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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 모임게시판 [단편] 푸코(2)
  • 2007-03-12 00: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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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3 도검

(1편부터 읽으시길..^^)

하늘이 까맣다가 모서리부터 푸르스름하게 변해왔다. 도검은 밤새 한 잠도 자지 못하면서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결국은 창밖으로 밝아오는 빛깔을 감지했다.


'하. 어떻게 한다?'


암만 생각해봐도 자신이 그 이사장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실력차도 실력차지만 보난자 룰도 까먹은 자신이 더 못 미더웠다. 어느때고 한 번 실수가 나오는 날에는 끝장이었다.


'그렇다면 문래를?'


그 여섯 살 짜리 꼬마가 분명 실력은 있었지만 아직 도검을 분명히 꺾는 실력은 아니었다.


그는 결국 밤새 해답을 얻지 못하고 이불 속에서 다시 담배를 찾아 불을 붙였다. 후하고 내뿜는 담배연기가 꼭 건물주의 거미줄 같았다. 도저히 그 거미줄을 빠져나올 묘수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창밖을 본다. 이제는 완전히 밤은 갔다. 결전의 시간은 다가온다. 그 게임은 단순한 게임 한 판이 아니다. 내기게임이다. 내기도 이만저만한 내기가 아니다. 도검 보드게임 자존심을 건 내기게임이다. 다시 한 번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인생을 건 전투다.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10시에 게임을 하기로 했지만 도검은 아침 일찍 보드게임방 문을 열었다. 쌓여있는 게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웬지 서글픔이, 가지지 못한자의 서글픔이 느껴졌다. 단순히 재산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실력을 가지지 못한 자의 서글픔이 더 컸다. 어쩔 수 없는가.


도검은 테이블 한 곳에 혼자 앉아 조용히 세틀러부터 메이어, 빌더를 차례로 선택하며 늘 하던대로 테크트리를 올려본다. 처음 쿼리를 선택하고 인디고 소형 공장 하나에 빠르게 와프에 커스텀 하우스까지 올려본다. 도검이 가장 좋아하는 최적화 옥수수 러쉬 테크트리이지만 오늘따라 쉽지 않게 보인다


시계가 9시를 가리켰다.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눈이 동그랗고 귀엽게 생긴 꼬마아이가 들어온다. 이제 유치원이나 다닐법한 아이가 볼을 발갛게 물들인채 들어와서는 당당하게 인사를 한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래, 왔니?..."


도검의 비통한 표정을 그 아이는 느꼈는지 못느꼈는지 대뜸 도검의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오라구 하셨어요?"
"빨리 오느라구 밥두 제대루 못 먹었어요..."
"저런! 밥은 제때제때 많이 먹어야지...어렸을 때부터 밥을 잘 안먹으면 못써요.."


도검은 갑자기 목이 메여온다. 사실 도검은 해가 뜨고 나서야 중대한 결심을 한 것이다.


"문래야...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예."
"좀 있다가 어떤 분이 너하구 푸코를 한판 하자구 할거다. 그러면 너는 여태껏 배운 것을 총동원해서, 그러니까 너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잘 하면 되는거다...알겠니?"
"어, 아저씨보다 잘 하는 사람이여요?"
"음...아저씨보다 잘 할거야...하지만 겁낼 필요는 없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알았어요."


도검은 결국 이 꼬마아이를 믿기로 한 것이다. 분명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실수가 나올 확률은 더 적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어차피 마지막이 될 바에는 세계 최고수 수준의 푸코 게임을 선물삼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혹시 모를 일이다. 이사장이 실수라도 한다면, 혹, 혹 이길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별 도리가 없다는 결론을 아침에서야 내렸다.


"아저씨, 꼭 이겨야 해요?"
"아니, 넌 실력껏 하면 돼. 꼭 이길 필요는 없단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꼭 이겨야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여섯살 짜리한테 부담을 지워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거짓말을 해야되는 현실이 한번 더 그를 서글프게 했다.


10시 10분전이다. 보드게임방 문이 조심스럽게 열린다. 도검은 건물주인가 해서 눈을 지그시 감아본다. 마치 사무라이가 결투전 칼을 갈아놓고 묵상 하는 것 처럼.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이사장이 아니었다.


나이는 한 스무살쯤 되었을까. 크지는 않지만 그렇게 작지도 않은 눈을 가진, 눈썹이 가지런한 여학생이다. 하얀 피부에 지그시 다문 주홍빛 입술이 꽤 귀티가 나는 얼굴이다. 그 얌전한 자태에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맨 것이 다시 한 번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상대임을 짐작케 해준다. 그는 도검을 잘 알고 있는 것 처럼 살짝 웃으며 한 번 쳐다보고는 꼬마아이를 본다. 꼬마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그 아이가 의자에서 작은 몸을 일으켜 쪼르르 달려온다.


"누나~!"
"아, 문래구나. 밥 먹었어?"


기껏해야 다리밖에 안오는 그 꼬마아이를 그 여학생은 꼬옥 안아준다. 그리고는 도검을 바라본다. 무슨 일로 부르셨냐는 듯한 표정이다.


"후앙아, 조금 있다 귀한 손님 한 분 오시니까, 과일 좀 가져와서 깎아드리라고 불렀다. 그럴 수 있겠니?"


그 여학생은 도검이 그 말을 하는 동안 뚫어져라 그를 바라보았다. 어떤 불길한 기운을 느꼈던 것일까. 이내 그녀도 표정이 굳어지면서 짧게 예라고만 대답하고 과일을 사러 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가 나간 후 얼마 되지 않아 건물주는 들어왔다. 겉으로는 유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하, 도검님 그새 안녕하셨습니까."
"아, 오셨어요?"
"예. 푸코 한 판 하려구 왔지요."


자신의 야비함을 숨기기 위함일까. 서로 빤히 알고 있는 대국의 의미를 굳이 말로 그렇게 위장할 필요가 있을까. 이 점이 도검에게는 더욱 못마땅했다. 상대는 의외로 도검이 아닌 여섯살짜리 꼬마인 것을 보고 적지 않이 놀란 모양이다.


"아니, 제 상대가 이 꼬마아이에요?"
"음...그 아이가 제일 잘 한다우."
"아니, 도검님 보다두요?"
"글쎄, 그렇다니까."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해본다. 꽤 귀여운 얼굴이 앙증맞기까지 하다.


"머, 요즘 아이들이 보드게임을 많이 하긴 하지만, 애들은 애들이죠."


도검은 자신이 무시당하는 것보다 더 싫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실력차가 존재하는건 사실이니까. 도검은 좀 언짢았지만 그냥 허허 웃으면서 듣고만 있었다.


"어쨌든 이 아이를 한 번 믿어보셔야겠습니다."


그 때, 문이 열리면서 아까 과일사러 나갔던 여학생이 손에 참외랑 토마토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온다. 순간 건물주는 스몰 마켓을 하나 올려놓고 고개를 들어 그 여학생을 바라본다. 그녀는 건물주의 얼굴을 보자 잠시 바라보더니 입을 지그시 다물고 한 쪽에 앉아 과일을 깎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과일을 접시에다 놓고 잠시 게임을 잠시 쳐다보았다. 문래가 옥수수, 건물주가 인디고다.


시간이 정지해있는 듯 둘은 그렇게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네사람이었다. 이사장과 문래와 도검과 후앙. 이렇게 네명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이세상에는 그 네명만 존재하는것 같았다.
이윽고 문래가 ‘하시엔다’에 이어 이번엔 ‘호스피스’를 하나 집는다.
6살난 어린아이 답지않게 아주 의젓한 모습이다.


이사장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듯 신중히 자신의 테크트리를 만들어 나간다. 이사장은 전혀 얕보지 않는 것 같았다.

'...'

도검은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꿎은 담배만 태우고 있었다.
이윽고 초반이 끝났다. 문래는 선적, 이사장은 건물러쉬의 구도이다. 다행히 문래는 아직까지 별탈 없이 잘 두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어떻게 수많은 옥수수를 선적할 것이냐에 달렸다. 일찍이 올림픽 결승전을 관전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 대국은 도검의 재산뿐만 아니라 인생의 자존심이 걸린 한 판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사장이 불쑥 말을 꺼낸다.


"참, 도검님. 이 여학생은 누굽니까."
"아, 내가 소개를 안시켰군요. 울 가게 알바 학생입니다."
"아, 그러세요. 참 야무지게 생겼습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문래는 다음 수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이 학생도 푸코 할 줄 압니까?"
"에이. 웬걸. 걔는 푸코는 전혀 할줄 몰라. 할리갈리, 젠가 같은 게임만 나가다 보니 푸코는 내가 안가르쳤거든."
"그래요?...."


하지만 그녀는 왠지 푸코를 할줄 아는것만 같다. 적어도 건물주가 보기에는 그랬다.
쳐다보는 폼이 푸코를 모르는 사람의 눈빛이 아니다.
후앙은 자기 얘기가 나오자 잠깐 얼굴을 붉히더니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선다.
순간, 이사장이 생산을 선택하더니 자신의 보드에 커피를 올려 놓는다.


후앙은 흘끗 쳐다보더니 도검에게 말을 건넨다.


"저는 집으로 가볼게요."
"그래라. 수고했다."


문래의 다음 선택이 주목되는 순간이다.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 도검은 자기가 플레이하는 것처럼 애가 단다.


건물러쉬에서 커피를 빠르게 생산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커피가 팔린다면 분명 건물러쉬의 페이스로 이끌 수 있다. 그러면 거의 이사장의 승리가 확실해진다. 그러나 문래가 초반 커피를 팔지 못하도록 한다면 건물러쉬도 실패한다. 그렇다면...

'아!'

도검은 하마터면 무릎을 칠뻔했다. 역시 이사장은 문래를 얕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쉽게 생산했다는 것은 상대를 얕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법이다. 갑자기 승리가 눈 앞에 보이는것 같다. 가슴이 울렁울렁해서 견딜수가 없다. 아, 이렇게 이기게 된다면...


잠시후 문래는 역시 도검이 생각한 대로 선적을 한다. 도검은 저절로 미소를 짓는다. BSW 푸코 1위도 다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참 통쾌했다. 그리고는 슬며시 이사장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사장은 잠시 눈썹을 찡긋하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소형 창고를 사고 농장에서 옥수수와 설탕 농장을 가져온다.


'이제 와서 선적은 안될텐데...흥!'


도검이 그런 생각을 접으려고 하는데 계속 건물주의 손길은 가볍다. 어딘가 이상하다.
순간, 이사장이 팩토리를 하나 짓는다.


도검은 벌떡 일어설뻔 했다. 다음 순간, 갑자기 지어진 팩토리를 보고는 정말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이 문래는 와프를 짓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있었다. 문래가 커피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해 무리해서 선적을 하다보니 더블룬 부족으로 와프를 짓지 못했고 그 사이 이사장의 5종 생산 팩토리에 의한 무한 건물러쉬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끝이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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