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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푸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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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1 22: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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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3 도검
비가 온 뒤에 하늘은 언제나 그렇듯이 파랗게 개었다. 하늘은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일까. 그것은 오늘 도검의 표정이 개인 하늘과 정 반대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제 다다 보드게임방을 접어야 하는건가?'
후 하고 내뿜는 담배연기가 예사롭지 않게 도검의 머리곁을 떠나지 않는다.
이제 보드게임방들도 하나둘 문을 닫는 시기이지만 그는 이 보드게임방을 수년간이나 지켜왔던 것이다. 친구들에게 보드게임을 가르치며 친구들이 딴지 플레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처음 접하는 게임도 금방 전략을 세우는 것을 볼 때마다 어떤 인생의 보람마저 느끼곤 했던 것이다.
'그런 인생에 유일무이한 것을 이제는 그만두어야 하다니...'
이른 아침부터 보드게임방을 열고 푸에르토 리코 옥수수를 손에 쥐었다 놓았다 하면서 이궁리 저궁리 해보지만 도저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 놈의 돈이 문제란 말이야. 요즘은 돈이 없으면 사람도 아닌 세상이니.'
사실 이곳은 서울의 외진 곳이라 보드게임을 하러 오는 사람도 없어 게임 구매는 커녕 계속 노플 게임을 방출하고 있었던 탓에 임대료 내기도 빠듯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건물 주인이 얼마전 이 곳을 둘러보고는 요즘같은 세상에 보드게임방보다는 PC게임방 같은 것을 차리는 것이 좋을 거라고, 인상된 임대료도 제대로 못 낼 바에야 이제 그만 간판을 내리는게 어떻겠냐고, 동정의 미소인지 비아냥의 웃음인지 모를 미소를 입가에 띄면서 나가버렸다.
도검도 그 말이 전혀 이해못할 말은 아니었다. 솔직히 장사도 안되고 입문 게임이라는 보난자 룰도 잘 몰라서 중간에 게임을 중단하는 등 체면이 서지 않은 적이 최근에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이제는 그만 둬야겠나보다 하는 생각이 슬몃 고개를 쳐들지 않은 것은 아니나 한편으로는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는 오기도 저쪽 반대편에서 일어서는 것이 사실이다.
'무슨 좋은 수가 나겠지... 이제 한글화된 게임들이 나오고 있는데 물러설 수는 없다. 참, 6살짜리 문래 그 놈 정말 푸코 하나는 끝내주게 잘 한단 말이야...'
그 때, 문을 불쑥 열고 들어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햇살에 눈이 부셔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내 그가 누군지 똑똑히 보였다.
그는 건물 주인 이사장이었다.
이제 막 30대 초반으로 각종 PC 게임과 플레이스테이션 등 기계와 소프트웨어를 파는 도매업자다. 한때 같이 밤새 보드게임을 즐겼던 사이이지만 지금은 나를 내쫓으려는 사람이다. 도검은 보초를 서는 경계병같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이사장은 불쑥 이상한 말을 꺼냈다.
사실 이사장도 왠만한 보드게임은 다 해본 사람이었다. 벌써 집 한구석에는 보드게임을 위한 따로 방이 마련되어 있고 카르카손 시리즈, Alea 시리즈를 풀 컬렉션으로 모았음은 물론이며, 각종 레어템들을 비롯 책장에는 500여종의 보드게임이 즐비하였다. 분명 그도 도검과 같은 보드게임 매니아였던 것이다.
'이 작자가 왜 이러나. 도대체 무슨 속셈이 있는거지.'
하지만 도검은 그저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같은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나가라, 마라 하는 것도 너무 야박한 것 같고, 그렇다구 요즘 세상에 이윤추구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제가 제안을 하나 할까 하는데요..."
도검은 직감적으로 그 제안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불가능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하는 수가 없었다. 그냥 쫓겨나는 것보다는 그 제안이나 들어보는 수 밖에는 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도검님, 만일 이 보드게임방 사람 중 저를 푸에르토 리코에서 1대1로 꺾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간판을 내리라는 말은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자리를 좀 비워주셨으면 합니다."
도검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 시작한다. 건물주의 이름은 ‘이기자’였다. 전세계 네트워크가 구성되어 있는 BSW에서 푸에르토 리코 승률 1위의 ID 'e-kija'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어림잡아도 95% 이상의 승률로 이미 BSW 푸코계에서는 전설적인 존재였다. 이 자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의 자존심도 만만치 않았던 탓에 그 내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음...그 방법밖에 없다면 할 수 없지. 단판 승부인가?"
"예, 그렇게 하죠. 너무 상심마세요. 제가 실수할 수도 있잖아요? 하하... 내일 10시에 뵙죠."
그의 뒷말은 자기를 이기는 방법은 자신이 실수나 하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을 완곡히 표현한 것이리라. 도검은 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 한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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