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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보드게임 이야기] 08. 취미는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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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9 17: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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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신나요
옛날에는 “취미가 뭐야?”라는 질문을 종종 했던 듯합니다. 공식 서류의 자기소개서 따위에도 취미 특기란이 있었던 듯하고, 초면일 때 상대를 알아가는 차원에서 묻기 좋은 정형화된 질문 중 하나인데요. 요즘에는 “좋아하는 게 뭐야?”로 바뀌었죠. 뭐랄까, “취미가 뭐야?”라는 질문은 외국인이 배우는 한국어 인사로 “너는 어디로 가고 있니?”를 쓰는 것 같달까요. 어딘지 딱딱하고, 일상에서는 안 쓰는 말 같이 느껴지는 까닭은, 많은 것들이 분화되어 가는 요즘에 뭐 하나로 콕 집어서 자신을 정의하기 어려워지고 있어서가 아닌가 혼자 생각도 해 봅니다.
아무튼, 저는 취미가 수집입(었습)니다. 네. 현재형이자 과거형이죠. 저는 뭔가를 모으는 것을 곧잘 합니다. 고등학생 때는 그 대상이 영화 OST CD였고(한스 짐머의 팬입니다),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대중가수 앨범 CD와 영화 DVD와 만화책이었고, 서른이 될 무렵부터는 보드게임으로 넘어왔습니다.
어느 수집을 가리지 않고, 시작은 그것 자체가 좋아서, 그리고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였죠. 요컨대, 영화도 처음에는 사는 족족 보고 음악 CD도 일단 도착하면 듣고 그랬다는 말입니다. (물론 음악 CD는 늘 들었습니다. 음악이란 다른 걸 하면서도 들을 수 있는 거니까요. 수집을 멈춘 건 mp3의 등장으로 CD가 구시대의 유물이 된 탓이었죠.) 그러나 어쩌다 한 번 바빠서 그 콘텐츠를 소비할 수 없는 시기를 지나다 보면, 미래의 저를 위한 예약으로 생각을 바꿉니다. “앗! 지금 저걸 할 시간은 없는데 저 영화를 저렇게 파네? 언젠가 시간 날 때 할 거니까 사야지!” …… 이렇게 생각해 보면 살면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가장 많이 한 상대는 나 자신이 아닌가 싶네요.
보드게임을 사는 이유도 약간씩 변해갔던 듯해요. 처음에는 보드게임이 좋아서, “처음 만나는 신세계”를 내 옆에 묶어두기 위해서. “택배 왔다” 하자마자 구성물 확인하고 진종일이 걸려서라도 규칙서를 정독하고 제 모든 여가 시간을 그 게임을 위해 맞췄죠(사랑했다 아컴 2판이여…). 그러다 게임이 점점 늘어갈수록, 게임마다 할애할 시간을 분배하게 되고, 한 게임의 플레이 빈도가 내려가고, 읽어야 할 규칙서는 늘어 갑니다. 갓겜이라 믿(듣)고 샀는데 규칙서의 글자 크기와 페이지 수는 오마이갓이 되어 갑니다. 즐기는 데 쏟는 시간보다 익히는 데 쏟는 시간이 더 길어지려는 순간, ‘개봉 노플’과 ‘밀봉’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게 요즘 우리 부부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해봤는데 갓겜이었던 게임 확장이라도 나오면 안 살 수 없고, 품절이라도 될까봐 불안해서도 안 살 수 없습니다. “이건 못 참지”라며 샀는데도 도착했다 하면 책장행입니다. “이 게임을 언제 하지”라는 고민보다 “책장에 자리 비워야 하는데 어느 게임을 팔아야 하지”라는 고민을 더 하게 되는 순간, 취미는 보드게임이 아니라 수집이라고 고백해야 할 듯한 기분이 됩니다.
하지만, <아크 노바>가 품절된 걸 보면서 이걸 산 스스로의 선지안을 칭찬하며 안도하는 것이 수집가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설령 다음 번 재입고 전까지 곱게 간직한 밀봉이더라도 말입니다. ‘품귀’라는 말이 보여주듯, 있으면 무덤덤하기라도 하지 막상 구할 수 없게 되면 한없이 귀하게 느껴지고 놓쳐서 아쉬운 마음이 들거든요.(품절된 뒤에야 가치를 인정받은 전력이 있는 <라>와 <뤄양의 사람들>과 <레이스 포 더 갤럭시>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지금보다 더 젊었던 시절, 너무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탓에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해 대다 보니, 그 많은 것들을 다 이고지고 사는 것에 지쳐 버렸던 저는 DVD와 CD와 (만화)책들을 싹 정리했습니다. 그랬는데 우체국 (구)6호 박스 열댓 개를 채울 정도의 보드게임은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포장 이사를 해도 이것들은 직접 박스를 사와서 제가 손수 포장해 두고 이삿짐센터 직원분들에게는 날라만 달라고 하거든요. 보드게임 넣을 공간이 부족해서 큰 집으로 이사가고 싶다는 꿈만 꾸고 삽니다.
그런 걸 보면, 보드게임에 대해서만큼은 “취미는 보드게임 수집”이라고 해도 되려나요? ㅎㅎ
아무튼, 저는 취미가 수집입(었습)니다. 네. 현재형이자 과거형이죠. 저는 뭔가를 모으는 것을 곧잘 합니다. 고등학생 때는 그 대상이 영화 OST CD였고(한스 짐머의 팬입니다),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대중가수 앨범 CD와 영화 DVD와 만화책이었고, 서른이 될 무렵부터는 보드게임으로 넘어왔습니다.
어느 수집을 가리지 않고, 시작은 그것 자체가 좋아서, 그리고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였죠. 요컨대, 영화도 처음에는 사는 족족 보고 음악 CD도 일단 도착하면 듣고 그랬다는 말입니다. (물론 음악 CD는 늘 들었습니다. 음악이란 다른 걸 하면서도 들을 수 있는 거니까요. 수집을 멈춘 건 mp3의 등장으로 CD가 구시대의 유물이 된 탓이었죠.) 그러나 어쩌다 한 번 바빠서 그 콘텐츠를 소비할 수 없는 시기를 지나다 보면, 미래의 저를 위한 예약으로 생각을 바꿉니다. “앗! 지금 저걸 할 시간은 없는데 저 영화를 저렇게 파네? 언젠가 시간 날 때 할 거니까 사야지!” …… 이렇게 생각해 보면 살면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가장 많이 한 상대는 나 자신이 아닌가 싶네요.
보드게임을 사는 이유도 약간씩 변해갔던 듯해요. 처음에는 보드게임이 좋아서, “처음 만나는 신세계”를 내 옆에 묶어두기 위해서. “택배 왔다” 하자마자 구성물 확인하고 진종일이 걸려서라도 규칙서를 정독하고 제 모든 여가 시간을 그 게임을 위해 맞췄죠(사랑했다 아컴 2판이여…). 그러다 게임이 점점 늘어갈수록, 게임마다 할애할 시간을 분배하게 되고, 한 게임의 플레이 빈도가 내려가고, 읽어야 할 규칙서는 늘어 갑니다. 갓겜이라 믿(듣)고 샀는데 규칙서의 글자 크기와 페이지 수는 오마이갓이 되어 갑니다. 즐기는 데 쏟는 시간보다 익히는 데 쏟는 시간이 더 길어지려는 순간, ‘개봉 노플’과 ‘밀봉’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게 요즘 우리 부부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해봤는데 갓겜이었던 게임 확장이라도 나오면 안 살 수 없고, 품절이라도 될까봐 불안해서도 안 살 수 없습니다. “이건 못 참지”라며 샀는데도 도착했다 하면 책장행입니다. “이 게임을 언제 하지”라는 고민보다 “책장에 자리 비워야 하는데 어느 게임을 팔아야 하지”라는 고민을 더 하게 되는 순간, 취미는 보드게임이 아니라 수집이라고 고백해야 할 듯한 기분이 됩니다.
하지만, <아크 노바>가 품절된 걸 보면서 이걸 산 스스로의 선지안을 칭찬하며 안도하는 것이 수집가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설령 다음 번 재입고 전까지 곱게 간직한 밀봉이더라도 말입니다. ‘품귀’라는 말이 보여주듯, 있으면 무덤덤하기라도 하지 막상 구할 수 없게 되면 한없이 귀하게 느껴지고 놓쳐서 아쉬운 마음이 들거든요.
지금보다 더 젊었던 시절, 너무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탓에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해 대다 보니, 그 많은 것들을 다 이고지고 사는 것에 지쳐 버렸던 저는 DVD와 CD와 (만화)책들을 싹 정리했습니다. 그랬는데 우체국 (구)6호 박스 열댓 개를 채울 정도의 보드게임은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포장 이사를 해도 이것들은 직접 박스를 사와서 제가 손수 포장해 두고 이삿짐센터 직원분들에게는 날라만 달라고 하거든요. 보드게임 넣을 공간이 부족해서 큰 집으로 이사가고 싶다는 꿈만 꾸고 삽니다.
그런 걸 보면, 보드게임에 대해서만큼은 “취미는 보드게임 수집”이라고 해도 되려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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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합니다..
수집인 취미인 사람은 취미가 바뀌어도 수집을 한다고 합니다ㅠ 저 같은 경우는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마자 시공사에서 출판한 DC 코믹스 수집을 시작으로 신발 -> 보드게임을 수집(?)하고 있는데
보드게임들을 보고 있노라면 말씀하신 것처럼 기쁨, 설렘, 기대, 답답함, 무거움이라는 온갖 감정들이 공존하네요..ㅎㅎ -
저는 은퇴 후의 삶을 상상하면서 죽을 때까지 매일 돌려도 절대 못 끝낸다는 행복감에 젖는데... 사람마다 다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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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느끼는 무거운 마음은 집이 작아서 그런 겁니....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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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선반 가득차기 전까지는 마음이 굉장히 풍요롭기만 했었는데 공간의 압박이 생긴 후부터 마음이 무거운 것 같습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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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이라는 게 달리 말하자면 잘 못 버리고 가지고 있는다는 거니까 특정한 것에 국한되지는 않을 거 같기는 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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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바일 게임을 할때도 캐릭터 수집하는 게임을 하는지라....
가장 좋아하던 게임 중 하나가 포켓몬스터인건 말할 것도 없고요... 이 수집욕은 정말 주체가 안 됩니다 ㅎㅎ
무슨 취미를 하든 수집을 하는것은 언제나 동일하니까, 취미를 이야기할때는 수집하는 '대상'을 지칭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그러니 제 취미는 보드게임이 맞습니다! -
인간의... 한계를 모르는 수집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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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챠는 무섭죠. 전 요즘 원신을.... ㅋㅋㅋㅋ
하지만 취미는 보드게임입니다. 네. 그러하죠. ㅋㅋ -
한 줄 한 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글이 없네요. CD에 만화책에... 저도 아직 책장 반은 다른 것들로 채워져 있는데 점점 보드게임에게 자리를 내 주고 있습니다... 취미는 수집이라는 말에 극공감입니다 ㅠㅠㅋㅋㅋ 심지어 저는 취미도 많아서 취미마저 수집하냐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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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를 수집한다니 대단하네요!! ㅋㅋ언젠가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겠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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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취미가 수집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가챠게임은 잘 하지 않습니다
다 모을 수가 없을거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겠다랄까요!
ㅋㅋ
실물이 좋기도 하구요! 그래서 비디오게임도 아직
패키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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