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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보드게임 이야기] 05. 아콜 내 인생, 크작생 보드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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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7 21: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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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신나요
1. 아그리콜라이프
다른 게임에서도 비슷한 것을 볼 수는 있지만, 유독 <아그리콜라>에서 유명한 것이 바로 '밥 먹이기'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여느 게임에서는 생산을 위한 비용으로서 소비의 개념이 잡혀 있는 거라면 우베의 이 <아그리콜라>를 위시한 몇몇 게임에서는 밥 먹이기의 소비 규모가 너무 커서 이를 맞추기 위한 생산을 행해야 하기 때문일 겁니다.
옛날에 다른(디지털) 게임회사에 다니던 친구가 알려주길, 돈을 소비하게 만드는 요소는 게임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이러한 소비책이 있어야만 게임 머니에 가치가 생기고 플레이어들이 그 게임 머니를 벌기 위한 활동을 한다고 했는데요. 그렇게 보더라도 <아그리콜라>의 소비는 아무래도 가혹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밥 먹이기가 빡빡해서 게임을 잘 못 즐긴다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즐겼던 저의 지인 가운데는 일꾼들한테 우물물 퍼먹이며 굶겨서 동네에 악명이 자자했….).
게임을 즐기는 여러 이유 중에 한 가지로, 현실에 비해 단순하고도 명확한 인풋 대비 아웃풋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언제나 할 일이 (비교적) 분명하게 보이고 나무 2개를 내면 울타리 1개가 어김없이 지어지는 게 게임이니까요. 현실은 나무 2개로 울타리 하나 짓는 그 단순한 일에서조차 온갖 상황이 발생할 정도로 예측불허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누군가들에게는 <아그리콜라>가 지닌 이 밥 먹이기의 빡빡함이 기묘한 현실 고증으로 느껴지기도 할 겁니다. 그 누군가에 제가 속해 있고요.
<아그리콜라>에서는 그래도 적절한 빌딩을 통해 생산의 규모가 소비의 규모보다 확대되어 가면서 운용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지만(집도 키우고 가족도 늘리고 가축도...)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기 위해 걸리는 시간도 너무 길고, 어떤 때는 소비의 규모가 더 빨리 성장하는 거 같기도 합니다. 결혼과 취직으로 서울에 살 집을 구했다지만, 맞벌이 몇 년 일하는 걸로 내 집 마련이 과연 될까 싶을 정도로 고점을 찍은 집값을 보고 있노라면, 매 라운드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지표라도 제공해주는 <아그리콜라>가 차라리 자비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네요.
그러나, "이번 전략은 계산 미스니까 리트"가 안 되는 것이 삶이니, 한두 번의 헛발질이 인생에 너무 가혹하게 작용하지 않는 것은 다행이겠으며, 그렇기에 일을 할 수 있을 때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복으로 여기며 오늘도 무사히 '밥 먹이기'할 따름입니다. 마찬가지로 각자의 테크트리를 타고서 무수한 밥 먹이기를 열심히 해결 중인 우리 모두의 농장판에, 성패 위에 사람 있는 그 길에 응원을 보냅니다.
2. 크고 작은 보겜들
작더라도 자기 집으로 시작해서 집을 증축 확장해 가는 것이 수순처럼 가능한(물론 다른 테크도 있습니다만) <아그리콜라>와는 달리, <아그리콜라 2인용: 크고 작은 생물들>(이후 <크작생>)은 색다른 각도에서 현실 고증을 해 줍니다. 특히나 양처럼 증식하는 보드게임 때문에요.
<크작생>은 <아그리콜라>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의 게임이죠. 트레이드마크인 ‘밥 먹이기’가 사라진 <크작생>에서는 자원은 많고 그 자원을 보존할 공간은 부족합니다. 공간 증축보다 늘어나는 속도가 빠른 가축들을 조절하다 보면 <아그리콜라>에서 밥 먹이기가 존재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은데요. 일꾼 잘 곳까진 모르겠고 양 한 마리도 버리기 아까우니 집안에까지 양을 들이고 “하~ 너 살렸다 내가~”하다 보면, 보드게임 신작을 들이기 위해 “텍마머니”를 외치는 제 모습이 언뜻 보입니다. 이(놈의) 보드게임은 소비한다고 사라지는 재화도 아니며, 테마 게임 0~3개 -3점/4개 이상 1점 같은 점수 제공 소스도 아닌, 그야말로 공간 점유의 황제(이자 미보유 불안 치료약)이라서 여러 모로 다른 구석이 있다고는 하더라도, 결국 한정된 공간에 밀어넣기 품목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그리콜라> 시작 집 같은 집에서 방 한 칸 네 벽 중 1.5개치에 보드게임을 쌓아놓고 나니, 신작이 들어오면 가진 것을 팔아서 자리를 내야 한다는 굳은 다짐을 했습니다. 물론 보드게임 중고 판매는 자리 없으면 홱 하고 버리면 그만인 <크작생>의 가축들과는 달리 수량 체크부터 택배 보내기까지 손이 많이 가는 몹시도 귀찮은 작업이긴 하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겠죠. 우베와 비탈의 팬으로 이 둘의 게임은 어지간하면 모으는 아내의 취향 덕에 이번 슈필에는 더욱 전략적인 ‘농장 운영’이 필요합니다. 중고장터에서 (다른 닉으로) 뵙겠습니다……
게임에 공간을 양보하는 일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집으로 갈 날을 꾸준히 지향하며 퇴근길에 글을 다듬었습니다. 그날까진 매일 집에서 테트리스 게임을 해야 하겠군요. 그래서 요즘 우베가 자꾸 블록쌓기 게임을 내는 걸까요?(당연히 그런 거 아니다)
덧붙임. 그러고 보면 <아그리콜라>를 안 한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협력 테마 게임 편애자인 저로서 몇 안 되게 좋아하는 일꾼놓기 게임인데 말이죠. 언제 해도 재미있는 게임은 그 맛이 있는 거죠. 일단 최신 게임인 할러타우부터 얼른 해 봐야...(그리고 시선을 피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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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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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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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점유의 황제(이자 미보유 불안 치료약) 이라는 표현이 너무 와닿네요ㅋㅋㅋ잘 읽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아콜 크작생은 아콜이 있는데 살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계속 던져주는 게임이군요.. -
<크고 작은 생물들>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아그리콜라의 답답한 밥 먹이기가 없는 게임!'을 메인으로 내걸고 나오긴 했는데요. 두 게임은 그렇기 때문에라도 완전히 다르긴 합니다. 템포도, 조율점도 상당히 다르니 "아그리콜라가 있는데 크작생을?"이라고 하실 건 없을 듯해요. 그래도 고민이 되는 심정도 이해가 되니, <크고 작은 생물들>을 어딘가에서 해 보시고 결정하셔도 좋겠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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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할 수 있을 곳을 찾아바야겠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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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콜을 팔고 크작생으로 합니다. 아내랑 같이 얘기하면서 평화롭게 불어난 동물을 버리는... 재미가 있어요. 느긋하게 즐기기 정말 좋은 게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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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 감사합니다! 느긋하고 평화로운 게임이라는거에 뽐이 오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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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피하지만 하게 될겁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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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이야기를 들은 기분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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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너무 좋아요. 아그리콜라로 보드게임을 처음 접한 저는 더욱 반가웠던 글입니다ㅎㅎ 후.. 저도 테트리스하듯 게임 정리를 하러…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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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글이 읽을 만했다니 참 좋네요. ㅎㅎ 아그리콜라가 문을 열어 준 사람들도 제법 될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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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사랑이 묻어나네요.
저는 아콜이 없고 크작생이 있고, 카베르나를 살 예정입니다 ㅎㅎ 나중에는 아마도 아콜을 사게 될텐데, 그건 인제 집이 좀 넓어지면.. -
넓은 집을 꿈꾸는 것은 보드게이머의 숙명인가 봅니다 크흑 ㅠㅠ 전 사실 카베르나까지(만) 해봤는데요. 고게 아주 깊은 맛이 있는 게임이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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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점유의 황제(이자 미보유 불안 치료약)" ㅋㅋㅋㅋㅋㅋ 극한 공감에 뿜었습니다
글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좋은 글 감사해요! -
잘 읽어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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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베와 비딸의 팬까지는 아닌데…… 아 저랑 아내도 테마 협력 좋아하니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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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조만간 테마 협력 게임 썰 한 번 풀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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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콜 업글한 거랑 지금 장바구니 담긴 비딸겜 생각하니 팬인 거 같기도 하고…… 추천 더 드릴 수 없으니 댓글이란 나중 글 예견까지 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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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렇게 추가 추천이라니요 ㅠㅠ ㅎㅎ 정성껏 열심히 써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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