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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의 나에게서 2024년의 너희들에게. 암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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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18: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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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31 [개굴이]
안녕하세요! 오늘은 수다를 떨러 온 양서류, 개굴이입니다.
얼마 전 코리아보드게임즈에서 발매한 암영전, 재미있게 즐기고 계신가요?
파주 슈필 현장에서도 체험존을 운영을 했었는데, 저는 줄을...서느라 체험을 해보지 못했서 아쉬웠던 기억이 나네요 따흐흑.
오늘은 이 암영전에 대해 여느때처럼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해 보려고 해요.
이 이야기는 코리아보드게임즈의 제품 제공을 받아 플레이 해 본 후 풀어나가는 이야기고요, 그럼 꼬!
0.
대부분의 보드게이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원수는 4명 남짓이죠? 대부분의 게임의 인터액션은 4인일 때 가장 빛이납니다. 그 보다 적으면 심심하고, 그 보다 많으면 정신없죠.
저 역시 벙을 오픈했을 때 2, 3, 4로 갈수록 기분이 HIGH해지고요, 5인이 되는 순간 마치 폭락장을 맞은 것 처럼 LOW해집니다. 그 후 8인이 되면 다시 극적으로 HIGH해지고요.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4인 게임이 아니라 2인 게임입니다. 제 인생게임중 하나가 안드로이드넷러너라니까요?
주변에 아무런 보드게임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던 시절, 무리해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떠먹이려다가 실패하고
2코어로 꼬깃꼬깃 만든 덱을 갖고 서울로 올라가 대회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정말로 불꽃처럼 즐겼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게임이에요.
▲ 스네어 맞은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 넷러너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2인 게임은 그 이상의 게임에서는 느끼기 힘든 분위기가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진정한 1대 1 승부라는 점이겠죠? 아무래도 3인 이상이 플레이를 할 때에는 온전히 모든 상황을 컨트롤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어디선가 한 번쯤은 논쟁해봤을 주제, "순위권에서 밀려난 플레이어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만 봐도 알 수 있듯
여러 플레이어가 함께 하는 게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1등과 아슬아슬 1~2점 차이의 힘싸움을 하고 있는데, 4등 플레이어가 자기 1점 먹겠다고 제 점수 엔진 하나를 불태워버린다?
물론 꼴찌하는 사람이 아무것도 하면 안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해는 하겠지만, 왠지 그렇잖아요. 실력으로 진 것이 아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겼다. 뒷맛이 찝찝하죠.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2인 게임은 깔끔한 편이에요. 보드판을 사이에 두고 너와 내가 있을 뿐이고, 승부는 오롯이 둘의 실력에 따라 결정됩니다.
너의 감점은 나의 득점과 같아서 더 강한 자가 살아남고, 더 약한 자는 무릎꿇게 되죠. 아 얼마나 뜨거운 승부의 현장인가요.
그래서 저는 2인 게임을 굉장히 선호해요. 물론 매번 아내님을 2인 게임의 세계로 꼬시기 위해 실패를 하고 있지만요.
1.
하지만 인생 최고의 2인게임을 꼽으라면 그게 넷러너는 아니에요. 제 보드게임 경험을 책으로 표현한다면, 2챕터쯤 되는 부분에 쓰여질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2002. 격동의 밀레니엄의 시대이자 붉은 물결이 전국을 강타하던 그 때 질풍노도의 고등학생이던 저는 당시 입시 위주의 공교육에 찌들어있었는데요,
하루 하루 책과 씨름하는 삶에 지쳐 새로운 자극을 찾아 해메던 양서류에게 어느 날 큰 변환점이 찾아옵니다.
당시 가까이 지내던 친구 하나가 카드 뭉치를 이리 뒤적 저리 뒤적이는걸 봤는데, 가만 보니 어디서 본 듯한 레이아웃이더라고요.
▲ 다시 소환한 그 옛날 만화. 제가 이것만 안봤어도...!!
저 시점으로부터 다시 몇 년 전쯤이었는데, 게임 잡지에서 매직 더 개더링이라는 게임을 소개하는 만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굉장히 자세하게 기술되어있어서 당시 한 컷 한 컷 읽으면서 굉장히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원카드 정도밖에 몰랐던 저에게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달까요.
하지만 딱히 번화가도 아니었고, 집에서 저런 문화에 대해 관대했던 편도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제 마음속에 고이 접어 감춰놓았던 그 게임, 그 게임의 실물이 눈 앞에 나타났던거에요.
그 카드 뭉치를 본 순간 제 안의 듀얼리스트의 혼이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이런 저런 덱들을 맞춰가며 평택의 한 가운데에서 플레인스워커의 꿈을 펼쳐나가기 시작하죠.
▲ 하루에도 몇 번씩 도전하고, 도전받았던 격동의 2000년대를 보냈습니다.
와...진짜 재미있게 놀았어요. 쉬는시간마다 옆반에 쳐들어가서 진정한 남자들의 듀얼을 펼쳤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굉장한게, 그 때 평택은 촌동네라서 매직클럽같은게 있었을리도 만무하고 당근마켓이니 뭐니 이런것도 없어서 진짜 카페에서 막 알음알음 연락해서 택배로 거래하고 그랬던거에요.
그것도 커먼박스 구해다가 즉석에서 드래프트해서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했지만, 덱메이킹에 푹 빠져서 직접 해외에서 정보 찾아보고, 직접 발품팔아가며 꽤 공을 들였단 말이죠.
저 같은경우는 빨간색을 베이스로 고블린덱이나 번덱 등 화끈한 남자의 덱을 했고요, 제 친구는 파란색을 기반으로 스태시스 컨트롤덱이나 빅블루 등을 플레이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 네? 그 정성으로 공부를 했으면 뭐가 어쩌고 어째요?
이 때의 경험은 이후의 제 보드게임 인생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일단 1:1 게임이면 일단 호감도가 +50 정도 된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덱메이킹형 카드게임이면 호감도가 +50 더 되고요. 작년 가이오트 클럽에서 클래시 오브 덱스를 처음 했을 때 진짜 넋이 나갔다구요.
나아가 대부분의 덱메이킹형 카드 게임을 할 때 극단적으로 빠른 위니나 노크리쳐 번덱, 그게 아니라면 반대로 극단적으로 느린 컨트롤덱을 가장 먼저 시도하게 되더라고요.
저에게는 저게 뭐랄까, 추억속의 집밥같은 그런거에요.
그리고 이 애증의 매직 더 개더링을 만든 분이 바로 리처드 가필드, 암영전의 디자이너죠.
처음 본 순간 제 안의 혼이 "리처드 가필드의 카드게임인데 안할거야?" 라고 외쳤다고요.
2.
슬슬 암영전 이야기를 해 볼까요? 암영전은 카드로 하는 영향력 게임입니다.
마블 스냅을 떠올리면 대충 비슷할텐데요, 손에서 고유한 수치가 있는 카드를 내서 특정 구역의 영향력을 올리고, 그걸 기반으로 점수를 모아가는 게임입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카드는 한 장씩밖에 낼 수 없기 때문에 어느 구역에 집중하고, 어느 영역에서 심리전을 걸 것인가가 게임의 주요 컨텐츠입니다.
물론 아예 똑같은 게임은 아니에요. 애초에 암영전은 SPYNET이라는 예전 게임의 리뉴얼 버전이기도 하구요. 가장 큰 차이라면 승패 결정 방식이 되겠네요.
마블 스냅의 경우 게임 종료 시점에 더 많은 구역을 지배하고 있는 플레이어가 승리하므로 영역의 지배 자체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암영전은 조금 다른데요, 암영전에서 승패여부는 각 구역에 설치해 둔 승점카드의 점수를 합산해서 결정합니다.
재미있는건 이 승점카드를 설치하는데 조건이 있는데, 설치하는 시점에 해당 구역을 "지배" 하고 있어야 한다는 부분이에요.
즉 암영전에서 대부분의 경우 구역을 지배하는 것은 승점을 설치하기 위한 순간적인 이유일 뿐이지, 그 지속성은 크게 중요성을 띠지 않아요.
▲ 이런 게임이 으레 그렇듯, 높은 영향력이 주도권을 가져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는 게임을 전반적으로 길게 생각하기 보다는 짧게 짧게 현재에 집중하며 플레이하게 만듭니다.
게임 종반의 깜짝 지배를 위해 콤보를 아득바득 모아놓는 것 보다는, 당장 내 차례에 한 구역을 지배로 돌려놓은 후 그 차례에 해당 구역에 승점 카드를 한 장 내려놓는게 더 큰 의미가 있으니까요.
3.
보통의 카드게임이 메인 드로우를 한 장씩 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거기에 약간의 변주 정도만 주죠?
암영전은 이 드로우에서 다른 카드게임들과 살짝 차별점을 주고 있습니다.
일단 플레이어는 자신의 차례에 손패를 보충하거나 카드를 내려놓거나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다는 점부터 재미있습니다.
다시 말해 손 패를 보충받으면 득점의 기회를 잃습니다.하지만 손패를 보충 받아야 더 나은 선택지가 주어진다는건 말할 필요도 없겠죠.
그럼 이 손패를 어떻게 보충받냐인데, 암영전은 손패 보충을 무려 MTG의 캐쥬얼 포맷인 윈스턴 드래프트 방식을 통해 보충합니다. 키야 여기서 또 리처드 가필드가.
암영전의 탁자 중앙에는 세 장의 카드가 놓여있는데요, 손패를 보충하기로 했다면 이 중 맨 왼쪽 카드를 확인합니다.
플레이어는 이걸 가져오거나 안가져오거나 정할 수 있어요. 안가져온다면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은 후 그 오른쪽에 있는 카드를 똑같이 확인하고, 가져오거나 안가져오거나 할 수 있고요.
이렇게 세 번 카드를 볼 수 있는데, 당연히 이미 돌려놓은 카드는 가져올 수 없고요, 마지막까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드로우더미 맨 위의 카드를 가져오게 됩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렇게 일단 확인한 카드 위치에 해당 플레이어의 차례가 종료될 때 카드를 한 장씩 추가로 올려놓는다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보고도 안가져간 카드들(과 더불어 방금 가져가서 비어버린 위치)은 그 위에 자꾸 카드들이 추가되는데, 나중에 카드를 보충할 때 이렇게 여러장이 있는 더미는 그걸 통채로 가져가게 됩니다.
왜 센츄리나 푸에르토리코, 혁신의 시대 등에서 가져가지 않은 선택지에 돈을 추가로 올려주는 기믹 있잖아요? 그 기믹의 변주에요.
이 과정이 매우 쫄깃한데요, 한 3장쯤 쌓여있는 더미를 보잖아요? 그게 필요한 더미면 당연히 가져가겠죠.
문제는 계륵같은 카드들일때인데, 이걸 내려놓자니 내 왼쪽이 한장 더 얹어서 가져갈 것 같고, 이 다음걸 보자니 딱히 이득이라는 보장도 없어서 가져갈지 말지 결정하는 과정이 흥미로워요.
이는 벼룩 서커스 같은 푸쉬 유어 럭 장르에서 느낄 수 있는 쪼는 맛인데요, 생각치도 못했던 장면에서 맞닥뜨리니까 반갑더라고요.
▲ 어째 다들 첫 더미는 거들떠도 안보더라니.
4.
물론 카드게임의 근-본에 걸맞게 특수한 능력을 지닌 카드들도 당연히 있습니다.
특히 색상마다 어느정도 컨셉이 있다는 점이 인상깊었는데요, 빨간색 영역의 경우 보통 영역에 배치되어있는 상대의 단원을 제거하는 기믹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리고 이 빨간색 영역의 이름은 잘 어울리게도 "살殺"이죠. 파란색인 "도盜"영역은 어떨까요? 네. 영역 이름에 걸맞게 여기저기서 카드를 쏠랑쏠랑 빼오는 카드들로 이루어져있어요.
물론 덱메이킹 게임은 아니니까 "나는 이런이런 컨셉으로 게임해야지 홍홍" 이라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건 아니고 특정 색상의 카드에는 해당 색상만의 분위기가 있다...정도의 느낌이지만요
더불어 아트워크가 미려합니다. 저는 미니멀한걸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너무 거부감 들지 않으면서도 동양적인 맛이 낭낭하이 좋았어요.
▲ 배경은 과감하게 날리고, 외곽선의 터치는 동양화를 떠오르게 합니다.
5.
몇 년동안 공들여 키워낸 친구들을 졸업시키고 새롭게 회원을 받아들여 동아리를 운영하고있는 2024, 저는 희망과 현실의 간극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작년 재작년에는 둘러앉아서 네 시간동안 도미넌트 스피시즈를 즐기거나, 하루 종일 루트만 돌리는 등 제 취향의 게임을 굉장히 많이 돌릴 수 있었지만
새로 꾸려나가는 친구들은 요즘 아이들처럼! MZ처럼! 조금 더 간결하고 빠르게 결과가 나오는 게임들을 선호하더라고요.
새로운 집단에게 게임을 들이밀 때 마다 고민이지만, 이 친구들에게도 수준 맞는 게임을 파악하는 과정이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실제로 렉시오를 했을 때 끝까지 4보다 2가 강하다는걸 이해하지 못한 채 두시간을 보낸 친구도 있었고요,
반대로 익스플로딩 키튼이 최근에 저희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그 반응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하루에 짧은 게임을 다섯개씩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다행히 초보자 티를 아직 벗어나지 못한 녀석들에게 암영전은 적절한 심리전과 손패 조절, 마지막까지 승패를 알수 없는 데에서 나오는 의외의 역전 등으로 난이도와 흥미를 모두 휘어잡고 있습니다.
카드 텍스트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직관적인 편이어서 크게 어렵지 않게 적응하고, 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드로우 요소 덕분에 여러군데에서 즐거움을 느끼더라고요.
덕분에 앞으로 플레이해야 할 게임들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생긴 기분이에요. 요 정도 선에서 시작해서 천천히 또 수준을 끌어올려볼까 합니다.
▲ 입벌려 친구들아 비슷한 웨이트의 게임 떠먹여줄테니.
다분히 개인적인 경험에 따른 인상이긴 한데요, 아이들에게 규칙 설명을 해주다 약간, 아주 약간 갬성적이 되어버렸습니다.
2002년 리처드 가필드라는 작가가 만든 세계에서 정신없이 뛰어놀았던 내가, 2024년 다시 그가 만든 세계속에 너희들이 놀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말이에요.
2024년 지금 신나게 암살단원들을 밀어넣고 있는 저희 아이들은 2046년 어떤 친구들을 어떤 놀이터로 안내해주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때의 저와 여러분들은 누구의 작품에서 지금처럼 즐기고 있을까요? :) 문득 기대가 되더라고요.
오늘 잡담은 여기까지! 정신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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