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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로 살펴보는 [서스펙트 게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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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9 20: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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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2 땡그랑
※ 서스펙트 게임 리뷰뿐만 아니라 동종 장르의 타 게임 리뷰와 장르에 대한 개인적 고찰도 포함되어 글이 매우 깁니다. 최 하단에 요약 정리 있습니다.
추리 장르에서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내부자 중 범인이 있습니다.
제 3자가 갑자기 범인으로 지목되면 뜬금없게 느껴지기 때문에 등장인물 중 범인이 있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죠.
이처럼 소수의 내부자 중 범인이 있는 경우를 '클로즈드 서클'이라고 합니다.
현실의 사건들이 용의자를 좁히기 위해 광범위한 수사를 해야 하는 것과 달리 작품 속 사건들은 이미 용의자가 정해져 있는 클로즈드 서클이 전통적 입니다.
보드 게임에도 이런 클로즈드 서클을 활용한 게임들이 있는데,
흔히 크라임씬 혹은 머더 미스터리 게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국내는 추리 예능 크라임씬이 이쪽 계통으로 유명했기에 크라임씬 게임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잦은 것 같습니다.
일단 편의상 본 글에서는 크라임씬 게임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국내에도 서스펙트 게임을 비롯하여 많은 크라임씬 게임이 출시되었습니다.
플레이 해본 유저들 사이에서는 서스펙트 게임이 유독 많은 인기와 고평가를 받고 있는데, 여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추리 장르에서 먼저 따지게 될 요소는 분명 '스토리' 일 확률이 높습니다.
추리 장르의 매력은 치밀한 트릭과 충격적인 반전, 비극적인 이야기인 만큼 탄탄한 스토리가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크라임씬은 다소 예외입니다.
서로 의심하고 추궁하는 상황에서 범인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아주 간단한 사건이라도 진상을 파악하기 힘들죠.
때문에 소설이나 영화처럼 스토리에 고난도의 살인 트릭과 반전을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크라임씬 게임이 끝나고 사건의 진상을 보면 생각보다 단순한 경우가 많습니다.
크라임씬 게임에서 스토리란, 개연성과 몰입을 위한 장치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래서 크라임씬 게임에서는 스토리보다 '룰=시스템'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룰에 따라 범인의 플레이 난이도가 바뀌는데, 범인의 압박이 줄어야 게임이 흥미진진하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마피아 게임에서도 마피아가 너무 못하면 오히려 재미가 줄어들죠?
크라임씬 게임에서도 범인이 너무 쉽게 들통나면 굉장히 허무해 집니다.
게다가 마피아 게임은 한판 한판이 짧은 반면,
크라임씬은 한판 즐기기 위해 최소 2시간 이상이 소요되며 1회성 컨텐츠라서 허무하게 끝날 경우 실망감이 배가 됩니다.
한번 할 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만 하는 거죠.
또한, 크라임씬 게임의 특성상 플레이 전에는 스토리가 얼마나 훌륭한 완성도를 지녔는지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게임을 선택하는 기준은 공개적으로 알려지는 정보인 룰을 참조하는 것이 좋습니다.
크라임씬 게임을 여럿 경험해 본 분들은 게임의 큰 틀이 다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크라임씬 게임의 기본적인 흐름은 대부분
위의 순서로 진행되거든요.
각 게임에 따라서 단서 조사와 토론이 몇 번 반복되는지 차이가 있지만 큰 흐름은 비슷합니다.
때문에 크라임씬 게임은 전부 룰이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룰에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중요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 거짓말에 대한 규제 (범인만 거짓말 가능한지 / 모두가 거짓말 가능한지)
- 단서가 공개되는 정도 (모두에게 단서가 공개되는지 / 각자 조사한 단서만 볼 수 있는지)
- 단서 조사에 대한 자율성 (자동으로 단서가 주어지는 수동형 / 직접 단서를 찾아야 하는 능동형)
거짓말 규제와 단서 공개 정도에 따하 범인역의 난이도가 많이 바뀌고,
단서 조사의 자율성에 따라 게임에 대한 몰입도가 바뀝니다.
각각의 유형에 따라 제가 경험했던 게임들을 매칭해 리뷰하면서 설명해볼게요.
스포일러도 피할겸 글의 주제에 맞춰 게임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배제하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유형A. 정해진 레일로드
- 범인만 거짓말 가능
- 모든 단서 공개
- 수동형 플레이
매 라운드마다 자동으로 단서가 주어지는 수동형 방식이고, 이렇게 주어진 단서는 모두에게 공개해야 합니다.
비밀 단서도 있습니다만, 게임 내 대부분의 단서는 투명하게 공개됩니다.
거짓말은 범인만 가능하고 다른 무고한 용의자들은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그저 주어진 단서를 같이 확인하며 누가 의심스러운지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범인은 능동적인 플레이가 어렵습니다.
모든 단서가 공개되기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가는 걸릴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솔직하게만 플레이하자니 범인으로써 재미가 반감됩니다.
이 유형에 해당되는 게임은 플레이 시간에 제약이 없으면, 플레이어들끼리 토론하면서 진상이 투명하게 드러나기 쉽습니다.
때문에 토론 시간에 제약을 줘서 토론이 과하게 진행되는 것을 방지하곤 합니다.
경험해본 게임 : 게이머 오버, 리얼월드 크라임씬
유형 B. 의미없는 거짓말
- 모두가 거짓말 가능
- 모든 단서 공개
- 수동형 플레이
모두가 거짓말이 가능하지만 어디까지나 거짓말은 각 플레이어의 의사에 달렸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게 들통나도 리스크가 적어서 이제 범인의 거짓말 부담이 줄어듭니다.
하지만 모든 단서가 공개되므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초반에는 자신의 불리한 정황을 덮기 위해서 다같이 거짓말을 하다가,
후반에 여러 단서들이 공개되면서 각자 솔직하게 털어놓는 절차를 밟게 되더라구요.
문제는 이 과정에서 범인은 그럴싸하게 털어놓을 내용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남들은 다 자기 캐릭터의 비밀을 털어놓는데 혼자 조용하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임이 들통나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정직하게 플레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범인이 아니니까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모임의 성향이 이런 경우 더더욱 범인의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경험해본 게임 : 목 베는 마을
유형 C. 전통적 방식의 크라임씬
- 범인말 거짓말 가능
- 단서 공개 제한
- 능동형 플레이
국내 예능 크라임씬으로 인해 친숙한 방식입니다.
조사의 중요성이 늘어나서 직접 추리하는 듯한 몰입도가 상당히 뛰어납니다.
조사 단계 때에 아주 신중하고 고심하며 선택하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범인만 거짓말이 가능하기에 범인의 부담이 여전히 높지만,
단서를 완전히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이 쉽게 들통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범인이 중요 단서를 선점하고 은폐하는 플레이도 가능해 집니다.
하지만 거짓말이 들통나는 순간 게임이 허탈하게 끝날 가능성도 여전합니다.
때문에 범인이 얼마나 노련하게 플레이 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재미가 크게 좌지우지 됩니다.
전반적으로 무난한 방식의 룰이라고 생각되며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기도 합니다.
경험해본 게임 : 캐치크라임, Y의 장례식, 크라임씬 카페 등
유형 D. 모두가 의심스러운 심리 스릴러
- 거짓말 모두 가능
- 단서 공개 제한
- 능동형 플레이
- 각자의 비밀을 지켜야만 한다
전통적 크라임씬 방식에서 한단계 발전한 방식입니다.
능동적으로 조사하는 재미는 유지하면서도, 기존의 거짓말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모두가 거짓말이 가능합니다.
유형 B의 경우 어차피 모든 단서가 공유되므로 거짓말이 의미가 없었지만,
본 유형은 단서 공개가 제한되므로 거짓말을 아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여기서 가장 크게 눈여겨 볼 점은 각자의 비밀을 지켜야만 한다는 겁니다.
각자 비밀이 있고 이걸 들키면 범인 체포에 성공해도 질 수 있기 때문에 이 비밀을 숨기기 위해 거의 필연적으로 모두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거짓말에 대한 리스크가 희미해지고 범인이 매우 적극적으로 플레이를 펼치게 됩니다.
덕분에 게임이 상당히 다이나믹하게 흘러갑니다.
비밀 시스템으로 인해, 기존에는 범인만 갖고 있던 부담이 모든 플레이어도 조금씩 나눠 갖게 되었습니다.
비밀이 밝혀질 때마다 반전을 거듭하는 매력도 있습니다.
다만 모두 거짓말 가능한 난장판, 각자의 비밀, 선택의 중요성, 긴 플레이 타임이 전부 합쳐졌기 때문에 게임 말미 즘에는 머리가 터질듯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경험해본 게임 : 서스펙트 게임
유형 E. 결국엔 솔직해지는 피카레스크
- 거짓말 모두 가능
- 단서 공개 제한
- 능동형 플레이
서스펙트 게임의 룰을 참고해서 일부 변형하고, 비밀 시스템을 제거했습니다.
비밀이 없어도 서로 거짓말을 할지 궁금했거든요.
일부러 등장인물을 모두 도덕적 결함이 있거나 꿍꿍이가 있는 인물들로 만들었습니다.
서로 의심할 수 있는 단서도 잔뜩 배치해 두었죠.
하지만 결론적으로 유형 B와 비슷하게 흘러갔습니다.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활용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범인을 잡기 위해 솔직하게 털어놓더군요.
1. 거짓말 제약은 없는 게 좋다.
'범인만 거짓말이 가능하다'는 것은 게임의 시스템입니다.
게임 내 '캐릭터'는 알 수 없는 정보로 게임 바깥의 '플레이어'가 범인을 유추하게 되면 게임의 몰입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재미를 느끼기 어렵게 됩니다.
실제로 저희 모임에서는 범인만 거짓말 가능한 크라임씬 게임에서 전부 범인을 잡았습니다.
게임 내 단서가 얼마나 모였는지 상관없이 '어, 거짓말했네? 범인이야!' 라는 식으로 허무하게 잡힌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범인을 위해 마련한 룰 같지만 범인 역 플레이어가 실수 한번만 해도 범인 증명이 되는 극강의 단서로 작용되더군요.
플레이어가 '시스템을 활용해 추리'하는 게임은 마피아 게임입니다.
크라임씬 게임에서는 제4의 벽을 허물지 않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며, 모든 플레이어가 세계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를 직접 의심하기 보다는 게임내에서 얻은 단서를 통해 추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자 메타성 발언을 자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아예 룰 자체에 거짓말 제한이 없는 게 좋습니다.
거짓말을 알아챘는데 일부러 모른 척하기도 어려우니까요.
2. 능동적인 조사가 가능해야 한다.
몰입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능동적인 단서 조사가 가능해야 합니다.
단서가 주어지는 수동적인 방식은 추리하는 재미도 반감됩니다.
심하면 그냥 제작자가 정한 루트를 따라 스토리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게임 '플레이'를하려면 능동적인 조사가 가능한 룰의 게임을 선택합시다.
3. 단서 공개에 제한이 있어야 범인도 재밌다.
재미있는 크라임씬 게임을 위해서는 범인이 적극적으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단서가 모두 공개되는 방식이면 범인이 소극적으로 플레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거짓말 하는 게 쉽게 들통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안하면 게임 후반부에 사건 윤곽이 보이면서 제대로 변명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제법 많습니다.
때문에 대화를 통해 공유는 가능해도 직접적인 공개는 제한이 있는 게 좋다고 봅니다.
4. 스토리는 여전히 중요하다.
본 글에서 크라임씬 룰에 대해 집중해서 얘기했지만 스토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스토리가 좋다는 평을 받는 크라임씬 게임은 개연성이 좋고 몰입도도 좋습니다.
둘 다 크라임씬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에 결국 스토리는 중요하긴 합니다.
스토리가 좋으면 룰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고, 룰이 깔끔해도 스토리가 별로면 몰입되지 않습니다.
다만, 크라임씬에서 진상은 플레이어가 납득 가능한 정도여야 하기에 스토리에서 엄청난 차별점을 두기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만약 스토리를 따지려면 개연성과 핍진성을 기준 삼는것이 좋습니다.
크라임씬 게임은 협력이 아닌 경쟁 구도이므로, 이야기의 임팩트보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 흐름인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냥 서스펙트 게임하세요.
상기 내용을 통한 결론은
입니다.
위 기준을 충족함과 동시에 이를 위해 모두가 거짓말을 하도록 시스템 단계부터 설계(비밀 시스템)된 게임은 서스펙트 게임뿐입니다.
그리고 유형 비교에서 언급하지 않은 서스펙트 게임만의 독보적인 장점들이 있습니다.
일단 비주얼이 매우 훌륭합니다.
맵의 일러스트 및 컴포넌트 퀄리티가 지금껏 제가 해본 크라임씬 게임 중 가장 뛰어났습니다.
디테일한 일러스트를 통해 시각적 정보가 전달되어서 게임의 몰입에 아주 크게 도움이 됩니다.
다른 게임들 대부분 텍스트로 위주로 단서가 제시되는 편이라서 서스펙트의 고퀄 일러스트는 더욱 돋보이는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진상외에도 '플레이어 입장에서 어떻게 범인을 추리할 수 있는지' 해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설의 디테일과 개연성에 대한 평은 각자 차이가 있겠지만,
어떻게 추리했어야 하는지 답지가 준비되어 있는 만큼의 논리적인 개연성을 챙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작진이 플레이어에게 던지는 답안지라는 점에서 정통 추리물의 '작가vs독자' 구도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서스펙트 게임이 왜 전반적인 평가가 높은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추리물이 자신이 없으시다구요?
괜찮습니다 서스펙트 게임하세요. 어차피 다들 거짓말하느라 티가 안나니까요.
크라임씬 게임 뭘 고를지 모르겟다구요?
그럼 일단 서스펙트 게임하세요. 어차피 이게 맘에 안들면 다른 것도 맘에 안들겁니다.
추리물 마니아시라구요?
그럼 그냥 서스펙트 게임하세요.
이미 하셨다구요?
그럼 같이 시즌2를 기원하며, 이번에 나오는 리로드 합시다.
4줄 요약
1, 공정한 게임 밸런스를 위해, 범인만 거짓말 가능한 룰은 절대 피하기
2. 게임적 재미를 위해, 능동적으로 단서 조사가 가능한 룰 추천
3. 범인도 재밌기 위해, 모든 단서가 공유/공개되는 룰은 비추.
4. 잘 모르겠으면 그냥 서스펙트 게임 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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