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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성시 줄 세우기, <오버부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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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4 13: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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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신나요
※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 비교적 중요한 일부 규칙을 설명하는 글로, 전체 규칙을 다루지 않습니다.
“장사에 있어서 중요한 건, 상황을 잘 읽는 거지. 암.”
바 너머의 주인장은 능숙한 솜씨로 잔을 닦으며 거드름을 피웁니다.
“아무튼지간에 말이야. 훌륭한 숙박 관리인으로 성공하려면 두 가지를 알아야 돼요. 호텔, 그리고 손님. 그 손님들이 지금 여러분 뒤에 앉아 계신 저 분들이란 말이지.”
주인은 창문 앞 둥근 테이블마다 한 명씩 참 정겹게 나란히도 앉은 손님들을 가리킵니다. 언뜻 곁눈질로 보아도 제법 있어 보이는 나으리들부터 노곤한 기사들까지 이런저런 사람들이 에일 잔에 코를 박다시피 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선술집 바에 기대어 ‘난 너에게 알은체를 하고 싶어'란 표정을 한 선술집 주인을 마주하고 있는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을 번번히 실패로 이끈 책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기대를 가져 보기 위함입니다. 그 책의 제목은 “판타지 잡스: 이 세계에서 성공하는 300가지 직업”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엿한 한 사람으로서 충분한 돈을 벌어 성공을 맛보는 평범한 삶을 꿈꾸며 책을 펼쳤습니다. 판타지 세계 직업 일람 및 가이드북으로 불티나게 팔린 이 책의 성공 요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당시 베스트셀러인 “중세포밍 화성”보다 가격이 약간 더 쌌기 때문이고, 둘째로, 책 뒷면에 커다란 글자로 “Don’t Bluffing”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 (줄여서) ‘이세계 잡스’를 옆에 끼고 이런저런 직업을 시도했으나, 주사위 운과 카드 뽑기 운을 앗아간 신이 꼴찌 운만 잔뜩 준 건지 뭔지, 단 한 번도 1등이 되지 못했습니다.
상기하자면 쓰라린 기억이지만, 성공하는 판타지인들의 108가지 습관 가운데 45번 수칙은 ‘실패의 경험을 잊지 말 것’입니다. 그래서 곱씹어 봅니다. 55쪽 약장수를 시작했을 땐 완성한 약병 수보다 터뜨려먹은 솥 개수가 3배는 더 많았습니다. 80쪽 농부에 도전했을 때는 농사일보다 낚시가 더 잘 맞다는 걸 깨달았지만, 낚시질 좀 한다고 해서 식구들에게 우물물 퍼먹이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280쪽 용병 생활은 가장 힘겨웠습니다. 주도권 타이밍이 번번히 빗나가는 바람에 상반신과 하반신이 따로 놀던 그때의 기억이란…
버믈링들에게 지갑도 털리고 놀림도 당한 날 여러분은 저 책을 미스케토닉 강에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믿어 보기로 하고 책자를 펼쳤습니다. 아무래도 뒷페이지로 갈수록 난이도가 좀 높은 게 아닐까 하는 핑계로 이번에는 앞페이지를 더듬어 봅니다. 그리고 눈에 띈 것이 이 “숙박 관리인”인데, 정보가 너무나도 허전(접)했습니다. 팁이라는 제목이 달린 연두색 글상자에 적힌 한 줄이 “자세한 내용은 선술집 주인에게 물어보세요”라니요. 책 뒷면에 블러핑 금지라고 해 놓고 이게 블러핑 아닌가요? 지금 눈앞에서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여러분을 쳐다보는 선술집 주인이 분명 이 책의 저자에게 돈을 먹인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어차피 속는 셈 치기로 한 거 한 번 더 당해 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흠흠, 그럼 이제 슬슬 본론으로 가 봅시다. 이 숙박 관리인으로 잘 되려면 요령이 있어야 해. 요령이 있으려면 분위기 돌아가는 걸 잘 읽어야 해요. 하나하나 말씀드릴게, 잘 들어봐요.”
여러분이 3잔째를 주문하고 나서야 주인은 본론을 풀었습니다. 이 집 시그니처라는 구름 맥주의 목 넘김이 나빴다면 1잔 반째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 충동을 참아낸 성과가 이제 나오려고 합니다.
“일단, 이 동네 호텔에 묵으려는 분들은 예약이란 걸 몰라요. 당일에 쳐들어오면 호텔마다 빈방이 있을 줄 아는데, 있기야 있지. 단, 호텔마다 남은 방 수가 딱 정해져 있어서, 줄을 잘 서야 들어갈 수 있어요. 성공하고 싶다면, 여러분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당일 투숙 가능한 빈방을 어떻게든 내줘야 돼요. 그런데 그런 손님들이 너무나도 많다 보니깐, 이 동네 호텔들이 룰을 하나 세웠어요. 당일 투숙객은 시간을 딱 정해 놓고 그때부터 동시에 줄서기 경쟁을 시키는 거야. 호텔별로 정문 앞에 딱! 4팀까지만. 그렇게 여러분들이 돌아가면서 자기 손님들을 다 세웠잖아요? 그러고 나면 호텔 방이 다 찰 때까지 손님들을 들여보내는 거죠. 그런데 호텔에서도 있는 방에 손님을 야무지게 넣어줘야 하니까, 방 수를 제일 많이 요구하는 비싼 손님들 먼저 넣어줘요. 그러니까 덩치는 크면 클수록 입장이 유리하지요. 그렇게 호텔방은 손님들로 채우고, 여러분 호주머니는 그 손님들 돈으로 채우고. 이제 알겠죠? 그 줄서기 경쟁에서 이겨서 자기 손님들을 호텔에 잘 묵게 해 주는 거예요.”
주인은 마치 이날을 기다려 왔다는 듯 주머니에서 호텔 그림이 그려진 카드들을 꺼냅니다. 대단합니다. 이 정도 준비성은 있어야 책에 조언자로 기록될 수 있는가 봅니다. 과연, ‘이세계 잡스’가 드디어 돈값을 할 모양입니다.
“동시에 손님을 받는 호텔은 그날 경쟁할 숙박 관리인 한 명당 하나씩이에요. 남은 방 수를 알려주니까, 이걸 보고 내 손님을 밀어넣으면 돼요. 다들 또 예약 안 해서 부끄러운 거는 알아가지고, 줄 설 때 보면 자기 정체는 안 보이게 망토를 덮어쓰거든. 그래도 덩치로 보면 대충 알 만해요. 승려, 상인, 하인이 각각 방을 1칸, 2칸, 3칸 달라고 해요. 왜 여러 칸 달라고 하냐구? 난들 아나. 난 호텔에 안 묵어서 몰라. 아무튼 이 사람들은 덩치가 작아요. 방 4칸 달라는 귀족, 방 5칸 달라는 군인, 방 6칸 달라는 인부는 덩치가 딱 봐도 커. 그래서 대충 줄 서 있는 거 보면 ‘아, 지금 내 앞에서 방이 몇 개가 나가겠구나’ 하는 걸 대충 짐작할 수 있겠지요? 그걸 잘 봐 가면서 내 손님을 넣어 주라는 거지. 우리 손님들 까다로우니까 눈치 진짜 잘 봐야 해요. 귀족 손님은 방 4개 달라고 한다 그랬죠? 그런데 호텔에 남은 방이 2개밖에 없잖아? 그러면 귀족 손님은 삐져 가지고 아예 줄에서 나가 버린다니깐요. 그러니까 간을 잘 봐야 돼.”
주인은 여러분이 주문한 나무 피처의 맥주를 자신의 잔에 천연덕스럽게 따르고는 목을 축입니다. 장사꾼의 너스레가 몸에 배어 있습니다. 접시닦이가 부지런하게 달그락거리고 조수는 맥주통을 들고 굴리며 등뒤를 지나갑니다.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주인은 말을 이어갑니다.
“호텔 오른쪽 정문 앞에 손님들 잘 세웠다가 들여보내야 되는데, 정정당당하게 줄서기로 손님을 못 들여보낼 거 같다? 그러면 뒷문으로 사람을 보내 봐요. 뒷문에 줄 선 손님은 재주껏 호텔이랑 협상을 해요. 호텔마다 딱 두 명만 뒷문에 설 수 있는데, 먼저 온 사람한테는 금화도 한 닢 주니까 꼭 잘 챙기시구. 이 협상 타이밍도 잘 생각해야 예약 대기줄 손님을 잘 묵게 할 수 있어요.”
주인이 또 한 번 목을 축이는데, 바에 앉아 있던 수도승이 술을 더 시킵니다. 아까부터 5가 나온 주사위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습이 은근 음침해 보입니다. 주인은 종업원에게 술 한 잔 주라고 눈짓을 보내고는 목소리를 낮춥니다. 첫 마디에 ‘승려’라고 운을 떼는 걸 보니 대충 수도원 눈치를 보는 듯합니다. 남들 이야기는 크게 하는 게 아니죠.
“승려(1)들은 예약 대기 끝나고 손님들 들여보낼 때가 되면 줄 끝에 가서 서요. 방 한 칸만 주면 되니까, 호텔에서도 줄에 왜 다섯 명 섰냐 여섯 명 섰냐 시비 안 걸고 남는 방이 있으면 순순히 들여보내주거든.”
“상인(2)들은 대단해요. 흥정이 생활이라 그런지, 상인들이 협상을 하면 호텔에 방이 3개나 늘어난다니깐.”
“반대로 인부(6)들을 뒷문에 보내 놓으면, 대체 뭔 소리를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도 호텔 방 개수가 3개 줄어들어요. 못할 짓인데, 자기 손님을 예약 대기줄 앞쪽에 세워 놓았으면야 남한테만 못할 짓이지 뭐. 원래 1등을 하려면 남을 끌어내리는 것도 요령이잖아요. 하하. 귀족은…”
그는 멀찍이 창가에 앉아 있는 귀족들을 눈으로 흘끗 봅니다. 하나 같이 특정 주사위마다 팁을 주게 생겼습니다. 장삿꾼은 역시 돈을 잘 쓰는 귀족들을 신경쓰는 법. 어쩐지 이 의지력 낮은 밀주업자처럼 생긴 주인에게 좀 더 신뢰가 가기 시작합니다.
“귀족(4)은 원래 권력의 상징 아니겠어요? 귀족을 협상 보내면, 그 호텔에 줄 서 있는 자기 손님을 먼저 들여보낼 수 있어요. 놓칠 수 없는 손님이 있으면 귀족을 호텔 뒷문으로 보내요. 귀족은 놓쳐도 되냐고? 그거야 뭐. 허허. 허허허. 흠흠.”
“하인(3)을 뒷문에 세워 두잖아요? 나중에 손님 들여보낼 때 눈치 봐서, 줄 서 있는 자기 손님 대신에 하인을 들여보낼 수도 있어요. 하인 팔자가 상팔자라니깐. 뭐, 그래도 그 손님이랑 하인 중에 어느 한 쪽은 길에서 자야 하니까 잘 선택해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귀족을 길에서 재우고 하인을 들여보낼까…… 하인이나 귀족이나 들어가면 3원 주는 건 똑같은데... 설마……?”
“군인(5)들은 손님 들여보낼 적에 인부들을 밀어내고 줄에 섭니다. 아주 거친 양반들이야. 내 인부 남 인부 안 가려요. 어차피 최고의 숙박 관리인은 한 명인데, 이왕이면 줄 잘 세워서 남의 인부 밀어내는 게 기분 째지겠지요?”
선술집에는 손님들이 계속 드나듭니다. 동네 손님 중에 단골인 사람도 왁자하게 떠들고, 탈러가 딸그랑거리며 오갑니다. 분위기를 보니 제법 업그레이드도 한 술집인 듯이 보입니다. 주문도 척척 들어오는 걸 보니 어쩐지 이 선술집도 키워가는 맛이 쏠쏠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호텔마다 방이 다 떨어질 때까지 정문 앞에 줄 선 손님들을 쭉쭉 들이고 나면, 이 손님들이 주는 돈을 받아서 부자가 되는 거예요. 알겠지요? 아 참, 호텔도 잘 봐야 돼요. 아무나 다 받는 호텔부터 해서, 줄 선 군인은 아예 안 받는 호텔도 있고, 작은 손님들만 받는 호텔, 큰 손님들만 받는 호텔 등등 아주 다들 취향이 각양각색이야. 정문 위에 등을 달아 놔서 맨 앞에 줄 선 손님 얼굴이 다 보이는 호텔도 있고, 등을 좀 높게 달아서 두 번째 손님 얼굴이 보이는 호텔도 있고, 아예 협상 안 받는 호텔도 있고, 그리고 또…”
아무래도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생각 없이 줄 세운다고 일인자가 될 수 있는 곳은 절대 아닌 듯합니다. 눈치도 실력도 많이 따라야 할 것 같다 보니 도전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듭니다. 그러고 보니 이 선술집 장사도 제법 괜찮아 보입니다. 귀족들도 씀씀이가 커 보이고 말입니다. 맥주 기운 탓인지, 문득 눈앞에서 떠들고 있는 선술집 주인이 만만해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원래 모든 보드게임… 아니 직업이란 눈으로 보기엔 쉬울 듯해도 해 보면 결코 만만하지 않죠.
그렇습니다. 사람이 마체테를 뽑았으면 쥐 떼라도 썰어야 하는 법. 일단 이 숙박 관리인 업계에서 일인자 자리를 도전해 보기로 합니다. 느낌이 옵니다. 이번에는 분명 잘 될 겁니다. 요령을 잘 들었기도 하고 가만 생각해 보면 기본 규칙은 간단하니 적응만 잘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55쪽 약장수보다도 더 뒤쪽인 59쪽 선술집 주인보다는 숙박 관리인이 더 앞쪽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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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부킹.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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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너무 취향 저격의 글입니다.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_* 그 직업 소개 서적 저도 읽고 싶은데요?! 맛깔나는 게임 소개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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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드립이 치고 싶었어요 ㅠㅠ ㅋㅋㅋㅋ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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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읽다가 저의 상상력 부족으로 힘들었네요 ㅋㅋㅋ
재밌어 보이는데 궁금하군요 ㅎㅎ -
궁금해지셨다면 참으로 좋습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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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스킬게임즈의 오버북트를 코보게에서 가져오는줄 알고 놀랐네요-ㅅ-....
티펜탈도 그렇고 오버부킹도 그렇고, INN, 혹은 PUB을 경영하는 게임을 잘 가져오시는군요!! -
ㅎㅎ 그렇다기보다는 경영이라는 것이 보드게임에서 테마로 도입되기 좋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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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티바 랑 조금 비슷한가 싶다가도 훨씬 딥해서 좋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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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적힌 규칙이 전체 규칙의 2/3 정도라 보시면 됩니다. ㅋ 점수 내기를 위한 다른 조건들이 더 있습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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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코보게분들은 왜케 글을 잘쓰세요 수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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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사실 저는... 글쓰기에 소박한 꿈을 꾼 적 있는 과거를 지니고 있는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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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부킹 글 소식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언제 나오나요???? -
아직 좀 기다리셔야 됩니다! 얼마나 걸릴지 약속은 못 드립니다! (공장 어르신의 사정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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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글이 너무 맛깔나서 재밌게 술술 읽었습니다!! 마체테를 뽑았으면 쥐떼라도 썰어야 한다니.. 크툴루 신도다운 비유법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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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원래 쥐떼 하나에게 1딜 날리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진정한 승부사인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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