에 어드밴티지를 부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무래도 ‘벌’보다는 ‘상’을 줘야 게임할 맛이 나잖습니까?
정체와 공통점이 있는 주사위를 가져오면, ‘암살’을 할 수 있다 라는 규칙을 포함하였습니다. 드디어 여기에서부터 “딜레마”라는 이 게임의 백미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를 암살하고 싶다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각오를 하고 총을 쏴야 했으니까요. 덕분에 게임은 총을 냅다 쏴 갈기는 느낌의 게임에서, 몸을 숨긴 채 한 발 한 발 신중히 ‘저격하는’ 느낌의 게임으로 변모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컵이 너무 작아서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터페이스 편의를 위해 컵을 대체할 무언가를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솜씨 좋은 개발진 한 명이 하루 고민하더니 뚝딱뚝딱 가림판을 만들어 왔습니다. 

마치 텍스트로만 된 게임을 하다가 그래픽이 입혀진 것 같은 은혜를 누렸죠. 처음 가림판은 쓰러지지 않고 주사위를 올릴 용도로 사다리꼴 비슷한 디자인 되었으나, 과대포장 문제에 봉착하면서 디자인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모양이 되었습니다. 이제 게임의 틀이 어느 정도 잡혔기에 개발은 순탄하게 마무리 될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