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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빠진 동그라미에 조각을 채워 넣으려는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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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2 14: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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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Divedice
우봉고
이 빠진 동그라미에 조각을 채워 넣고 싶은 욕망
우봉고는 2003년 출시된 이래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퍼즐 형태의 보드게임입니다. 퍼즐을 푸는 경쟁을 게임화한 작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은 리코쳇 로봇과 이 작품뿐이더군요. 퍼즐 풀기 경쟁이 게임의 메인이 되는 순간 문제를 암기하는 사람이 잘 하게 되는 문제,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이 언제나 승리하는 문제, 컨닝에 대한 문제 등 모두가 즐겁게 놀기 어려운 장애 요소가 생깁니다. 때문에 이 장르는 한계가 명확하고 베스트셀러가 나오기 어렵다 할 수 있으며 리코쳇 로봇과 우봉고는 이 문제를 나름의 방법으로 극복해낸 작품들입니다. 리코쳇 로봇 역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인 만큼 조만간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오늘은 우봉고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봉고는 기본적으로 퍼즐을 빨리 푸는 경쟁을 게임으로 만든 것입니다. 3개 또는 4개의 퍼즐 조각을 퍼즐판에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채우는 것이 게임의 1차 목표입니다.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누구나 이 내용물을 보면 ‘아 이렇게 하는 거군’이라고 생각하며 이리 저리 조각을 놓아보게 됩니다. 어쩐지 익숙하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이 퍼즐은 중국에서 시작된 7조각의 퍼즐 조각으로 여러 모양을 만드는 탱그램이나 로마에서 시작된 펜토미노 같은 고대 문명의 퍼즐과 매우 흡사합니다. 이런 고대의 퍼즐들은 이 빠진 곳에 조각을 끼워 넣어 완전한 형태를 만들고 싶어하는 인류의 욕망을 더욱 자극하였고, 이런 퍼즐과 씨름하던 고대 인류의 기억이 우리의 유전자 속 한 켠에 남아 있습니다. 게다가 고대의 퍼즐이라고는 하지만 이 작품들은 높은 완성도로 인해 지금도 원형이 보존되어 세계의 어린이들이 대부분 한번씩은 해보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직접 해본 고전 퍼즐과 비슷해서이든 고대 조상들의 기억을 통해 각인이 되어서이든 어쨌든 이 퍼즐은 실제로 이와 정확히 똑 같은 다른 작품을 플레이한 경험이 없더라도 누구나 쉽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각 퍼즐판에는 12가지의 퍼즐 문제가 들어 있는데 한쪽 면은 4개의 조각을 사용하는 비교적 어려운 퍼즐이, 다른 한쪽 면에는 3개의 조각을 사용하는 훨씬 쉬운 퍼즐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초심자나 어린 아이를 배려하는 게임 진행이 가능합니다. 못하는 사람은 쉬운 면으로 하고 잘하는 사람은 어려운 면으로 하면 되는 거죠. 모두가 퍼즐판을 하나씩 받고 누군가 주사위를 굴리는 순간 게임은 시작됩니다. 주사위에는 6가지 그림이 있는데 어떤 그림이 나오느냐에 따라 이번 라운드에 어떤 조각으로 문제를 풀지가 결정됩니다. (저는 신탁이 내린다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각 퍼즐판의 난이도가 획일적으로 같다고는 보기 힘들고 주사위 결과에 따라 그 안에서도 좀 더 쉽고 좀 더 어려운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직접 문제를 풀어보기 전에는 어떤 퍼즐판의 문제가 쉬운 건지, 주사위는 어떤 그림이 나와야 쉬운 건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또 개인차나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퍼즐 자체는 매우 쉽습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무작정 조각을 대보기만 해도 우연히 풀릴 수 있는 수준이며 퍼즐을 풀기 위해 머리도 써야 하지만 풀이 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손을 빨리 움직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빨리 푸는 경쟁을 유도하기 때문에 문제 푸는 과정이 매우 긴박감이 넘치고 누구나 집중하면 빨리 풀 수 있어서 적절한 성취감을 줍니다. 경험자와 초심자의 차이는 크지 않고 조금만 집중하면 누구나 1등 한번 해볼 수 있도록 꾸며졌습니다. 물론 생각도 빠르고 손도 빠르고 눈도 빠르며 집중도 잘하는 초인이 상대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요.
문제 풀이가 끝나면 성공한 순서에 따라 보석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자기 말이 서 있는 줄에서 보석을 2개 가져갈 수 있고, 1등을 하면 보석을 가져가기 전에 말을 3칸까지 움직일 수 있습니다. 2등은 2칸, 3등은 1칸으로 점점 범위가 줄어들어 원하는 색깔을 가져가기 어려워지지만 제한 시간 동안 문제를 푸는데 성공만 한다면 1등이건 꼴등이건 가져가는 보석의 개수는 같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최종 점수는 다를지라도 전반적인 보석 개수는 다들 비슷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꼴등이라도 최선을 다하도록 유도하며 실력차로 인해 낙오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세심한 장치가 마련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9라운드를 진행하며 모은 보석의 수로 점수를 계산합니다. 여기서 모은 보석의 총 개수는 중요하지 않고 가장 많이 모은 색깔 한 가지의 개수로 점수를 가리게 되는데, 기본적으로 1등을 자주 한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색을 많이 모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보석 색깔이 6가지나 되고 각 색깔 별로 보석 개수가 다른 것도 아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충분히 있으며 최종 결과 점수차도 상대적으로 줄어듭니다. 그 결과 늘 1등을 독식하던 사람이 최종 결과에서 지는 상황도 있을 수 있고 늘 꼴찌였지만 꾸준히 문제를 풀었던 사람이 1등에 거의 근접하기도 하는 다양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여러 모로 초보를 배려하고 실력으로 지더라도 그 차이가 적게 보이게 하는 장치를 마련하여 ‘아깝게 졌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누구나 실망하지 않고 즐길 수 있습니다.
퍼즐 장르의 보드게임이 보통 퍼즐에 숙달된 숙련자들의 대결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봉고는 퍼즐 자체의 난이도를 초심자도 쉽게 풀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고 점수 계산을 비롯한 여러 장치를 넣어 초심자와 경험자의 격차를 줄이고 있습니다. 9라운드로 정해진 게임 길이도 딱 적당하여 아쉬울 때 끝나는 느낌이고, 퍼즐판 하나에 많은 문제를 넣고 주사위 결과에 따라 다른 문제를 풀게 하여 경험자가 퍼즐을 외우는 문제도 줄였습니다. 가족지향의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익숙해지고 재미있으면서 초심자와 숙련자의 격차가 작은 게임”을 목표로 작업을 합니다. 하지만 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게임은 많지 않죠. 우봉고는 이런 장르의 게임으로는 흔치 않은 완벽한 가족 지향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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