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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 위에 그린 세상 – 5. Seeing is belie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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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31 20: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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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2 Equinox
지난 시리즈
보드 위에 그린 세상 – 5. Seeing is believing?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인간의 감각은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흔히들 여성들만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육감(六感)’은 ‘오감(五感)’ 이후에 하나가 더
있는 감각이라는 의미이다. 이 오감 가운데 가장 정보량이 많은 감각은 시각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이 하루 동안 감각기관을 통해 뇌에
전해지는 정보량의 약 90%가 시각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조향사(調香師)와 같은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조금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이러한 시각 정보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네 사람살이(人生) 덕분에 안경장사는 물론이고, 라식 수술 등으로 먹고 사는 안과의사 역시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라디오에 완승을 거둔 TV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는 동일 정보라고 해도 시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더욱 신뢰를 느끼게 된다. 우리가
학창시절 수많은 반복숙달을 통해 익히게 되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Seeing is believing.)”와 같은 명문장 역시 우리의
이러한 인지체계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네 사람살이를 그려내는 보드게임 역시 이 같은 시각적 인지체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테이블에 펼쳐지는 보드가 그러하고, 내편과 상대편을
구별하는 말(pawn)의 색상 역시 시각정보로 전달된다. 현재 누가 앞서나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점수판의 상황을 ‘보는 행위’에 의하며,
이 게임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설명하는 규칙서 역시 눈을 통해 전달된다. 최근에는 보드게임에서도 DVD게임과 같이 시청각적 요소를 구현하는
게임들도 등장하고 있으나, 역시 주류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사람끼리 서로 대면하여 진행하는 보드게임의 특성상, 대화라는 청각적 인지체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하지만, 협상게임과 같은 대화가
주된 구성 요소인 보드게임에서조차 협상의 결과는 가시적(可視的)인 보드 위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보드를 펼치면서 시작되어, 점수판을 확인하면서
끝맺음하는 보드게임에서, 보드를 위시한 시각적 구성요소는 보드게임의 시작이며 끝이라 할 수 있겠다.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있다.
하지만, 보는 것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시각 위주의 인지체계는 또 다른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시각 인지체계 자체의 불완전성에 기인하는 소위
착시현상(錯視懸象)이 그것이다. 우리가 즐겨 보는 영화는, 시각정보가 사라진 상태에서도 아직 보고 있는 것처럼 인지하는 잔상(殘像)을 이용하는
것으로 이것 역시 착시현상의 일종이다. 현대사회에서 접하는 모든 동적(動的) 영상은 대부분 이러한 착시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눈이 일으키는
착각에 의해 보여지는 현상을 철석같이 믿게 되는 현대인의 인지-신뢰체계는 사실 모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착시현상 외에도 시각 위주의 인지체계의 한계는 더 있다. 이른 바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있다는 말인데, 다중구조세계(parallel
world)의 이론에서는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세계가 병렬적으로 늘어서 있다는 식으로 이를 설명한다. 쉽게 말해서 주사위를 던져서 1이
나왔다고 하면, 주사위를 던지는 순간 분기점이 형성되며, 1~6이 나온 세계 가운데 우리는 1이 나온 세계 속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나머지
2~6이 나온 세계는 다른 차원 속에서 병렬적으로 우리가 사는 차원에 인접하여 나열되어 있다는 것인데, 꽤나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이 이론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보고 있는 것과는 다른 세계가 실제로 펼쳐지고 있는 현실 때문이리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게 만드는 것과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드는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사기(詐欺)가 되지만,
사회적 차원에서는 언론(言論)이 되고, 국가적 차원에서는 정치(政治)가 되며, 국제적 차원에서는 외교(外交)가 된다. 이러한 세계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 보이는 것만이 존재하는 세계의 전부일까.
보드 위에 현실을 그려내는 보드게임에서도 이와 같은 시각적 한계는 존재한다. 아니 더 나아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현실 세계까지도
그려내고 있다. 즉, 보이므로 믿을 수 없고, 보이지 않으므로 믿을 수 있는 세계를 구현하는 보드게임도 다수 존재한다.
[협잡 (Intrigue)]이라는 게임에서, 고용주에게 수많은 뇌물과 회유공작을 하는 일꾼의 소유주는 분명 그 일꾼이 많은 돈을
벌어오는 세계를 머리 속에 그리지만, 해당 일꾼은 섬으로 유배되어 버려지는 냉혹한 현실이 나타난다.
[환상세계 사업 (Fantasy Business)]에서 참가자는 가격 담합을 통해 모두가 공평하게 돈을 가져가는 세계를 말하지만,
저마다의 가슴 속에는 경쟁자보다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여 모든 돈을 독식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또 실제로도 그렇게 된다.)
[외교 (Diplomacy)]에서는 현실의 외교처럼 수많은 장밋빛 세계가 그려지지만, 실제 진행은 참가자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세계가 되며, [바퀴벌레 포커 (Kakerlaken Poker)] 에서는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한다.
[차오차오 (Ciao Ciao)]에서 ‘X’가 나오고도 당당하게 네 칸을 전진하는 사람이 현실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신문 기사에서도 행간(行間)을 읽어내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위와 같은 게임들은 비록 가시적 조작이 불가능한 시스템 때문에, 가리고 있다가 공개하거나, 대화를 통해 중간 진행을 하고 최종 결과를 가시적
형태로 보여주는 시스템을 취하고 있지만, 어쨌거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현실세계를 보드 위에 그려낸 게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하지만, 보드 위에 그린 세상을 통해 현실 세계를 이해한 사람들은 말한다.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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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뭡니까 이거....보드일보 사설 1호입니까? :) -
사설은 무슨...
이 시리즈가 게시판 분위기에 안 맞나요? -_-; -
역시 포스가.. ㄷㄷㄷ
(다다에도 추천기능이 필요해~~) -
전후의 극심한 가난에서 급작스러운 경제 성장이 불러온 물질 만능주의 속에서 "잘살아보자~!"는 일념으로 돈만 보고 달려온 한국 성인들의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정신 세계 속에
"게임"이란 그저 그런 시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이나 하는 놀이에 지나지 않는 이나라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삶에 쫒기지 않고 삶을 즐기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것처럼 보이는 일부 나라 사람들의 놀이 문화가 부러울 때가 많아요..
베켓님 글처럼 게임이란 정말 여러가지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참 좋은 놀이 문화인데 말이죠..
카드만 들고 있으면, '아이들 놀이' 혹은 '노름' 이 둘 중 하나로 간주하는 어른들의 곱은 시선을 고칠 수만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아니면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올바른 놀이 문화를 전수해 주던가요...^^
베켓님 글 정말 잘 읽고 갑니다 -
오! 놀랍도록 설득력이 있는 좋은글입니다. 시리즈로 올려주세요. 열렬한 구독자가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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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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