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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보드게임 이야기] 13. P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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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2 2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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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신나요
부산에서 모임을 열었던 곳은 청년문화 커뮤니티 공간이었습니다. 자그마치 10년 가까이 되었네요. 제가 했던 보드게임 모임 말고도 이런저런 커뮤니티 활동이 이루어졌는데요. 그런 활동에 참여하셨던 분께서 "거기 가니까 이런 모임도 있더라"라는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주셨습니다. 그걸 들은 그 아이는 제 모임에 오고 싶어서 엄마를 졸랐고, 그렇게 해서 드디어 첫만남을 가졌어요. 그렇게 만난 P군은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었습니다.
30대 초반의 제가 이끌던 그 모임에 대부분은 20대 초중반이었고, 개중에 고등학생도 3명, 간혹 한 번씩 오던 중학생도 1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등 5학년은 처음이었죠.
P군은 착하고 똑똑한 친구였지만, 이런 어른들과 같이 노는 경험이 많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그 나이의 아이 중에 그런 경험이 있는 애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간단한 게임부터 시작하며 성향 파악에 들어갔죠. 그리고 약 두세 게임을 돌아가며 진행하는 동안 좋게 평가하기 힘든 행동들을 했습니다. 승리 조건과 무관하게 게임의 흐름을 망가뜨리는 행동을 하면서 기분 좋아하거나 게임의 허점을 물고 늘어지기도 했고(단순한 게임들을 꺼낸 거지만 그렇게 할 정도로 영리한 친구였어요), 자기 차례가 아니면 폰 게임을 바로 하기도 했어요.
그 첫날 모임을 마무리하면서 저는 P군을 따로 불러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너는 그렇게 하는 것이 즐거울지 몰라도, 같이 즐기는 게임에서 그렇게 혼자 일탈적으로 굴면 다른 사람들이 너와 함께 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 그러면 내가 널 이 모임에 오라고 할 수가 없는 거다.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조곤조곤 설명을 해줬습니다.
설명을 하면 잘 알아듣고, 변하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아이이더군요. 그래서 그 다음 모임에도 불렀습니다. 한 번에 나아질 순 없겠지만 조금씩 관계를 풀어갔어요. 같이 게임을 하는 형누나들 이름을 익히지 않아서, 게임을 하는데 "저 누나" "빨간 옷 입은 형"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듣고 제가 "다음 주부터는 여기 있은 사람들 이름을 외우도록 해"라고 말하고, 실제로 게임하다 말고 불쑥 "이 누나 이름 뭐야?"라고 묻기도 했고요(결국 다 외워서 잘 대답하는 걸 보고 잘 했다고 칭찬도 해 줬습니다 ㅎㅎ). 저녁으로 치킨을 시켜서 다 같이 먹는 날, 다들 식탁을 차리느라 분주하게 오가는 와중에 P군은 혼자 먼저 치킨을 먹으려고 하다가 다른 모임원한테 "형 누나들 다 앉기 전까지 기다려!"라는 말 듣고 정말 가만히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요(다들 자리에 앉자마자 "이제 먹어도 돼. 다른 사람들이 준비할 땐 꼭 기다렸다 같이 먹도록 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ㅎㅎ).
P군은 중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우리 모임에 나왔습니다. 니가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느냐며 축하해주었던 게 기억나네요. 게임을 잘 해서 복잡한 전략게임에서 1등도 곧잘 하곤 했죠. 그 시간 동안 처음에 비해 훨씬 말도 잘 하고 사람과의 어울림에서도 나아진 건 말할 것도 없고요. 덩치도 금방 커지더군요. ㅎㅎ 그때 여러 가지 사정이 생겨 모임을 더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고, [이번 주도 모임이 없어]라는 톡을 몇 번 주다가 그걸로 연락이 멀어지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P군과의 시간에 대해 내가 좋은 어른이자 친구로 있어 주었을까 곱씹어 보면 아무래도 마지막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에게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더 소중한 인연이었을 수 있는데, 앞으로 보기 힘들 거라는 이야기를 제때 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지도요. 비록 제에게 있어서, 살다 보니 어떻게 멀어졌는지 기억나지도 않게 연이 끊긴 사람들이 많았다 보니 그것이 자연스러웠다지만, 그 아이의 나이에는 어쩌면 좀 가혹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저 바라는 것은, 그 아이도 가까이 있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귀중해져서 우리와 더 보지 못하게 된 그때가 상처로 남진 않았으면 하는 정도입니다. 똑똑하고 착한 아이였으니 어디에서든 잘 성장하고 있겠지요. 제가 그 인연을 의미있게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그에게도 그때 함께했던 우리의 시간이 좋은 추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30대 초반의 제가 이끌던 그 모임에 대부분은 20대 초중반이었고, 개중에 고등학생도 3명, 간혹 한 번씩 오던 중학생도 1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등 5학년은 처음이었죠.
P군은 착하고 똑똑한 친구였지만, 이런 어른들과 같이 노는 경험이 많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그 나이의 아이 중에 그런 경험이 있는 애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간단한 게임부터 시작하며 성향 파악에 들어갔죠. 그리고 약 두세 게임을 돌아가며 진행하는 동안 좋게 평가하기 힘든 행동들을 했습니다. 승리 조건과 무관하게 게임의 흐름을 망가뜨리는 행동을 하면서 기분 좋아하거나 게임의 허점을 물고 늘어지기도 했고(단순한 게임들을 꺼낸 거지만 그렇게 할 정도로 영리한 친구였어요), 자기 차례가 아니면 폰 게임을 바로 하기도 했어요.
그 첫날 모임을 마무리하면서 저는 P군을 따로 불러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너는 그렇게 하는 것이 즐거울지 몰라도, 같이 즐기는 게임에서 그렇게 혼자 일탈적으로 굴면 다른 사람들이 너와 함께 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 그러면 내가 널 이 모임에 오라고 할 수가 없는 거다.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조곤조곤 설명을 해줬습니다.
설명을 하면 잘 알아듣고, 변하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아이이더군요. 그래서 그 다음 모임에도 불렀습니다. 한 번에 나아질 순 없겠지만 조금씩 관계를 풀어갔어요. 같이 게임을 하는 형누나들 이름을 익히지 않아서, 게임을 하는데 "저 누나" "빨간 옷 입은 형"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듣고 제가 "다음 주부터는 여기 있은 사람들 이름을 외우도록 해"라고 말하고, 실제로 게임하다 말고 불쑥 "이 누나 이름 뭐야?"라고 묻기도 했고요(결국 다 외워서 잘 대답하는 걸 보고 잘 했다고 칭찬도 해 줬습니다 ㅎㅎ). 저녁으로 치킨을 시켜서 다 같이 먹는 날, 다들 식탁을 차리느라 분주하게 오가는 와중에 P군은 혼자 먼저 치킨을 먹으려고 하다가 다른 모임원한테 "형 누나들 다 앉기 전까지 기다려!"라는 말 듣고 정말 가만히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요(다들 자리에 앉자마자 "이제 먹어도 돼. 다른 사람들이 준비할 땐 꼭 기다렸다 같이 먹도록 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ㅎㅎ).
P군은 중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우리 모임에 나왔습니다. 니가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느냐며 축하해주었던 게 기억나네요. 게임을 잘 해서 복잡한 전략게임에서 1등도 곧잘 하곤 했죠. 그 시간 동안 처음에 비해 훨씬 말도 잘 하고 사람과의 어울림에서도 나아진 건 말할 것도 없고요. 덩치도 금방 커지더군요. ㅎㅎ 그때 여러 가지 사정이 생겨 모임을 더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고, [이번 주도 모임이 없어]라는 톡을 몇 번 주다가 그걸로 연락이 멀어지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P군과의 시간에 대해 내가 좋은 어른이자 친구로 있어 주었을까 곱씹어 보면 아무래도 마지막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에게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더 소중한 인연이었을 수 있는데, 앞으로 보기 힘들 거라는 이야기를 제때 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지도요. 비록 제에게 있어서, 살다 보니 어떻게 멀어졌는지 기억나지도 않게 연이 끊긴 사람들이 많았다 보니 그것이 자연스러웠다지만, 그 아이의 나이에는 어쩌면 좀 가혹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저 바라는 것은, 그 아이도 가까이 있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귀중해져서 우리와 더 보지 못하게 된 그때가 상처로 남진 않았으면 하는 정도입니다. 똑똑하고 착한 아이였으니 어디에서든 잘 성장하고 있겠지요. 제가 그 인연을 의미있게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그에게도 그때 함께했던 우리의 시간이 좋은 추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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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어디선가 보드게임 모임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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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길 바랍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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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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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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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군에게도 어렸을 때 좋은 어른을 만났다는 좋은 기억이 남았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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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억이나 날까 싶은 생각이 더 들지만, 긍정적인 생각의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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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 조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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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다행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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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군도 신나요님 덕분에 경험했던 즐거운 일에 감사하고 있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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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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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좋은 영향을 주셨을 것 같아요ㅋㅋ 오래 잊지 못할듯.. 정말 어디선가 보드게임을 하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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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거기만 하면 만족이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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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신나요님께서 하신 역할은,보드게임라이프 뿐만 아니라 P군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고 꼭 필요한 부분을 담당하신 것 같아요.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마지막이 어쩌면 상처였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삶에 있어서의 한 장면이라는 것을 이제는 P군도 이해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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