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요약 : 재밌어요.

  어제 자기 전에 로마 vs 스키타이(족장 난이도), 오늘 방금 전에 마케도니아 vs 로마(장군 난이도) 한 뒤에 쓰는 소감입니다.

  규칙의 복잡함은, 「도미니언」 보다는 확실히 한 단계 어렵습니다. 룰마가 진행해줄 수 있는 부분(카드 공급처의 처리 등)을 제외하더라도, 플레이어가 꼭 기억해야하는 게임의 순서 및 키워드가 조금 있어요. 그래도 자기 문명의 카드는 반복해서 보게 될 테니 몇 턴 돌고 나면 첫 게임의 진행엔 문제가 없고, 한두 게임을 하고 나면 (처음 해보는 문명이 마주하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게임 진행에 전혀 문제가 될 일은 없어 보입니다. 「아컴 호러 : 카드게임」처럼 잔룰 상황이 많은 정도는 아니라서 룰마 한 명이 있고 텍스트가 있는 카드 게임에 거부감만 없으면 누구나 OK인 난이도에요. (덱빌딩 개념이 없더라도 자원 개념이 다른 덱빌딩보다 직관적인 편이라서 문제 없어 보이고요.)

  다만 1인플로 게임을 배우실 경우, 맨 처음에 플레이할 때는 플레이어가 지켜야 할 규칙에다가 봇이 지켜야 하는 규칙을 추가로 익혀야 하다보니 시간이 꽤 걸립니다. 저는 첫 플은 에러플을 최대한 줄이려고 룰북을 꼼꼼히 읽기 + 봇 규칙 안 읽어둬서 봇 규칙 읽으면서 하기로 인해 1시간 반 정도 걸렸네요. 게임에 익숙해지고 나면 (플레이어와 봇이 사용하는 문명의 복잡도 및 봇마다 AI가 다른데 해당 봇과 게임을 해본 경험 유무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한 판에 40분 정도 걸리지 않을까 합니다.

  덱빌딩 게임은 완전 대칭을 이루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개인마다 특수능력을 주는 게임도 좀 있는 편인데, 이 게임은 개인별 차이가 매우 큽니다. 문명별 개성이 확실해요. 비대칭적인 상황에서 오는 다양한 변수 및 독특한 흐름의 게임을 좋아하신다면 큰 장점입니다. 그리고 공용 공급처에서 나오는 카드의 종류도 적지 않고요. 단순히 존재하는 문명 수를 기준으로 C(n, 2)를 해봐도 경우의 수가 많아서 1인플 유저든 다인플 유저든 충분히 길게 즐길 수 있습니다.


1인플 시 문명마다 전용 봇AI가 존재합니다. 복잡한 건 아니고, 봇이 (손 같은 곳에서 왼쪽에서부터 자동으로 하나씩 플레이하는데) 플레이하는 카드의 이름이나 타입을 보고, AI 표의 첫 줄에 해당하면 첫 줄의 행동 진행, 해당 안 하면 다음 줄 체크, 또 해당 안 하면 다음 줄 체크... 같은 식으로 매우 간단하게 작동합니다. 하지만 문명의 특성을 충분히 잘 나타내고 있어서, 상대하는 문명이 달라지면 봇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도미니언」 처럼 자신의 차례에 할 수 있는 행동이 제한된 게임입니다. 지속 카드(내 플레이 영역에 놓이는 카드)의 효과를 발동시킬 수 있는 횟수(게임에선 '소진'이라 부릅니다.)나, 손에서 카드를 플레이할 수 있는 횟수('행동'이라 부릅니다.)가 5, 3으로 제한되어 있어요. 따라서 덱에 좋은 카드가 들어오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컴 호러 카드 게임」 등과 같이 자신의 차례에 주어진 기회를 어떤 순서로 어떻게 배분하느냐를 고민하는 재미도 상당합니다. 「도미니언」은 행동 수가 1이다보니 추가 행동을 주는 카드와 그렇지 않은 카드가 전혀 다른 느낌인데, 이 게임은 행동 수가 3이라서 행동 수가 아주 부족하게 느껴지지도 않고요.

  다만 이러한 '행동', '소진'을 토큰을 써서 표시해야 하는데, 토큰이 왔다갔다하는 건 약간 번거로운 편입니다. 그렇다고 게임에 익숙해진 뒤에는 기억만으로 하기엔 곤란한 부분들이 좀 있고요. 사람과 플레이할 때는 자기 차례에 할 일을 미리 고민해서 다운타임이라도 줄이도록 합시다. (아직 사람이랑은 못 해봤어요.)

  게임 중 구매('확보'와 '성취' 두 가지가 있습니다.)한 카드는 손으로 바로 와서, 그 차례에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이 부분에서 오는 즉석 콤보의 재미가 아주 좋습니다. 「인피니트 샤드」에서 카드를 구매할 때 덱에 넣고 장기적으로 계속 쓸지, 즉시 플레이해서 이득은 보지만 덱에는 못 넣을지 고민하는 재미를 좋아했는데, 구매하는 즉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는 재미는 약간 느낌이 비슷하네요.

  각 플레이어가 한 차례씩 하고 나서 다시 선 플레이어의 차례가 오면 한 계절이 끝나고 이때 자동으로 효과가 발동하는 경우('절기'라 부릅니다.)도 있어서 '소진'과 함께 강력한 엔진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특히 게임 후반에 문명이 야만에서 제국으로 발전하고 나면 이러한 엔진빌딩 요소가 강력하게 작동하기에 성장의 맛도 있고요.

  점수 계산은 번거로운 편입니다. 「테라포밍 마스」에서 자기가 가진 카드나 게임판 상황에 따라서 점수가 달라지는 카드의 점수를 계산하는 느낌이 있어요. 「도미니언」 같은 게임이 점수 계산은 아주 간편한 거에 비하면 좀 아쉽습니다. 스코어패드가 안 들어있는 만큼, 아지트 등에서 게임을 하신다면 점수계산용으로 칩을 꺼내오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플레이 공간은 1인플 기준으로 60cm x 90cm 게임 매트가 다소 좁았고, 매트 1.5장 느낌으로 하니 넉넉했습니다. 1인플 봇이 차지하는 공간이 있어서 그런 문제인 만큼, 2인플 시 매트 1.5~2장이면 여유로운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트레이는 매우 별로였습니다. 저는 조만간 기본 트레이는 과감히 버리고 투명 덱박스를 활용해서 한 상자에 모아서 정리할 생각입니다.

  룰 숙지 확인을 겸한 테플을 빼면 1인플 경험은 한 번이나 마찬가지이고, 아직 대인전 경험은 없습니다만, 아주 흥미롭게 몰입해서 플레이했습니다.

  제가 느낀 재미 등급은 '확장 나오는 대로 다 사고, 긱업빗도 나오면 바로 산다.'입니다. 이 게임을 하고 만족도가 높아서 중고 장턴에 올릴까 말까 하던 게임들 고민 없이 올릴 예정이고, 장바구니도 깔끔하게 모두 삭제했네요.

  혹시 몰라서 클래식만 뜯었는데 레전드도 바로 뜯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