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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 콘텐츠 [찰리의 보드게임 테마기행] 로빈 후드의 모험 6편 – 실지왕 존
  • 2022-10-24 08: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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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GM]언테임드
로빈 후드의 모험 6편 – 실지왕 존

 로빈 후드의 모험 1편 - 의적
 로빈 후드의 모험 2편 - 잉글랜드의 시작
 로빈 후드의 모험 3편 - 정복왕 윌리엄

 로빈 후드의 모험 4 - 헨리 2
 로빈 후드의 모험 5사자심왕 리처드 1

 드디어 이 길었던 이야기의 마지막인 실지왕 존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너의 이름은
 
(출처: https://namu.wiki/jump/TlZ5joBxa5Vvnbnw%2B6%2FkDl2qIlNENzgsOrNJ6jw19ZUJ7jAk5CO55cKt4%2FNUDNjApcZUIBrbkI9gz3nPGZxtm5p%2B%2FigkujQ%2FxkkUljmpIC4jNkttttr3x9vX5cqhnUVJE1bi1ZPdtGDKFWGtyK78fQ%3D%3D)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실지왕 존의 이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실지왕 존은 다른 영국 왕이나 여왕과는 달리 이름에 몇 세인지가 붙지 않습니다. 앞서 정복왕 윌리엄 1세 이야기를 할 때, 이름에 들어가는 세라는 말은 한 왕조에서 이 사람이 그 이름을 쓴 몇 번째 사람인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따라서 영국 왕실 역사상 존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은 오직 실지왕 존 1명뿐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단순히 존이라는 이름의 왕이 그 이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 왕실에서 남자 이름 존은 실지왕 존 이후로 기피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지왕 존에 대한 영국에서의 역사적인 평가가 어떤지는 이름으로도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존 왕 이후 영국 왕실 족보에 존이라는 왕자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나, 모두 막내아들이며 요절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당대에 그친 왕명으로는 존 외에도 스티븐, 필립, 앤, 빅토리아가 있는데, 이중 여왕의 이름은 여왕이 적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제외하면 스티븐과 필립이 존처럼 기피되는 이름이었습니다. 스티븐은 헨리 1세의 외조카로 딸에게 왕위를 주겠다는 헨리 1세의 유언에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와의 내전이 수습되고 왕위에 오른 것은 헨리 1세의 외손자이자 플랜테저넷 왕가의 창시자인 헨리 2세이니, 헨리 2세와 맞선 스티븐이라는 이름은 후손들에게는 선택하기 어려운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필립은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영국의 메리 1세와 결혼하면서 붙은 이름으로, 펠리페 2세가 메리를 찬밥처럼 대우하다가 사별한 후에는 영국과 전쟁을 벌였으니 선택하기 어려운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스티븐은 반역자였고 필립은 외국인인데, 존은 자신의 후손이 왕가를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등한 취급을 받은 것입니다.

존 왕의 별명인 실지왕은 Lackland를 번역한 것인데, 본래는 존이 왕자 시절 다른 형들과는 달리 영지를 받지 못해서 붙은 별명이지만(이 때문에 헨리 2세는 아일랜드를 정벌하여 존에게 영지를 주려고 했습니다), 훗날 왕이 되어 영토를 다 까먹은 덕분에 영지가 없다는 뜻보다는 영토를 잃었다는 의미로 더 쓰이게 됩니다.

 

 (2) 실지왕 존

 
(출처: https://namu.wiki/jump/TlZ5joBxa5Vvnbnw%2B6%2FkDl2qIlNENzgsOrNJ6jw19ZXMp9kSD1Lyri6Q4aK9kaVIPc4YMufuvstjC7y6OvYasOjaoXvnnaWj8jUIH1iSviQ%3D)

1180년은 리처드 1세와 존 왕의 아버지인 헨리 2세가 재위하던 시기이고 1223년은 존 왕이 사망하고 7년이 지난 후입니다. 빨간색은 잉글랜드왕의 프랑스령, 파란색은 프랑스왕의 직할령, 녹색은 필리프 2세의 봉신들이 지배하는 영지, 노란색은 교회령입니다. 보시다시피 헨리 2세가 일군 프랑스 절반에 달하는 영지는 그의 막내아들이 어머니의 영지인 아키텐만 빼고 모두 말아먹었습니다.

리처드 1세 사후 존은 그 뒤를 이어 잉글랜드 왕위에 오릅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리처드 1세에게는 후계자가 없었지만, 넷 째 형 제프리에게 아서라는 아들이 있어 계승권을 놓고 경쟁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서는 제프리의 뒤를 이어 브르타뉴 공작에 올랐고 프랑스왕 필리프 2세의 지지를 받았지만, 존은 필리프 2세에게 영지를 포함해 막대한 뇌물을 바쳐 자신을 지지하도록 하여 즉위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존은 즉위 시작부터 프랑스 영지를 잃기 시작합니다.

즉위한 다음 해부터 존은 프랑스 영지를 잃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합니다. 왕비였던 글로스터의 이사벨과 이혼하고 앙굴렘의 이사벨과 결혼한 것인데, 문제는 앙굴렘의 이사벨은 뤼지냥 가문의 위그 9세와 약혼한 사이였다는 것입니다.

중세 역사를 조금 아시는 분들은 뤼지냥이라고 하면 예루살렘 왕국을 말아먹은 왕인 기 드 뤼지냥을 떠올릴 수 있는데, 위그 9세는 그 기의 형입니다. 뤼지냥 가문의 역사를 다 말하기는 어려우니 지금은 아키텐 공국의 봉신인 백작이라고만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당시 앙굴렘 백작에게는 딸인 이사벨만 있었기에 위그 9세가 이사벨과 결혼한다면 라 마르크와 앙굴렘 두 백작령을 얻어 공국 내에서 세력이 막강해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존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이미 약혼자가 있는 앙굴렘의 이사벨과 결혼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런 무리한 행보에 뤼지냥 가문은 반발하여 프랑스왕인 필리프 2세에게 존을 제소합니다. 프랑스 영토 내에서 아키텐 공작 존은 프랑스왕 필리프 2세의 봉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존은 법정에 출두하지 않았고 필리프 2세는 존의 프랑스령 영토를 모두 몰수해 아서에게 주는 처분을 내립니다. 이는 필리프 2세의 선전포고인 셈이었습니다.

명분을 얻은 아서는 아키텐으로 진격해 할머니인 엘레오노르를 생포하려고 했지만, 존은 신속한 역공으로 이를 막아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동맹인 앙주 영주를 무시하고 포로로 잡은 귀족들을 가혹하게 취급하여 모두 옥사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조카 아서는 어느 수도원의 기록에 따르면 술에 취해 직접 목졸라 죽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행보는 당시 중세 유럽의 기준에서는 심한 폭정이었기에 결국 브르타뉴와 앙주의 귀족들은 프랑스왕의 편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이렇게 존은 형의 영지였던 브르타뉴와 아버지의 영지였던 앙주를 잃습니다.

동양 기준으로 반역은 삼대가 멸할 중죄지만, 중세 유럽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작이 자신이 모시는 백작과 그 백작이 모시는 왕 사이에 일어난 전쟁에서 백작의 편에 서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봉신 계약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것이기에 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전쟁에서 승리한 쪽은 승자의 권리로 패자를 포로로 삼아 몸값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존이 아서와 아서를 지지한 귀족을 상대로 저지른 행보는 승자의 권리를 넘어선 심각한 폭정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존 왕의 봉신들이 프랑스로 편을 옮기더라도 먼저 중세법을 위반한 것은 존이니 정당한 행보였던 것입니다.

존 왕이 이렇게 프랑스 서쪽에서 전쟁을 벌이는 사이 필리프 2세는 직접 노르망디를 공격합니다. 존은 서쪽에서의 전투를 마치고 반격에 나섰지만 실패했고, 노르망디의 귀족들은 민심을 잃은 존을 버리고 기꺼이 필리프 2세의 봉신이 되기로 합니다. 이렇게 존은 윌리엄 1세부터 내려온 노르망디를 잃습니다.

이제 존에게 남은 것은 아키텐, 그나마도 라 마르크는 떨어져 나간 수준이었습니다. 전쟁을 패배로 마친 존은 캔터베리 대주교 서임 문제로 교황과 대립하다가 파문을 받고 성직자의 재산을 몰수하기까지 하다가 결국에는 교황에게 잉글랜드를 봉헌하는 소동을 일으켜 잉글랜드의 귀족과 백성들도 질리게 만들었습니다.

 

 (3) 마그나카르타
 
 (마그나 카르타라는 이름에 이 게임이 떠오를 분들도 계시겠군요.)

위의 역사를 겪고도 프랑스 영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존 왕은 잉글랜드에서 엄청난 세금을 거둔 후 다시 프랑스를 침공합니다. 이번에는 신성로마제국과 플랑드르 백작까지 끌여들였지만, 존 왕의 군대는 프랑스의 왕자 루이 8세가 물리치고 신성로마제국의 연합군은 필리프 2세가 물리치며 이 전쟁도 프랑스의 승리로 돌아갑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프랑스 왕의 프랑스 영토에 대한 지배는 더욱 공고해지게 됩니다.

 잉글랜드에 돌아온 존은 전쟁으로 인해 엉망이 된 국가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다시 한번 귀족들에게 세금을 물렸고, 이미 수 차례의 전쟁으로 인해 불만이 생긴 귀족들은 이에 반발합니다. 귀족들은 런던으로 진격했고, 존 왕의 폭정을 참지 못한 런던 시민들까지 가세하여 반군은 무혈입성하게 됩니다. 이때 왕을 죽이는 대신 권리를 제한하자는 온건파의 의견에 따라 작성된 것이 바로 마그나 카르타인 것입니다. 마그나 카르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https://namu.wiki/jump/K2wKK7F9JiXGwMDUa0lKbTIGSPYHt%2BI7%2FEXAZBOTr65yz4elmpVOCqHYHUceJp%2BnLtn1WI3XH3IGh5F%2FxUBLKkMlzQglLiTRj3VeuBnfBqekuItA4oLVHriHBUMQl%2BxH)

 교회는 국왕으로부터 자유롭다.
 왕의 명령만으로 전쟁 협력금 등의 명목으로 세금을 거둘 수 없다.
 런던과 다른 자유시들은 자체적으로 관세를 정한다.
 왕은 따로 정해진 사안에 대해서만 의회를 소집할 수 있다.
 잉글랜드의 자유민은 법이나 재판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유, 생명, 재산을 침해받을 수 없다

 
프랑스 인권 선언과 같은 혁명적인 문서라기보다는 당시의 관습을 명문화한 것이지만, 이를 명문화했다는 것은 존 왕이 그러한 관습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족들뿐만이 아니라 자유민의 권리에 대해서도 명문화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 반란에 런던 시민들도 참여한 것이 반영된 문장으로 이후 젠트리 계급이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존 왕은 마그나카르타에 서명했음에도 이를 순순히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교황에게 귀족들을 고발하여 무효화했고, 귀족들은 프랑스 왕세자였던 루이 8세를 왕위에 올리고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시기를 다룬 영화가 아래에서 소개하는 아이언클레드입니다.

 

영화는 프랑스 왕세자가 왕위에 올라 귀족들이 승리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역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로체스터성에서 존 왕의 진격을 막아낸 것은 맞지만, 결국 왕당파가 승리하여 왕위는 존의 아들인 헨리 3세에게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헨리 3세는 즉위한 후 마그나 카르타는 자신과 한 계약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인 존과 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그 효력을 무력화했습니다. 하지만 헨리 3세의 말년에 일어난 반란으로 인해 잉글랜드에 의회제가 정착하면서 훗날 있을 민주주의 제도의 씨앗이 심어지게 됩니다.
 

 (4) 아이반호

 앞선 연재에서 로빈 후드 서사에는 피지배층인 앵글로색슨족과 지배층인 노르만인들 간의 갈등이 들어있다는 설명을 했던 것이 기억나시나요? 하지만 이 서사의 원류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국민작가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입니다.

 
(출처: https://namu.wiki/jump/Vfoc3ERSr4V7L8Y5wkloXtWTIpewkH60DpnGM9jm6rasSwSfwV5CcUDM2z6fkext9075HxKrW%2FF%2Fb1kilJeZoQ%3D%3D)

 "아이반호"는 수가 얼마 남지 않은 앵글로색슨계 귀족인 주인공 월프레드 아이반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아이반호는 리처드 1세가 십자군 전쟁으로 부재중인 시기에 그에게 맞서고, 리처드 1세는 신분을 감추고 돌아와서 그런 아이반호를 도와주며 함께 반란을 평정하고 잉글랜드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내용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아이반호를 도와주는 역할로 록우드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인물의 본명은 놀랍게도 로빈 후드입니다.

 1819년에 출간된 아이반호는 이후의 로빈 후드 서사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주인공이 리처드 1세와 함께 십자군 전쟁을 갔다가 돌아와서 존 왕에게 대항하다가 리처드 1세가 귀환하여 승리하는 서사를 그대로 옮긴 로빈 후드 판본도 있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소설 아이반호의 주요 갈등인 앵글로색슨과 노르만인의 갈등 구조 역시 로빈 후드 이야기에 차용되었습니다. 시대적으로도 영국과 프랑스가 세계를 두고 힘싸움을 하는 19세기였으니 당대에 호응을 얻기에도 좋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존 왕의 이야기를 끝으로 로빈 후드에 담긴 역사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긴 연재 글을 봐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더 알차게 준비해서 새로운 연재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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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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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24 14:57:36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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