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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돼지 서커스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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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0 20: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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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 인연
빨간 돼지가 죽었다.
높은 곳을 그 무엇보다도 두려워하던 그였다.
우리는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꼬마돼지 서커스단’의 단원들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 만큼의 대우는 받고있지 못하다.
아니, 오히려 매일 꿀꿀이죽으로 허기를 때우며 죽지 않을 만큼의 생존만을 강요 당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자유는 없다. 그저 자고, 연습하고, 서커스를 할 뿐......
우리가 서커스를 하면, 사육사들이 돈을 번다.
우리는 불타는 링 사이로 뛰어들고, 사육사들은 그 돈으로 여자를 산다.
꾸준히 반복되는 힘겨운 일상은 이런 잔인하고도 끔찍한 삶을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게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시계 바늘처럼 돌아가던 세상이 이순간 갑자기 멈춰버렸다.
빨간 돼지가 ‘돼지 쌓기’ 연습 중에 정신을 잃고 떨어져 죽어버린 것이다.
그는 언제나 다른 돼지들을 아래에서 받치는 일을 해왔다.
너무 힘들어서 다른 돼지들은 하기를 꺼려하는 일이었지만, 그는 선천적인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높은 곳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아무런 불만 없이 그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성실함이 오히려 화를 부르고 말았다.
늦게까지 혼자 남아 연습을 하다가 사육사들이 꿀꿀이 죽에 상한 생선을 넣는 것을 봐버린 것이다. 그는 사육사들에게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것을 울면서 다짐하였다.
그러나 사육사들은 그의 약속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가 자러 돌아간 이후에 아주 긴 시간동안 사육사들의 회의가 이어졌다.
다음날.
빨간 돼지는 ‘돼지 쌓기’를 위해 가장 위로 올라갈 것을 명령 받았다.
두려움에 덜덜 떨며 싫다고 거절하였지만 날아오는 것은 채찍 세례 뿐이었다.
결국 그는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고, 주변에는 애초에 안전 장치 같은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빨간 돼지의 시체는 이내 토막토막 잘려서 냉장고에 넣어졌고, 곁의 돼지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사육사들은 오늘 저녁에 포식하겠다며 낄낄거렸다.
순간 돼지들의 뇌리에는 오로지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살아야 한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나와 다른 돼지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서커스로 단련되어서인지 사육사들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뒤에서 개가 따라오는지 계속 짖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다가오는 것이 보이지는 않았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잡히지 않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려갔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할퀴고, 가시가 발에 박혀도 그곳에 신경을 쓸 처지가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돼지들도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하지만 잡힌 돼지는 없는 것 같다.
비록 모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지만 탈출에는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신은 인간의 편.
쉬려고 자리를 잡는 순간 다시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빨리 일어나 도망쳐야 하는데 더 이상 도망칠 힘이 없다.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우린 다시 모두 잡힐 것이고, 예전처럼 그렇게 살아가게 되겠지.
지쳐서 조금씩 눈이 감긴다.
.........
......
...
.
... 안돼...
바꿔야 한다...
언제까지나 아무 생각 없이 착취당하면서 살 수는 없다.
이 오솔길을 조금만 더 가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누군가는 도망쳐서 우리의 상황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눈을 번쩍 뜨니 앞에 노란 돼지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생각보다도 먼저 몸이 그를 업고 죽을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오늘 이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아닐까.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그리고 서서히 개 짖는 소리도 멀어져 간다.
노란 돼지야... 너는 꼭 도망쳐야 한다...
우리를... 우리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
...
.
“꾸엑~!”
“아따, 이놈 발버둥치는 것 좀 보게.”
“업혀서 다니더니 힘이 아직도 남아도는가 보구만. 이놈! 너 때문에 한달치 월급을 모두 날렸다!”
“히야~! 자네는 어떻게 노란 돼지가 1등 할걸 알았나?”
“내기로만 25년을 살아왔습니다. 그저 척! 보면 딱! 이지요. 하하하!”
“별일이구만. 튼튼한 녹색 돼지가 1등을 할 줄 알았는데 비리비리한 노란 돼지를 업고 뛰다니. 쯧쯧!”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죽도록 뛸지는 몰랐네.”
“어르신들, 그럼 먼저들 들어가시지요. 음향기랑 돼지 녀석들 챙겨서 저도 곧 돌아가겠습니다.”
“그래, 자네도 오늘 음향기 들고 뛰느라 수고 많았네. 이따가 회식 때 보세.”
“오늘은 돼지를 2마리나 먹겠구만. 자네 머리는 역시 비상해.”
“별말씀을요. 모두 어르신들 덕분입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래~. 빨리 끝내고 와."
"어여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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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밝지만은 않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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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밝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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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한켠이 먹먹해지는 리뷰는 난생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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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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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인생이란..
잘 어우러진 글과 그림이 2편을 기대하게 만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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