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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 기획 세키가하라 기획기사 4편 – 전국시대부터 혼노지의 변까지
  • 2023-08-28 10:41:32

  • 4

  • 2,275

스태프 [GM]찰리
세키가하라 기획기사 1편 – 일본의 지리(1)
세키가하라 기획기사 1편 – 일본의 지리(2)
세키가하라 기획기사 2편 – 두 일본인 이야기
세키가하라 기획기사 3편 - 야마토와 막부


안녕하세요? [GM]찰리입니다. 이제 드디어 본격적인 전국시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전국시대의 주요 다이묘들과 일본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오다 노부나가의 이야기까지 해보려고 합니다.


 
 1. 전국시대의 다이묘들
 
 지난 글 막바지에 소개했던 오닌의 난이 막 끝난 1477년의 세력도입니다. 정확한 영토라기보다는 대략적인 영향력을 나타내는 세력도라 보시면 좋겠습니다. 정이대장군이 슈고 다이묘들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었듯이 슈고 다이묘들도 자신의 영지에서는 가신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영지를 완벽히 통치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전국시대를 거치며 많은 다이묘 가문들이 자신들의 영지를 가신에게 빼앗기거나 다른 다이묘에게 패하며 몰락합니다. 하지만 다테나 시마즈처럼 전국시대 끝까지 살아남아 에도 막부에서도 제법 큰 세력을 자랑했던 가문도 있었습니다.

 중앙의 아시카가가 무로마치 막부입니다. 저곳이 바로 교토인 것이지요. 전국시대 초기에 두각을 드러내던 다이묘는 주코쿠 지방의 오우치나 시코쿠 지방의 호소카와 같은 서쪽의 명문가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가문들은 중앙 진출에 신경을 쓰다 정작 가신에게 본거지를 빼앗기고 맙니다. 동쪽에서는 막부의 분가인 이마가와와 슈고 가문인 우에스기를 중심으로 동부의 패권을 두고 다투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권력의 틈을 노리고 새로운 다이묘들이 부상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90년 후 전국시대의 판도는 아래와 같이 바뀝니다.

 
 (출처: https://historystory.tistory.com/77, 아시카가 요시카게는 아사쿠라 요시카게의 오타입니다.)

 1560년대는 오다 노부나가가 오다 가문을 통일하고 본격적으로 전국시대 경쟁에 뛰어든 시기입니다. 오닌의 난 직후와 비교해 보면 여러 지역의 주요 다이묘가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리 가문의 가몬)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1/12/Ichimonjimitsuboshi.png)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주코쿠 지방의 모리 모토나리입니다. 백제 왕가의 후손인 오우치 가문과 오닌의 난의 주역인 야마나 가문을 모두 제치고 주코쿠 지방의 패자로 떠오른 가문입니다. 본래 모리 가문은 오우치 가문의 가신이었는데, 오우치 가문과 야마나 가문이 경쟁하는 동안 차분히 세력을 길러 두 가문을 모두 제압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모리 모토나리가 쓴 계책이 흥미로운데, 바로 다른 가문에 자신의 아들을 양자로 입적시켜 그 가문을 자신의 분가처럼 만든 것입니다. 후계가 끊긴 킷카와 가문과 코바야카와 가문에 자신의 차남과 삼남을 양자로 보낸 다음, 그 아들들이 그 가문의 당주가 되게 한 것이지요. 이렇게 주코쿠 지방의 유력 가문들을 자신의 휘하에 둔 덕분에, 규슈나 주코쿠의 다른 가문들과의 전쟁에서도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리, 킷카와, 코바야카와 이 세 가문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도 큰 역할을 했고 보드게임 <세키가하라>에는 이 중에서 모리 가문과 코바야카와 가문이 등장합니다.

 시코쿠 지방에서는 긴키 지방에까지 영향을 미치던 명문가인 호소카와 가문이 몰락하고 쵸소카베 가문이 시코쿠 대부분을 장악합니다. 가신이었던 미요시 가문이 호소카와 가문의 내분을 이용해 호소카와 가문의 유산을 장악했지만, 정작 미요시 가문도 가주가 연달아 요절하면서 무너지고, 그 사이 시코쿠 남쪽 도사의 다이묘였던 쵸소카베 모토치카가 시코쿠를 거의 통일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간토 지방에서는 호조 가문의 대두가 눈에 띕니다. 호조 가문은 간토의 아시카가 가문을 비롯한 전통적인 다이묘들을 멸문시키고 간토를 지배했습니다. 전국시대의 시작과 끝을 이 가문의 흥망성쇠로 설명하는 학설이 있을 정도로 호조 가문은 전국시대의 중요한 가문입니다. 가마쿠라 막부의 섭정가인 호조씨의 후예를 자칭하지만 실질적으로 연관은 없기에 이 가문을 후호조씨로 구분해서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케다와 우에스기처럼 전국시대 초기부터 세력을 지켜온 가문도 있습니다. 물론 이 가문들도 내분을 거치며 분가가 본가를 몰아내는 등의 혼란의 시기를 거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가문의 혼란을 마무리하고 일대를 평정해서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켄신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게 됩니다. 특히 신겐과 켄신은 전국시대에도 손에 꼽을만한 명장이었고 이들이 다섯 차례나 맞붙은 카와나카지마 전투 또한 전국시대의 주요 전투로 꼽힙니다.

 무로마치 막부의 분가인 이마가와 가문도 이 시기에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9대 당주인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주변의 유력 다이묘인 다케다 신겐과 호조 우지야스와 혼인 동맹을 맺고 마츠다이라 가문의 미카와를 사실상 지배하면서 오다 가문을 압박했습니다. 오다와 이마가와 사이에 낀 군소 다이묘인 마츠다이라 가문은 후계자를 인질로 보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는데, 이 인질이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

 하지만 이 수많은 유력한 다이묘들은 끝내 천하를 호령하지 못했고, 일본을 뒤흔든 것은 오다 노부나가였습니다.


 
 2. 오다 노부나가

 


 1) 오와리의 영주에서 중부의 패자로

 오다 노부나가의 영지인 오와리는 오늘날의 나고야 일대입니다. 본래 오와리의 슈고 다이묘는 시바 가문이었으나 이웃한 이마가와 가문의 침공으로 인해 권력을 잃고 신하였던 오다 가문이 실권을 장악한 상태였습니다. 노부나가의 가문은 오다 가문 중에서도 방계 말석에 해당하였지만 노부나가의 아버지인 노부히데가 본가와 주군을 모두 제압하고 센고쿠 다이묘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실권을 잃었다고 해도 오다 본가는 건재했고 그런 상황에서 노부히데는 후계를 정하지 못한 채로 갑자기 서거했습니다.

 노부나가는 노부히데의 적장자였기 때문에 가장 유력한 후계자였습니다. 하지만 불안요소도 많았습니다. 우선 동생과 서자 형들이 있었고 오다 본가도 건재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 장례에 막바지에나 나타나 영정에 향을 던지는 등 노부나가의 행실이 좋지 않았기에 오와리 지배층 사이에 평판도 나쁘다는 불안요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오와리 내부의 반란을 모두 제압하고 일가친족을 숙청한 끝에 오와리의 완벽한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오와리의 지배자가 된 오다 노부나가는 곧바로 주변 다이묘들의 위협에 직면합니다. 가장 위협적인 적은 오다 가문의 숙적인 이마가와 가문이었습니다. 호조와 다케다와 3국 동맹을 맺어 후방을 안정시킨 이마가와는 교토에 입성하여 스스로 새 막부를 창시하고자 하는 야심을 품었고, 교토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오와리는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요충지였습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교토 상경을 위해 그동안 비축한 물자를 바탕으로 최대 4만의 병력을 일으켰고, 이때 선봉을 맡은 부대는 마츠다이라 토모마스(훗날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였습니다. 한편 북쪽의 사이토와도 적대 중이었던 오다 노부나가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고작 최대 5천 명뿐이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오다는 기습만이 방법이라 생각하여 첩자를 보내며 적당한 장소와 시기를 물색했습니다. 그러다 악천후 속에서 휴식 중이던 이마가와군의 본영을 기습하여 다이묘인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베는 최상의 전과를 거둡니다. 다이묘를 잃은 이마가와군은 급격히 붕괴되어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하의 배신으로 인해 최후를 맞은 것을 제외하면 오다 노부나가는 하늘이 돕는다 싶을 정도로수많은 위기를 운 좋게 극복했는데 이 오케하자마 전투는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꼽을만합니다. 기습이 성공했더라도 이마가와를 베지 못했다면 이마가와 가문과의 전쟁이 지속되어 사이토 가문도 맞대고 있는 오다의 전세는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전투로 인해 이마가마 가문이 크게 흔들렸고, 그 와중에 도쿠가와가 독립하여 강력한 우군이 되었기에 오다는 동쪽 방면을 도쿠가와에게 맡기고 북쪽 전선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동쪽의 강대한 적이 사라지고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우군이 생긴 것이니, 이 전과가 아니었다면 오다 노부나가는 역사대로 일본을 뒤흔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라는 이름을 썼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린 시절부터 이마가와 가문에 인질로 보내져서 가신으로 활동하는 처지였습니다. 하지만 이마가와 가문에 보내지기 전에 잠시 오다 노부나가의 아버지의 계략으로 인해 납치되어 오다가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이 시절에 1534년 생인 노부나가와 1543년 생인 이에야스는 비록 나이차이가 있었을지라도 이 시기에 교감을 했었을 것이고, 공동의 적인 이마가와 가문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동맹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 둘의 동맹은 이에야스가 일군의 세력을 이뤄낸 시점부터 오다가 죽을 때까지 유지됩니다.  

 이에야스는 이 전투에서 생긴 이마가와 가문의 권력 공백을 틈타 자신의 영지로 돌아와 가신단을 장악했고, 인근 지방인 미카와국을 평정해 천황으로부터 조정의 작위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에야스는 조정으로부터 작위를 받을 때, 자신의 성을 마츠다이라 씨에서 도쿠가와 씨로 “복성”해달라는 특이한 요청을 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본디 저희 가문의 시조는 황실 방계인데, 마츠다이라 씨의 양자가 되면서 성을 잃었습니다. 부디 제가 황실 방계 성씨를 다시 쓸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는 말입니다. 천황은 전례 없는 요구와 주장에 근거가 부족하다며 난색을 표했지만, 조정 대신들이 받아준 덕분에 이에야스 본인에 한해 복성이 허락됩니다. 이 덕분에 도쿠가와는 촌동네의 별 볼일 없는 다이묘에서 정이대장군까지도 노릴 수 있는 신분으로 격상됩니다. 그가 일찍부터 오다처럼 큰 뜻을 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일화입니다. 이렇게 개성한 덕분에 도쿠가와는 별 다른 무리 없이 에도 막부를 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개성하면서 이마가와 가문으로부터 받은 모토라는 이름을 버리고 이에라는 이름을 붙여 이때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동쪽의 위협을 정리한 오다는 북쪽 전선인 사이토 요시타츠와의 전쟁에 집중합니다. 사이토 가문은 오다의 처가였으나, 완전한 동맹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처남 사이토 요시타츠가 장인인 사이토 도산에게 쿠데타를 일으킬 때 장인을 도왔기 때문에 이후로는 적대 관계로 돌아섭니다. 하지만 사이토 요시타츠가 30대 초중반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빈틈이 생겼고, 오다는 이때를 틈타 사이토 가문 영지 정벌에 나섭니다.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지만, 여동생을 아자이 나가마사에게 시집보내 혼인 동맹을 맺고 사이토 가문 내부의 분열을 획책한 끝에 마침내 오다는 사이토 가문의 영지인 미노국을 손에 넣어 2국을 지배하는 다이묘가 됩니다.

 이렇게 성장하는 오다에게 날개를 다는 사건이 막부에서 일어납니다. 미요시 가문이 13대 정이대장군인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시혜하고 그의 사촌동생을 새 정이대장군으로 옹립하는 정변이 일어난 것입니다. 요시테루 일가는 이 사건으로 인해 거의 몰살되었지만, 그의 동생인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출가하여 교토가 아닌 야마토에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무사들의 도움을 받아 오다에게 의탁합니다. 마치 조조가 헌제를 옹립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1568년 9월 오다는 적통 정이대장군을 다시 세운다는 명분을 내세워 서진합니다. 미요시 가문을 비롯한 간사이 지방의 다이묘들은 오다에 맞섰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오다는 교토를 점령하여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새 정이대장군으로 옹립했고 이듬해인 1569년에 교토 동쪽의 이세 국을 완전히 평정하면서 일본 중부의 패자로 올라섭니다.



 2) 1∙2차 노부나가 포위망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다와 정이대장군의 관계는 엇나가게 됩니다.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오다가 원하는 대로 꼭두각시로 남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상 붕괴한 막부의 힘만으로 오다에 대적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전국의 다이묘와 사원세력에게 서찰을 돌려 노부나가 토벌을 호소합니다. 오다의 두 번째 위기인 제1차 노부나가 포위망이 결성된 것입니다. 이 포위망에는 당대 최고의 강병을 자랑하는 다케다 신겐과 오다와 끝없이 대립하던 아사쿠라 요시카게를 중심으로 여러 다이묘와 사원들이 합세했습니다(당시 승단은 자체적으로 승병을 육성하여 다이묘에 준하는 세력을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이 포위망에는 오다의 매제인 아자이 나가마사까지 참여하였는데, 본래 아자이 가문이 아사쿠라 가문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형성했기 때문에 양자의 대립에서 아사쿠라 쪽을 지원한 것입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태에서 아군마저 이탈하였으니 오다는 매우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다는 불리한 시점에는 조정을 압박해 평화 조약을 맺는 식으로 시간을 벌고, 작은 세력부터 각개격파하는 식으로 포위망에 대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교 세력인 엔랴쿠지(연력사)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절을 불태우고 안의 사람들을 남녀노소 불문하고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전황을 유리하게 가져가던 오다였으나 다케다 신겐이 3만의 병력을 이끌고 총공격을 개시하면서 전황은 반전됩니다. 전국시대 최고의 무장으로 꼽히는 다케다 신겐의 대군을 상대로 오다와 도쿠가와의 연합군은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맙니다. 이때 벌어진 전투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역사적인 참패인 미카타가하라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도쿠가와가 참패하고 후퇴하는 와중에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했던 것처럼 공성계를 펼쳐서 적이 물러나게 했다거나 역습을 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 기록들은 에도 시대 이후부터 발견됩니다. 도쿠가와 인생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이기 때문에 후대에 명예회복을 위한 창작이 더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쿠가와군이 맡던 전선이 붕괴되면서 오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지는 듯했지만, 신겐이 급사하면서 상황이 반전됩니다. 다이묘가 죽은 신겐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포위망은 그렇게 와해되고 맙니다. 이후 병력을 수습한 오다와 도쿠가와는 역습에 나서 포위망에 참여한 다이묘들을 정복합니다. 이때 매제인 아자이 가문을 정벌할 때 활약한 사람이 훗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되는 키노시타 히데요시였습니다. 히데요시는 전쟁통 속에서 오다의 여동생을 구출해 오는 활약을 했고, 전후에 아자이 가문의 영지를 받아 이때부터 다이묘로 자리 잡게 됩니다.

 1차 노부나가 포위망이 와해된 후, 오다는 요시아키를 교토에서 추방하여 막부를 사실상 해체합니다. 추방된 요시아키는 주코쿠의 패자 모리 모토나리에게 몸을 의탁하고 막부를 이어갑니다. 1차 포위망을 극복한 오다에게 새로운 적이 생긴 것입니다.

 2차 노부나가 포위망은 다케다 신겐의 라이벌 우에스기 겐신을 맹주로 주코쿠의 패자 모리 모토나리와 오사카의 불교 세력인 혼간지를 주축으로 만들어집니다. 2차 노부나가 포위망은 1차 때보다는 비교적 덜 위협적이었고, 맹주인 겐신이 후계를 정하지 못한 채로 급사하면서 와해되고 맙니다. 두 번의 포위망 모두 가장 위협적이었던 다이묘가 급사하는 행운이 겹친 것입니다. 2차 노부나가 포위망이 와해된 후, 남은 것은 그들을 정벌하는 일뿐이었습니다.



 3) 혼노지의 변

 
 (출처: 나무위키)

 혼노지의 변 직전의 세력도입니다. 이 시기의 노부나가는 단독으로 다면 전쟁을 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세력을 자랑했습니다. 노부나가는 휘하 가신들을 다이묘로 임명하여 여러 군단을 운용하며 세력을 넓혀갔습니다. 대부분은 그동안 적대하던 세력을 점령한 것이지만, 간사이 지방을 점령하는 동안 동맹 관계였던 쵸소카베 모토치카의 영역을 침공하기도 합니다. 이제 토사구팽의 시기가 온 것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는 이때까지도 동맹 관계였지만, 오다가 이에야스의 장남(이자 오다의 사위)과 아내를 다케다 가문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처형할 것을 명하며 양자 사이에 긴장이 흐르게 됩니다. 이 일은 결국 도쿠가와가 아들과 아내를 자결시키며 일단락됩니다. 명을 듣지 않고 이제 와서 오다와 맞서기는 도쿠가와로서도 무리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오다는 주코쿠 지방의 정벌은 히데요시에게 맡기고 자신은 아들과 함께 시코쿠 지방 정벌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쵸소카베를 정벌하고, 본래 시코쿠 지방의 영주인 미요시 가문 아래에 둔 다음, 미요시 가문에 자신의 아들을 양자로 보내 시코쿠를 손에 넣는 것이 이번 정벌의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혼노지의 변이 일어나면서 정벌은 계획대로 이뤄지지 못합니다.

 혼노지의 변은 오다의 가신인 아케치 마츠히데가 일으킨 정변입니다. 아케치 마츠히데는 처음부터 오다를 섬긴 가신이 아니라 원래는 마지막 정이대장군인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가신이었습니다. 요시아키가 오다의 신세를 지는 과정에서 주군을 바꾸게 된 처지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뒤늦게 합류했지만, 마츠히데는 히데요시와 함께 일 중독자 수준으로 근면한 오다에 맞출 수 있는 둘 뿐인 가신이었기에 중용됩니다.

 혼노지의 변 직전, 오다는 히데요시에게 원병 요청을 받고 마츠히데로 하여금 원군을 이끌고 지원을 가도록 명령합니다. 그런 다음, 자신은 시코쿠 원정을 준비하기 위해 교토의 혼노지라는 절에 진을 차립니다. 아케치 마츠히데는 오다의 명을 따라 단바에서 병력을 모은 다음, 서쪽으로 행군합니다. 그러다 교토에서 열병식을 한다는 핑계로 행군로를 바꾼 다음, 교토에 입성하고서는 “적은 혼노지에 있다.”라는 말과 함께 오다 노부나가를 공격합니다. 당시 오다를 수행하고 있던 병력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분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츠히데군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다 노부나가와 후계자인 오다 노부타다까지 전사하고 맙니다.

 아케치 마츠히데가 관련된 기록을 얼마 남기지 않고 전사했기 때문에 그가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만 남아있습니다. 다만, 정변을 일으킨 후 교토에서 민심을 얻고자 프로파간다를 벌이고 인근 다이묘들의 협조를 구했던 점을 보면 오다의 자리를 노리는 마음은 분명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츠히데가 오다 가문으로 넘어간 이후에도 꾸준히 요시아키와도 서신을 주고받았던 점을 보면 요시아키가 정변을 부추겼을 정황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4) 히데요시의 천하

 혼노지의 변이 전국에 알려지자 일본은 일대의 혼란이 일어납니다. 각군에는 탈영병이 속출하고,오다 가문의 지배가 자리잡지 못한 지역에서는 반란도 이어졌습니다. 이 와중에 가장 빨리 움직인 사람이 바로 히데요시입니다. 히데요시는 혼노지의 변을 전해 듣고는 바로 모리 가문과 화친하고 교토로 행군합니다. 이때 히데요시군은 6월 6일 오후에 다카마쓰를 출발해 7일 밤에 히메지성에 도착했는데, 대략 30시간 동안 70km를 행군한 것입니다. 히메지에 도착한 히데요시는 오다의 삼남 노부타카와 합류하며 명분은 물론 군세도 늘립니다. 반면 아케치 마츠히데는 교토에서 돈을 뿌리고 자신을 주 무왕에 비유하는 프로파간다를 펼쳤으나, 민심은 그를 떠난 지 오래였습니다.

 둘은 13일 교토 서쪽의 야마자키에서 맞붙었고 최소 2배에서 4배까지 군사가 많았던 히데요시가 이 전투에서 승리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잡습니다. 전투에서 패하고 달아난 마츠히데는 낙오병을 사냥하던 농민의 죽창에 찔려 사망합니다.

 이후 히데요시는 이 사태의 뒷수습을 위한 키요스 회의를 개최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이제 히데요시가 천하의 중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전국시대 통일의 기틀을 만든 다이묘입니다. 오다 이전 시대의 천하인들은 자기 지방을 기반으로 교토에 진출하여 막부와 조정에 영향을 끼치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다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여러 다이묘들을 정벌하고 넓은 영토를 지배했습니다. 이를 가능케 한 오다의 장점은 대국적인 전략을 그리는 능력과 정치력이었습니다. 오다의 야전 사령관으로서의 능력이나 오다 군의 전투력은 당대의 다른 세력과 비교하면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다는 불리할 때는 외교전을 펼치고 상대가 약해졌을 때 전쟁을 벌이는 방식으로 적들을 제압합니다.

 또한 가신들이 독립적인 다이묘로 활동한 다른 세력과는 달리 오다의 가신들은 군주의 신하처럼 움직였습니다. 이 때문에 반기를 든 가신도 몇 있었지만, 봉건제에 머문 다른 다이묘들과는 달리 절대군주정과 비슷한 체계를 갖춘 오다 세력은 세력이 커지더라도 분열되지 않고 다면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다가 죽으면서 세력은 분열되고 동맹인 도쿠가와도 독자적인 행보를 걷습니다.

 오다가 그렸던 통일 후 일본의 체계가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의 행보를 통해 미루어 짐작해 볼 수는 있겠습니다. 오다는 수도 교토와 자신의 고향 나고야 사이에 있는 비와호 인근에 아즈치 성을 지어 기성으로 삼았습니다. 아즈치 성은 단순한 방어용 성을 넘어 화려하기로도 유명했고, 성 내부에는 가신단이 머물 수 있는 저택도 있어 이곳이 훗날 오다 정권의 수도가 되었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다가 천황 조정을 어떻게 다루었을지는 정권의 중심지를 추측해보는 일보다도 더 어렵습니다. 이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문제가 삼직추임문제입니다.

 삼직추임문제는 오다가 제대로 의사를 표하기 전에 혼노지의 변으로 사망하여 비교적 모자란 사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문제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천황 조정에서는 천하의 패권을 쥔 오다에게 관백, 태정대신, 정이대장군 중 하나에 취임할 것을 제안합니다. 정이대장군은 어떤 직위인지 모두 아실테고, 관백은 천황의 섭정, 태정대신은 조정의 우두머리인 직위입니다. 관백과 태정대신의 차이는 태정대신은 율령제 체제 하의 정점이지만, 관백은 율령제 체제 밖의 특수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다는 이 제안에 확답을 하지 않은 채 혼노지의 변으로 사망합니다. 설에 따라서는 오다가 세 직위를 모두 거절했다고도 보는데, 그렇다면 오다는 조정에서 제안할 수 있는 최고의 직위 셋을 모두 거절하고 새로운 체제를 꿈꿨다고도 해석해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히데요시는 관백에 올랐고 이에야스는 정이대장군에 오릅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해보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세키가하라 역사 마지막 편인 히데요시부터 세키가하라까지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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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Lv.3 Mido
    • 2023-09-05 11:16:05

    항상 재밌는 기획기사 잘 보고 있습니다.
    세키가하라를 다루기 위해서 일본 역사를 훓는 과정에서 매우 노고가 크셨을 것 같습니다.
    처음 다는 댓글인데, 지적을 드리기 되어 매우 송구합니다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첫번째 이름은 마츠다이라 토모마스가 아니라 모토야스인 것 같습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에서 모토(元)을 따서 지었다고 알고 있어서요.
    재밌고 훌륭한 글에 오타가 하나 있는 게 안타까워서 댓글 올립니다.
    다음 기사도 아직 안읽었는데,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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