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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빅스 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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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5 09: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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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GM]언테임드
루빅스 큐브
정확한 이름을 모를 수는 있어도, 이 퍼즐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름까지는 모르더라도, 누구나 각각의 면이 가로•세로 3칸씩 총 9칸으로 나뉘어 있는 정육면체를 살면서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직접 해본 적이 없을지라도 이 물건을 가지고 노는 법도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각각의 면을 이리저리 돌려서 각각의 면마다 여러 색깔의 칸이 위치하게 만든 다음 다시 각각의 면을 돌려서 하나의 면마다 한가지 색깔만 위치하도록 만드는 퍼즐 게임이 이 도구의 용도다. 도형을 뒤섞어 4325경 개의 각기 다른 조합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이 도형 퍼즐 도구의 이름은 <루빅스 큐브>다. 국내에서는 단순히 정육면체를 뜻하는 '큐브'라고 불리는 경우도 많은데, '루빅스(Rubik's)'라는 것이 특정한 의미를 지닌 단어가 아니며, 일반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외국계 이름이기에 쉽게 인식되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사실 이 퍼즐의 이름이 처음부터 <루빅스 큐브>였던 것은 아니다. <루빅스 큐브>를 처음 개발한 루비크 에르뇌 작가가 처음 붙인 이름은 <뷔베스 코카(Büvös Kocka)>였다. 이 이름은 ‘마법의 정육면체’라는 뜻으로, '마방진(魔方陣, magic square; 자연수를 정사각형 모양으로 나열하여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배열된 각각의 수의 합이 전부 같아지게 만든 것.)'에서 따온 말이다. 1979년에 독일에 배급되었을 때도 이 이름을 그대로 번역한 <자우버뷔르펠(Zauberwürfel)>을 사용했으며, 영국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매직 큐브(Magic Cube)>란 이름을 사용했다.
루비크 에르뇌
루비크 에르뇌 작가는 194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아버지 역시 루비크 에르뇌라는 이름이며, 이 이름은 작가의 아들에게도 대물림되어 삼대가 루비크 에르뇌라는 이름을 공유하고 있다(편집자 주: 헝가리 사람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을 앞에 쓰고 이름을 뒤에 쓴다. 루비크가 성이고 에르뇌가 이름). 작가의 아버지는 글라이더를 비롯한 항공기의 엔지니어였고, 특히 글라이더와 관련하여 많은 업적이 있어 그의 이름을 딴 공항이 존재할 정도로 항공업계 유명 인사다.
루비크 에르뇌 작가는 어릴 때부터 '탱그램', '15 퍼즐', '펜토미노', '소마큐브', '맥마흔 입방체' 등의 퍼즐을 즐겼으며, 중학생 때에는 '체스'를 즐겼지만, 승부를 가르는 게임보다는 퍼즐처럼 체스와 관련된 문제를 푸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미술학교에 진학하여 조각에도 심취한 바 있지만, 4년간 미술학교를 다닌 끝에 화가가 될 자질은 없다고 깨닫고,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부다페스트 공과대학에 진학해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에는 아직 건축가로 일할 준비가 안 되었다고 느껴, 응용미술대학에 다시 진학했다. 강의실보다는 스튜디오에서 각종 재료를 이용해 공동 작업을 하던 이곳에서 천직을 찾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학위를 받기도 전에 조교수 자리를 제안받아, 학생들에게 건축과 설계를 가르쳤다. 계속 학교에 있는 중에 기하학적 도형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패턴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프로토타입의 탄생
루비크 에르뇌 작가가 미술대학에서 맡은 수업 중 하나인 '도형기하학'에서 학생들에게 3차원 공간 관계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서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가로세로 회전축에 따라 각각의 면이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정육면체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하였던 것이다. 머릿속의 구상을 넘어 실제 물체로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은 1973년 즈음이었다. 처음 만들어 본 것은 정육면체 8개로 이뤄진 2×2×2짜리, 즉 현재의 <루빅스 큐브 미니>에 해당하는 물건였다. 최초의 프로토타입은 작은 정육면체 여러 개의 한쪽 구석을 고무줄의 장력으로 고정해서 만들었는데, 불과 몇 분 만에 실패작으로 드러났다. 회전이 누적되면서 고무줄이 버티지 못하고 끊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고무줄 대신 좀 더 튼튼한 낚싯줄로 바꿔보기도 했지만, 큰 차이가 없었다.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가운데에 고정된 회전축을 둘 수 있는 3×3×3의 구조가 낫겠다는 발상을 떠올렸다. 회전축이 교차하는 중심을 하나의 칸으로 만들어 각 칸이 독립적으로 개별적으로 움직이면서도 공통의 회전축에 결속될 수 있게 한 것이다.
처음 완성된 3×3×3짜리 큐브의 모습. 모서리 부분을 깎아낸 단색 나무 큐브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처음 완성된 이 프로토타입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각각의 면에 특별히 색을 칠하지 않은 단색의 물건이었다. 물론 회전축에 따라 각 칸들이 회전하는 역할은 멀쩡히 수행했지만, 단색인 이상 어떻게 돌리건 겉보기에 변화가 없어 보였다. 칸들을 돌린 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처음에는 각 칸에 표시를 했다가, 이후 면마다 다른 색으로 칠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루빅스 큐브>의 모습이 만들어진다. 물감의 삼원색인 노랑, 파랑, 빨강이 우선 선택되었고, 그다음엔 녹색과 주황색, 하얀색이 선택되었다. 이렇게 색깔을 정한 이유는 전체적으로 밝은 이미지이면서 강한 대비 효과를 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이렇게 만들어진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각각의 회전축을 따라 각 칸들을 여러 차례 돌려 본 루비크 에르뇌 작가는 모든 칸을 다시 원위치로 되돌리기 위한 첫 번째 퍼즐 풀이를 시작했다. 이론상 모든 것이 다시 원래 위치로 되돌아가는 것이 가능했지만, 최초로 이 퍼즐을 풀기 시작한 그는 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 <루빅스 큐브>를 접한 모두가 느꼈을 그런 감정을 그 퍼즐을 만든 사람 역시 똑같이 느낀 것이다. 최초의 <루빅스 큐브> 퍼즐을 풀어 처음 시작 지점으로 되돌아오는 데까지는 약 한 달가량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즉, 처음 <루빅스 큐브>를 도전해서 한 달 내에 퍼즐을 푸는 것에 성공했다면, <루빅스 큐브>의 창조자보다 퍼즐 풀이에 좀 더 소질이 있다고볼 수 있을 것이다.
상품화
몇 달간 프로토타입에 매달린 끝에 실력이 나아진 다음에는 주변 친구들에게 퍼즐을 소개해주고, 그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친구들이 퍼즐을 푸느라 골몰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이 큐브가 이론적 공간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를 넘어서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고, 곧 퍼즐을 상품화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가장 먼저 한 것은 특허 등록이었다. 1974년 봄에 시작한 특허 서류 작성은 1975년에야 완성되어 헝가리 특허청에 접수할 수 있었고, 1976년 10월에 특허 승인이 이뤄졌다.
특허 승인이 이뤄지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루비크 에르뇌 작가는 이 새로운 퍼즐을 어떻게 하면 대량 생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미술대학 스튜디오에서 친구들과 함께 고무와 플라스틱 등 다양한 재료로 실험을 진행했다. 플라스틱을 이용한 사출 성형이 가장 적합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 다음에는, 헝가리에서 내수용 체스 세트와 플라스틱 완구를 만드는 공장을 수소문하여 찾아갔다. 꼼꼼하게 요구사항을 정리하여 전달한 것은 물론이고, 최대한 정밀하고 완벽하게 작동하는 물건으로 만들기 위해 직접 생산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헝가리에서 가장 큰 완구 도매상을 찾아가, 이런 종류의 제품이 얼마만큼 팔리는지에 대한 조사도 잊지 않았다. 인구 1천만 명가량인 헝가리에서 판매 수량이 1만에서 5만 개 정도면 큰 성공을 거둔 제품이란 말을 들은 그는 초도 생산 수량을 5천 개로 정하고 공장에 주문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77년, 마법의 정육면체란 의미를 지닌 <뷔뵈스 코카>란 이름을 단 파란색 상자에 담긴 제품이 헝가리의 완구점에 선을 보이게 된다. 이 상자에는 루비크 에르뇌 작가가 직접 쓴 홍보 문장이 적혀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성인과 어린이 모두의 논리적 사고와 공간 감각을 향상시키는 완구입니다. 채색된 작은 정육면체 조각 26개를 해체하지 않고 마음껏 돌려서 위치를 바꾸는 식으로 면을 재배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6개의 색깔이 각 면에서 다양하게 섞입니다. 이 퍼즐의 목표는 각 면을 하나의 색이 되게끔 다시 맞춰서 결국 6개의 면 전부를 각각 같은 색이 되게 하는것입니다. 규칙에 맞게 여러 면을 동시에 맞추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며 회전에 관한 규칙을 알아야 풀 수 있습니다. 15분에서 20분 이내에 한 면을 다 맞추는 것도 매우 좋은 기록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정도 기록이면 논리적 사고력이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 방향으로 돌려보며 각 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방식으로 위치를 바꾸는지 지켜보세요. 그렇게 해서 회전에 관한 규칙을 찾아낸다면 이것이 퍼즐을 푸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헝가리에서 <뷔뵈스 코카>는 별다른 광고나 홍보 활동 없이도 꾸준히 판매가 이뤄졌으며, 헝가리 내에서 하나의 유행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1978년에는 <부다페스트 국제박람회>에서 상을 받았으며 헝가리 문화부로부터도 '올해의 상'을 받았을 정도로 헝가리의 문화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1979년 말에는 헝가리에서만 누적 판매 수량 30만 개를 기록하기에 이른다.
<뷔베스 코카>의 해외 진출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주요한 전통적인 완구 회사에서는 지나치게 어렵다는 이유로 취급을 거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통적인 완구 시장에서 퍼즐류의 판매 비중이란 아주 작은 비중에 불과했기에 완구 회사에서 크게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다.헝가리 밖으로
그러던 와중에 루비크 에르뇌 작가는 헝가리 출신의 영국 사업가 톰 크레머를 만나게 된다. 톰 크레머는 런던에서 새로운 완구에 투자하고 개발하는 세븐 타운스라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1979년 뉘른베르크 완구 박람회에서 <뷔베스 코카>를 시연하는 것을 보고는 잠재력이 있는 상품이라는 느낌을 가진 것이다. 톰 크레머는 당시 파산 직전이던 미국의 아이디얼 토이 컴퍼니에 이 제품에 투자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으며, 아이디얼 토이 컴퍼니에서도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여 100만 개의 판매를 보장하며 해외 판권을 취득하기에 이른다.
아이디얼 토이 컴퍼니가 이 상품을 미국에 배급하면서, 앞서 언급했듯이 <뷔베스 코카>는 <루빅스 큐브>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리고 루비크 에르뇌 작가는 여러 국가에서 <루빅스 큐브>를 설명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헝가리는 공산권 국가였기에 서방권 국가를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없었지만, <루빅스 큐브>를 시연하고 설명해야 한다는 이유로 서방권 국가로 여행할 수 있는 여권을 발급받게 된 것이다(편집자 주: 당시만 하더라도 헝가리에서는 동구권 국가만 다닐 수 있는 여권과 서방권 국가로도 여행할 수 있는 여권이 달랐다).
각종 완구 박람회에서 헝가리어 억양이 섞인 영어로 <루빅스 큐브>의 작가가 해당 퍼즐에 대해 설명하고 시연하는 것은 매우 효과가 좋은 시연 방법이었다. 특히 뉴욕 완구 박람회 이후 미국의 많은 완구 소매점에서 <루빅스 큐브>를 주문했으며, <루빅스 큐브>는 순식간에 미국을 사로잡았다. 1981년 6월까지 미국에서만 1억 개의 <루빅스 큐브>가 판매되었고, <뉴욕 타임즈>에서 집계하는 베스트셀러 서적 순위에서 <루빅스 큐브> 관련 서적이 40주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루빅스 큐브>는 TV와 잡지를 비롯한 각종 매체를 점령해갔다.
<루빅스 큐브>의 열풍은 전 세계의 완구 업계에 엉뚱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루빅스 큐브>와 <루미큐브>를 혼동한 소매점 덕분에 네덜란드에서 <루미큐브>를 취급하고 있던 골리아스가 자신의 게임을 유통할 소매점을 만날 수 있었고, 이는 훗날 세계적인 완구 회사로 성장할 골리아스의 시발점이 되었다.
광기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의 유행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가, 또 갑작스럽게 사그라들었다. 1982년 10월, <뉴욕 타임즈>는 '루빅스 큐브: 열풍이 끝나다'라는 기사로 <루빅스 큐브>의 유행이 한풀 꺾였음을 알렸다. 씽크펀의 창업자 빌 리치의 증언에 의하면 1985년이 될 때까지도 공급 과잉 상태로 소매점이 가지고 있는 <루빅스 큐브>의 재고가 해소되지 못했기에, 초창기에 새로운 퍼즐을 소매점에 공급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유행의 여파로 모조품이 범람하면서 수요는 줄고 공급은 늘어난 상황에서, 1980년대의 <루빅스 큐브> 1차 유행은 사그라들었다.유행이 끝나다
1차 루빅스 큐브의 유행이 끝난 것이다.
갑작스럽게 사그라든 유행 때문에 루비크 에르뇌 작가도 많은 혼란을 겪기는 했지만, 이 시기쯤에는 이미 제법 돈을 모았기에 개인적으로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금을 투자하여 기술 개발과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루비크 스튜디오'를 협동조합 형태로 만들었으며, 발명가와 디자이너를 위한 자선단체인 국제 루비크 장학재단도 설립하였다. 그리고, 한동안 쉬고 있던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 강의를 재개하며 일상으로 복귀하였다.
그 후에도 그는 간간이 <루빅스 스네이크>와 <루빅스 탱글>과 같은 새로운 퍼즐을 만들었다. <루빅스 스네이크>는 90도 단위로 회전하는 이등변 직각삼각기둥 여러 개로 이뤄져 있는 입체 도형 퍼즐로, 매우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어 1980년대 중반에 유행한 바 있다. <루빅스 스네이크>는 독일에서도 성공을 거둬, 독일의 신생 보드게임 퍼블리셔이던 아미고에 큰 힘을 실어줬다.
유행이 사그라든 후 <루빅스 큐브>는 제법 오랜 기간 동안 동면을 취했다. 그 기간 동안 톰 크레머와 세븐 타운스는 아이디얼 토이 컴퍼니를 비롯한 기존 배급사들로부터 <루빅스 큐브>의 권리를 다시 사들이며, 재도약의 기회를 기다렸다. 이후, 세븐타운스는 <루빅스 큐브> 사업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되었다.그리고 다시 살아나다
그리고 1986년, 소매점이 보유하고 있던 <루빅스 큐브>가 다시 판매되고 있다는 신호가 감지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가 되면서 1980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새로운 소비자들이 다시금 <루빅스 큐브>를 적극적으로 구매하기 시작했고, <루빅스 큐브>의 판매가 회복되기 시작했고, 세븐 타운스에서는 세심하게 목표 시장을 선택하여 <루빅스 큐브>를 재출시하기에 이른다. <루빅스 큐브>의 판매가 완전히 회복된 2013년에 세븐 타운스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루빅스 큐브>의 저작권과 상표권 등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맡는 루빅스 브랜드 유한회사를 설립하였다. 90년대에 되살아난 이후 <루빅스 큐브>는 오늘날까지 긴 시간 꾸준히 판매되는 스테디셀러로 남아있다.
<루빅스 큐브>가 여러 시기를 거치는 동안 루비크 에르뇌 작가는 본업이라 할 수 있는 교육자로서의 활동에 매진했다. 2009년에는 계명대에 특임 교수로 임용되어, 계명대 건축학과에서 10년 간 특강과 프로그램 교류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40여 년 동안 문화 속에 녹아나다
<루빅스 큐브>가 처음 대량 생산되어 헝가리의 완구 소매점에 진열된 지 40여 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루빅스 큐브>는 전 세계에 약 4.5억 개가량이 판매되는 어마어마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더군다나 설문조사 결과 98%의 사람들이 정확한 이름을 모르더라도, 어떤 제품인지는 아는 어마어마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1980년대의 폭발적인 1차 유행이 남긴 강렬한 인상에 더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면서 <루빅스 큐브>는 책, 영화,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녹아들었다.
1981년에 발표된 배런 나이츠의 트위스팅 더 나이츠 어웨이 앨범 커버
<루빅스 큐브>의 열풍이 한창일 때 발표된 배런 나이츠의 1981년 앨범 <트위스팅 더 나이츠 어웨이>는 <루빅스 큐브>를 앨범 커버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소재로 한 <미스터 루빅>이란 곡도 앨범에 수록하였다. 더군다나, 스파이스 걸스의 <비바 포레버>나 마룬 파이브의 <페이폰>의 뮤직비디오 등 <루빅스 큐브>가 소품으로 등장하는 곡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여러 개의 <루빅스 큐브>를 이용해 고전 명화나 사진을 모자이크화 하여 재현하는 '큐브 아트'라는 장르도 있다. 큐브 아트라는 장르를 만들었으며, 수천 점의 큐브 아트를 남긴 '인베이더'는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존재다.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큐브 웍스 스튜디오에서는 4천 개의 <루빅스 큐브>를 이용해 <최후의 만찬>을 재현하기도 했다.
<루빅스 큐브>는 영화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는데, <렛미인>, <행복을 찾아서>에서는 <루빅스 큐브>가 매우 중요한 장치로 활용되었고, <스노든>에서는 에드워드 스노든이 기밀 정보가 담긴 마이크로 sd 카드를 <루빅스 큐브> 안에 숨겨 기밀 정보를 빼돌리는 일화를 재현하기도 했다.
루빅스 큐브를 경쟁적으로 즐기는 두 가지 방법
<루빅스 큐브>는 혼자 문제를 내고 혼자 문제를 푸는 퍼즐이지만, 이미 세계에는 누가 더 먼저 퍼즐을 풀 수 있는가를 두고 겨루는 '스피드 큐빙'이란 형식의 대회가 존재한다. 이 대회는 1980년대 초반 아이디얼 토이 컴퍼니가 주최한 미국 전국 대회에서 시작되었으며, 1982년에 부다페스트에서 최초의 세계 대회가 열리며 그 열기는 절정을 맞이했다. 갑작스러운 유행의 퇴조로 인해 세계 대회는 그 후 20여 년간 다시 열리지 못했지만 말이다.
미국의 민 타이 선수와 함께 한 루비크 에르뇌 작가
지난 수년간에 걸쳐 토너먼트 방식이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3라운드에 걸쳐 세 가지 형태로 뒤섞인 초기 상태의 <루빅스 큐브>가 주어지고, 모든 플레이어의 최고 기록을 측정한다. 플레이어는 본격적으로 퍼즐을 풀기 전에 15초 동안 뒤섞인 상태를 확인할 수 있으며, 상태를 확인한 다음 원래 위치에 되돌려 놓는다. 시작 신호와 함께 다시 <루빅스 큐브>를 들고 퍼즐을 푼다. 퍼즐을 다 풀고 다시 양손을 감지판 위에 되돌려 놓으면, 타이머가 멈추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는지 기록된다. 물론, 가장 적은 시간이 걸린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1982년 첫 대회 우승자인 민 타이 선수의 기록은 22.95초였으나, 세계 대회가 재개된 이래 이 기록은 계속해서 단축되었다. 2003년에 16초 대로 단축되었고, 2007년에는 10초의 벽이 깨졌으며, 2010년에는 7초, 2015년에는 5초의 벽이 깨졌다. 현재 세계 기록은 중국의 두위성 선수가 기록한 3.47초이며, 현재까지의 한국 기록은 2017년 조승범 선수가 세운 4.59초이다.
대회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스피드 큐빙'이지만 시간과 관계없이 '최적의 수'를 가리는 종목도 존재한다. 누가 가장 적게 <루빅스 큐브>를 회전시켜서 퍼즐을 푸는가를 겨루는 것이다. 컴퓨터의 연산 능력과 수학자들이 힘을 합쳐 밝힌 바로는 20번만 돌리면 어떤 상태의 <루빅스 큐브>건 풀 수 있다고 한다. '최적의 수'를 겨루는 종목에서는 시간을 얼마나 쓰건 상관하지 않고, <루빅스 큐브>의 뒤섞인 초기 상태를 보기만 한 상태로 종이에 어떻게 움직여서 퍼즐을 풀 수 있는지를 적는 형태로 대회가 진행된다. 그렇게 하여, 가장 적은 회전수로 퍼즐을 풀어낸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이 대회의 승자는 대체로 20번에 가까운 회전수를 기록한다. 참고로, '스피드 큐빙'에서의 챔피언은 평균적으로 50번가량의 회전을 한다. 최적의 수를 찾기보다 물리적으로 가장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수를 찾기 때문일 것이다.
<루빅스 큐브>는 보통 3×3×3 형태를 하고 있지만, 한 면을 몇 개의 정사각형으로 나눴냐에 따라 난이도가 다른 형태의 퍼즐을 풀 수 있다. 당연하게도 면이 적을수록 회전축이 적기에 한 번의 회전으로 만들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적어지며, 면이 많을수록 회전축이 많기에 한 번의 회전으로 만들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늘어난다. 3×3×3짜리인 <루빅스 큐브>에서 한 번의 회전으로 만들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8가지이지만, 2×2×2짜리인 <루빅스 큐브: 미니>에서는 6가지에 불과하며, 4×4×4짜리인 <루빅스 큐브: 마스터>에서는 27가지로 늘어난다. <루빅스 큐브>를 처음 접하거나, 간단한 문제를 먼저 풀어보고 싶다면 <루빅스 큐브: 미니>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다양한 종류의 루빅스 큐브
<루빅스 큐브>의 기본 원리를 응용해 만든 <루빅스 레이스> 보드게임도 존재한다. 여러 가지 색깔로 이뤄진 색깔 주사위 9개가 들어 있는 문제 생성기를 통해 무작위적인 패턴을 만들면, 두 플레이어가 각자 자기 앞에 놓인 퍼즐판에서 퍼즐 조각을 슬라이딩 퍼즐 형식으로 움직이며 누가 먼저 주어진 패턴을 완성하는가를 겨룬다. 이는 3차원에서 진행되는 <루빅스 큐브>를 2차원 평면으로 옮긴 듯한 인상을 주며, 15퍼즐과 같은 슬라이딩 퍼즐이 <루빅스 큐브>의 개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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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기록 3초대요...? 정말 어마어마한 세계가 있군요 ㅋㅋㅋ 큐브는 큐브였지만 루빅스 스네이크를 루빅스라고 불렀던 기억은 나네요! 같은 작가인줄은 처음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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