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이미지 출처: 보드게임긱

한때 <좀비사이드>를 사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머리 많이 안 쓰고 대학살하는 맛의 시원시원한 보드게임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아마도 그때 제가 '레프트 포 데드'를 신나게 즐기던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만……

아무튼 그러다가, 아컴호러 애호가로서 <크툴루: 죽음마저 죽으리니>를 사고 나서는 그런 게임을 더 찾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게임이 바로 그런 게임이거든요. 원했던 스타일에 비해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꽤 재미있게 즐긴 씨몬 게임입니다. 씨몬의 피규어 게임들에는 나름의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좀비사이드>는 아직 못 해봤고 다른 게임들을 조금 즐겨봤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크툴루: 죽음마저 죽으리니>가 제일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규칙을 익히는 것이 어렵지 않고, 공포를 받을까 말까 재는 묘미도 있고, 주사위를 우르르르 굴려대는 짜릿함도 괜찮고, 말도 안 되게 센 거 같은 적을 말도 안 되게 센 능력으로 상대하는 강력한 능력자물스러운 느낌도 납니다.
 

가장 재미있는 요소는 단연코,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강해지는 캐릭터에 있죠. 이 게임에서 캐릭터 능력을 사기급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이 공포가 일정치만큼 누적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캐릭터를 성장시키기 위해 비교적 적극적으로 공포를 받지만, 능력을 3개 정도 찍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공포를 한계치까지 받은 조사자는 즉시 사망하고 게임이 패배로 끝나는데요, 능력이 강해질수록 주사위 굴림도 많아지고, 공포를 받을 가능성도 더 늘어나거든요. 그렇기에 이러한 주사위 굴림 관리도 중요합니다. 공포 받기와, 주사위 재굴림과, 체력의 관리 부분 조율이 생각보다 괜찮게 되어 있는 게임이죠.

각 캐릭터에게는 총 3개의 능력이 있는데, 맨 위 능력 1개는 해당 캐릭터만의 고유한 능력이고 나머지 2개는 여러 캐릭터들에게 주어지는 능력입니다. 이런 3가지 능력의 조합을 캐릭터를 바꿔가며 즐기는 맛도 괜찮습니다. 그런 능력을 지닌 캐릭터를 30명도 넘게 만들어내는 것도 신기한 수준이죠. 물론 고유한 능력을 키우지 않는다면 거기서 거기인 캐릭터가 되겠지만요.
 

이 게임에서는 위대한 고대의 존재를 반드시 불러내어 그 고대의 존재를 때려잡아야(!)만 승리합니다. 철저하게 액션 게임인 거죠. 저마다의 기믹을 지닌 고대의 존재를 하나 고르고, 고유한 기믹의 시나리오를 골라 둘을 섞은 뒤, 거기에 캐릭터를 골라 섞으므로 같은 시나리오를 다시 한다고 하더라도 나름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의 존재를 불러내어 때려잡으려면 일정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 조건을 달성해서 의식을 방해해야 하는데요. 파밍이나 캐릭터 성장에 너무 매달리다 보면 시나리오 진행 타이밍을 놓칠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팬데믹>처럼 플레이어 캐릭터가 몇 명이든 차례 개수는 똑같은 게임이라, 플레이어 수가 많을수록 한 사람에게 돌아오는 차례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캐릭터 성장에도 제약이 생기고, 초반부터 의식을 방해하기 위해 뛰어다닐 필요성도 높아집니다. 보드게임긱에서 3인과 2인에 추천수가 높은 것은 그런 까닭일 겁니다. 
 

최근 <미지에의 공포Fears of unknown>라는 부제가 붙은 새로운 스탠드얼론의 킥스가 진행되었죠. 시즌 4까지 시나리오가 10개가 넘고, 이번에도 엄청난 숫자의 조사자가 참전했습니다. 테마적으로만 생각해 본다면, <아컴 호러> 시리즈와 <크툴루: 죽음마저 죽으리니> 시리즈의 조사자들이 모두 모여 있는 아컴이야말로 지구에서 가장 안전한 땅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ㅋㅋ 아무튼 이 최신 확장도 한국어판 출시 소식이 들리면 좋겠습니다. 요즘 들어 보드게임 구매를 많이 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크툴루: 죽음마저 죽으리니>라면 시리즈 수집은 못 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