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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체이스 개발자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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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4 16: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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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GM]언테임드
‘보드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라는 생각이 한 번이라도 스쳐 간 경험이 있다면 지금부터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규칙도, 형태도 엉성한 아이디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멋진 모습의 보드게임으로 완성되는지, 신작 <시티 체이스>의 개발을 맡았던 개발자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살펴보자.
도심에서의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 시티 체이스
<시티 체이스>는 한밤의 도시에서 벌어진 경찰과 도둑의 숨 막히는 추격전을 그린 게임이다. 게임의 진행 방식은 게임의 이름만큼이나 직관적이고 익숙하다. 하지만 추격과 추론의 순간마다 플레이어들이 느끼는 쫄깃한 긴장감은 여타의 게임들과 궤를 달리한다. 특히, 같은 게임을 즐기고 있음에도 플레이어가 맡은 역할에 따라 전혀 다른 게임 경험을 맛보게 된다는 점은 <시티 체이스>의 백미이다. 헬리콥터가 도둑이 숨어있는 건물 근처로 수색 반경을 좁힐 때 도둑이 느끼는 두근거림과, 수색 행동으로 건물을 들추기 직전에 경찰이 느끼는 기대감은 그야말로 최고조에 이른다. 이러한 감각들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나 게임에 아주 강하게 몰입할 수 있게 되며, 플레이어로 하여금 재미있다고 느끼게 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개발자로서 이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처음 마주했던 날, 긴장감 넘치는 규칙 구성이 마음에 들었고 입체 구성물로 플레이 감각을 극대화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상품으로의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티 체이스>는 핵심 아이디어를 제외한다면 초창기의 엉성한 모양새 대부분에 많은 변화가 가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대다수 보드게임은 결과물을 상상하기 어려운 단계의 아이디어 초안이나 조악한 형태의 프로토타입 등에서 출발하게 된다.
프로젝트의 시작, 아이디어 소싱
보드게임 개발의 시작은 아이디어다. 개발팀에서 직접 구상한 아이디어를 토대 삼아 프로젝트로 착수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문적으로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작가들의 게임을 발굴하는 경우도 많다. <시티 체이스>는 그중 후자에 해당하며, 프로젝트의 시작은 이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처음 마주했던 2019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리는 독일 뉘른베르크 <국제 완구 박람회>에 참가 중이었고, 현장에서 여러 퍼블리셔 관계자와 작가들을 만나서 우리 게임들을 소개하는 동시에 새로운 게임을 찾고 있었다. 정신없이 분주한 일정을 소화하던 중, 박람회장의 수많은 인파를 뚫고 우리 부스를 찾아온 한 사내가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지아코모'라고 소개한 그는 이탈리아의 개발사 '서 체스터 코블레폿'의 매니저였으며 구상한 게임 아이디어들을 보여주기 위해 찾아왔다고 했다. 특히 가지고 온 게임 중에서 고품질의 플라스틱 구성물이 필요한 게임이 있는데, 당시에 우리가 출품한 <보석찾기 듀얼>과 <신비한 숲속의 반디요정>의 샘플을 보고 해당 게임의 개발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찾아오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그를 환영했고 곧 자리에 앉아 게임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아코모가 보여준 많은 게임들 중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게임은 없었다. 그가 보여준 게임들은 상품으로 개발하기에는 다소 부족하거나 밋밋한 규칙의 게임들이었다. 더군다나 굉장한 달변가였던 지아코모는, 우리가 말을 꺼낼 틈도 없이 신이 나서 줄줄이 게임을 소개하고 있었던 터라 우리 모두는 약간의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가방이 거의 비어 갈 때쯤, 그가 드디어 마지막으로 소개할 게임이라며 흰색 상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2019년 2월에 소개받은 콥터 체이스 프로토타입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콥터 체이스'라는 이름이 휘갈겨진 그 상자에서 꺼낸 프로토타입은 단번에 우리를 사로잡았다. 입체 건물들로 구성된 도시의 모습, 헬리콥터와 자동차 게임말, 단순해서 쉽지만 긴장감이 느껴지는 게임의 분위기까지 모든 요소에서 상품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게임을 해보고 나서는 세계적인 보드게임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와 <화이트홀 미스터리>의 가족용 버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실제로 해당 게임들을 만든 가브리엘레 마리 작가와 <이스케이프 덱>, <시밀로> 시리즈를 만든 마르티노 치아키에라 작가가 함께 개발한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은 더욱 커졌다.미팅이 끝나고 난 뒤에는 하나밖에 없다는 '콥터 체이스'의 프로토타입을 돌려주며 곧 연락하겠다는 인사를 나눴고,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사내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지아코모에게 연락하여 프로토타입을 받아볼 수 있었다.
테스트, 테스트, 그리고 또 테스트
2019년 4월에 프로토타입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테스트 플레이에 돌입했다. 테스트 플레이는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수없이 진행되는 과정인데, 게임을 정말 많은 사람들과 여러 조건에서 테스트한 뒤 개선이나 상품화에 필요한 결과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콥터 체이스'의 프로토타입을 거의 모든 임직원들에게 소개하였고, 여러 부서의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조건 아래서 많은 테스트를 진행했다.
언제나 개발팀의 목표는 좋은 보드게임을 만드는 것이며, 이를 위해 고려할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제품의 소비자층을 예상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경험과 환경에 따라 선호하는 게임의 종류는 천차만별이지만 패밀리 게임, 파티 게임, 게이머스 게임 등 넓은 범위에서의 취향 분류는 가능하다. 이에 따라 어떤 부류의 게임인지 정확히 파악하여 목표 소비자를 정하고 그에 맞게 모든 요소를 잘 준비한 게임은 시장에서 좋은 보드게임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잘 만들어진 게임을 귀신같이 알아보는 고객들의 눈에 들 수 있다면 높은 매출을 낼 수 있는 제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발굴하거나 개발에 착수할 때는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테스트를 거치며 선호도와 의견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콥터 체이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추격전' 소재와 재미있는 규칙, 그리고 입체 구성물이 한데 모인 게임이었기 때문에 어린이나 가족 단위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판매가 가능할 제품이라고 설정하였다. 그래서 다양한 부서의 직원들과의 테스트에 이어 국내외의 여러 보드게임 행사에서 일반 관람객들의 시연회를 진행하였다. 정말 많은 테스트와 시연을 거치며 개선이 필요한 사항들에 대해 정리할 수 있었고, 게임은 우리 직원들과 대중들에게서 모두 기대 이상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테스트와 시연 결과를 통해 '콥터 체이스'가 반드시 좋은 게임으로 완성되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오랜 기간의 검증이 끝나고 나서는 게임의 라이선스 계약을 진행했고, 본격적인 제품 개발이 곧 시작되었다.
규칙을 정비하고,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
본격적인 개발 돌입, 규칙 조정과 테마 설정
제품 자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시작된 것은 2020년 1월 말이었다. 가장 먼저 진행한 개발 작업은 여러 가지 규칙들을 수정하거나 새로 만드는 것이었으며, 규칙 조정에서 가장 큰 부분은 전체 게임 라운드 조정이었다. 원래 초안에서는 15라운드에 걸쳐 게임이 진행됐지만, 테스트를 거치며 11라운드로 변경했다. 15라운드를 진행하니 점점 차단되는 경로들 사이로 도망쳐야 하는 도둑에 비해 경찰의 수색 기회는 늘어나서 승률의 균형이 무너졌고, 후반부에는 플레이어들의 집중력이 매우 떨어지는 모습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매 판의 세부 사항을 기록한 데이터를 확인하고 많은 테스트를 거쳐 최적의 라운드 수를 설정했다. 여기에는 평균적인 게임 시간, 게임 라운드 수에 따른 평균 승률, 그리고 실제 플레이어들의 분위기 변화 등의 테스트 정보가 주로 반영되었다. 게임의 전체 흐름을 조절한다는 점에서 매우 크고 오랜 시간이 소요된 변화이지만, 적당한 게임 시간과 플레이어 사이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의 가치가 있었다.
이 외에도 기획 초기에는 특수 이동 카드 등 부수적인 규칙이 있었다. 특수 이동 카드를 사용하면 원래 전후좌우로만 움직일 수 있는 경찰이 대각선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었고, 도둑은 한 차례에 두 번 이동할 수 있었다. 게임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당 기회는 플레이어마다 게임 중에 딱 한 번만 사용할 수 있게 설정한 뒤에 테스트를 진행했지만, 어느 한쪽이 심하게 유리해지는 경우가 잦은 빈도로 발생했기 때문에 실제 제품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처럼 게임을 재미있고 합리적으로 만들기 위한 규칙 조정과 기획 단계를 거치게 되며, 보드게임의 즐거움 자체를 결정하는 큰 부분이기에 개발에서 가장 핵심적인 과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규칙을 정비하기 위해 테스트를 진행하다 보니 테마를 조금 더 강하게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프로토타입의 '도심 추격전' 소재는 마음에 들어서 유지하기로 결정했지만, 편이 나뉘는 게임이기 때문에 규칙을 설명할 때 역할에 따른 이름을 붙여 설명하는 편이 훨씬 편리했다. 또한, 플레이어의 역할에 명확하게 테마를 부여하면 더 재미있는 게임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자동차를 도둑으로, 헬리콥터는 경찰 역할로 설정하게 되면서 추격전에 어울리는 대립 구도가 세워졌다.
테마나 규칙을 묘사하는 게임 제목도 제품의 아주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원안인 '콥터 체이스'라는 이름을 생각해보면, 헬리콥터를 의미하는 '콥터'라는 단어가 그리 친숙하지 않다는 의견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는 거의 대부분의 부서를 돌아다니면서 팀에서 기획한 안들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새로운 제안들을 들어보았다. '추격 대작전', '시티 러너', '한밤의 추격' 등 정말 여러 가지 후보들이 경쟁을 벌였지만, 배경인 도시와 추격전 상황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최종 의견이 모여서 <시티 체이스>라는 제목으로 결정되었다.
도심 추격전이란 느낌의 컨셉 이미지
더 멋지고, 더 편하게! 게임을 위한 입체 구성물 설계
게임의 테마와 제목이 정해진 뒤에는 구성물 설계를 진행하였다. 게임이 멋지고 재미있게 보일 수 있도록 입체 기물을 잘 표현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는데, 시각적으로 풍성하고 기능적으로 편리한 구성물이 플레이어의 만족과 몰입을 극대화하는 중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프로토타입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프로토타입은 게임판과 토큰까지도 전부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황량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디자인이 밋밋했다. 생산 비용과 시각적인 만족감을 고려했을 때, 조금이라도 원형을 유지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특히 모두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 있는 구성물의 생산 비용은 매우 값비쌀 것이 분명했다. 생산 비용은 제품의 판매 가격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높은 가격 때문에 소비자들이 제품 구매를 망설이고 큰 재미를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품질과 기능을 살리면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를 시작했다.
3D 프린팅으로 구현한 기물 샘플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건물을 다시 만들었다. 건물은 게임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구성물이기 때문에 제작에 만전을 기했다. 먼저 팀 내에서 3D 제작 기술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건축물과 자동차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디자이너에게 의뢰하여 높은 품질의 건물을 완성했다. 특히, 두 종류의 크기로 나뉜 건물들의 면마다 다른 디자인을 적용해서 게임판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플레이어의 눈에 다른 모습의 도시가 펼쳐질 수 있도록 하였다. 게임의 배경이 밤이라는 점도 감안해서 푸른색의 반들거리는 재질을 적용했고, 샘플을 받아보고 나서 게임에 잘 어울리게 완성된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프로토타입 건물의 변화 과정
건물을 꽂을 게임판 기획의 핵심은 '크기'였다. 큰 게임판을 만들어서 거대한 도시를 표현하고 게임말과 건물을 조작할 때 다른 구성물이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충분한 여유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우리는 게임판을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서 건물을 꽂을 수 있도록 구멍을 뚫기로 했다. 게임판의 표면에는 멋진 도시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제품과 같은 사양의 게임판 샘플을 제작하고 처음으로 모든 건물을 꽂아 만든 거대한 도시 게임판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프로토타입 헬리콥터의 변화 과정
헬리콥터의 경우 플레이어가 주변 건물에 방해받지 않고 조작할 수 있도록 높은 모양으로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높이가 있는 구성물인 만큼 조작 중에 잘 쓰러지지 않아야 했다. 프로토타입의 헬리콥터는 얇고 좁은 기둥 모양 받침대를 사용해서 매우 불안정했고, 심지어는 쓰러질 때의 충격으로 부서지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참고가 어려웠다. 우리는 더 넓고 굵은 기둥을 구상했지만 외형이 괴상했다. 그래서 게임의 배경을 밤으로 설정하고 헬리콥터가 탐조등을 켠 채로 추격전을 벌인다는 설정을 추가하였다. 이에 따라 기둥 부분이 탐조등처럼 보일 수 있도록 투명한 색의 원뿔 형상으로 디자인을 하였고, 잘 쓰러지지 않으면서도 멋진 게임말이 완성되어 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었다.
프로토타입 자동차의 변화 과정
도둑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자동차는 편의성에 집중하여 만들어졌다. 다른 보드게임들을 하나씩 열어보며 집기 편한 토큰이나 미니어처들을 형상을 많이 참고했으며, 토큰을 층층이 쌓아 올리기를 반복하면서 다양한 높이와 지름으로 게임을 해보았다. 형태가 결정된 뒤에는 많은 플레이어의 선호도를 조사하여 최종 형상을 완성할 수 있었고, 도둑이 몰래 조작하고 있을 때, 다른 구성물에 부딪혀서 발생하는 소음을 경감시키기 위해 자동차의 받침대에만 연질 플라스틱을 사용하여 기획 의도와 부합하는 구성물로 완성하였다. 헬리콥터와 자동차, 그리고 건물은 플레이어들이 가장 많이 조작하게 되는 구성물이다. 그렇기에 모든 구성물은 최종 완성 단계에 이르기까지 3D 프린팅 기술을 사용하여 조형한 데이터를 사출해보고 실제로 집어서 테스트해보는 등 외형과 편의에 대해서는 철저히 검증을 거쳤다. 열심히 제작한 구성물을 잘 수납할 수 있도록 트레이 설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소비자가 제품을 열었을 때, 아주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으로 인사하며 좋은 첫인상을 선사하고 싶었고, 상자를 세워도 쏟아지지 않도록 만들고자 함이었다. 이를 위해 건물을 꽂는 형태의 트레이를 설계했고 헬리콥터와 자동차, 토큰은 전용 수납공간을 마련하여 딱 맞게 위치를 고정하였다. 그리고 투명한 뚜껑으로 트레이를 덮어 접은 게임판과 규칙서를 함께 올려놓을 수 있는 구조로 마무리하였다. 이후 진행한 트레이 샘플의 수납과 충돌 테스트에서는 기대 이상으로 안정적인 결과를 확인했고, 출시 후에는 인터넷 후기들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으며 제품의 큰 부분을 담당하는 요소로 녹아들 수 있었다.
게임에 생명을 불어넣는 아트워크
2020년의 가을이 끝나갈 때쯤 테마와 규칙, 그리고 모든 구성물의 설계가 마무리되어갔다. 모든 사양이 정해졌고 어느 부분에 어떤 그림을 적용할지 대략적인 구상은 완료된 상태였기에, 본격적으로 아트워크 작업에 착수했다. 높은 품질의 아트워크를 위해서 여러 작화가의 다양한 포트폴리오들을 검토했고, 유명 온라인 게임들의 원화 작업에 다수 참여했던 작화가와 만나 협업할 수 있었다. 첫 미팅에서 함께 게임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개발한 우리는 물론 처음 보는 작화가조차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추격전에 몰입했던 즐거운 추억이 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연락과 만남을 가지며 방향에 대해 논의했고, 계획이 정리된 뒤 즉시 시안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게임에 적용되는 모든 아트워크가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패키지 아트워크는 마트나 온라인에서 소비자가 가장 처음 마주하게 되는 제품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시티 체이스>의 패키지는 이미 기획 초기 단계부터 박진감이 넘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도시와 자동차의 선명한 색 대비를 주었고 헬리콥터의 탐조등을 밝게 배치하여 소비자의 시선이 헬리콥터까지도 미칠 수 있게 꾸몄다. 여기에 역동적이면서도 눈에 띄는 타이틀 디자인과 박스를 뚫고 나올듯한 극적인 구도의 장면이 더해짐으로써 화려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된 패키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게임판의 아트워크에도 힘을 쏟았다. 평면인 게임판보다 항상 내려다보게 되는 플레이어의 시선을 고려하여 상공에서 바라본 도시의 모습을 표현하였는데, 밤의 도시가 배경이므로 푸른 색감을 주고 자동차 조명 등을 표현했다. 격자 형태로 된 게임판이기 때문에 단순히 도시만 표현해서 제작했던 초기 샘플의 형태는 매우 반복적이고 재미가 없어 보였다. 작화가와 논의한 끝에 길거리의 공사장이나 도둑을 찾고 있는 수사 현장 등의 상황과 녹지를 다양하게 묘사하여 게임판이 더욱 실감 나게 보이도록 꾸몄다. 또한, 교차로로 이동하는 헬리콥터의 행동 규칙을 위해 모든 교차로에 횡단보도와 차선 등을 그려서 확실히 인식되면서도 자연스럽게 배경에 녹아들 수 있도록 작업했다.
패키지 아트워크 작업 과정
이후 테스트에서 얻었던 플레이어들의 행동 양식과 편의성을 고려해서 라운드판과 흔적 토큰의 디자인을 진행했고, 작업한 아트워크 자료들을 활용해서 규칙서를 꾸몄다. 디자인까지 적용된 규칙서를 수십 차례 검수하고 교정하고 나니 제품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완성되었다. 이제 완성까지 남은 과정은 단 하나, 바로 생산이다.
제품을 만나기 위한 마지막 과정, 생산
개발은 앞서 이야기한 모든 것들을 점점 정제하면서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게임의 개발 담당자인 프로젝트 매니저들은 완성된 게임 기획들을 생산 공장들과 매우 긴밀하게 공유하며 제작 방법에 대해 미리 논의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기에 생산은 이미 기획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진행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설계한 모든 구성물의 상세한 정보를 공장에 보내고 견적을 받은 뒤부터 본격적으로 생산 계획을 조정하게 된다. 견적서를 검토하면 현재 상태의 게임이 비싼 제품일지 저렴한 제품일지 확실히 파악할 수 있게 되며, 생산 견적을 바탕으로 예상 판매액과 매출 원가 등을 계산하여 구성물과 비용을 조정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나치게 비싼 제품은 소비자들에게서 멀어질 수 있으므로 게임의 규칙과 성격, 그리고 구성물을 면밀히 분석하여 품질이 저하되지 않는 수준에서의 적정 원가를 찾아내는 것도 기획 조정과 생산 계획에 있어서 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장과 계속 소통하며 구성물의 제작 사양과 비용을 목표에 맞췄고, 해당 사양에 적용할 그래픽 파일들까지 교정과 검수를 거쳐 최종 완성되면 모든 자료들을 공장에 전달하여 실제 제품 품질로 인쇄를 진행하게 된다. 이를 교정쇄라고 부르는데, 생산을 진행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므로 틀리거나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매우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생산에 돌입하면 잘못된 부분을 고치기 위해서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개발 중에는 수도 없이 중간 형태의 샘플들을 제작하여 확인하게 되고, 교정쇄를 검수할 때는 특수한 확대경을 사용해서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인쇄물의 망점까지 살펴보게 된다. 모든 결과에 이상이 없다면 진행해도 좋다는 최종 승인을 공장에 전달하게 되고, 공장과 협의한 일정에 따라 생산과 조립을 완료하고 나면 제품이 완성된다. 만들어진 제품이 운송되어 통관을 거치고, 우리의 창고에 잘 입고되고 나서야 비로소 개발이 완료된다. <시티 체이스> 역시 이러한 생산 과정을 지나왔고, 2021년 12월에 개발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마치며
<시티 체이스>의 개발 과정을 통해 보드게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야기했는데, 실제로는 설명되지 않은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들이 많다. 게임의 개발을 맡는 프로젝트 매니저들은 항상 보드게임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재미있는 게임을 구상하고 더 좋은 제품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이런 면에서 <시티 체이스>는 아주 멋지게 완성된 게임이다. 게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험난하면서도 흥미진진했던 만큼,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만큼의 값진 재미를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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