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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는 계획없이 달릴 수 없다 - 러시안 레일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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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17: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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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꼽을 수 있는 게임, 러시안 레일로드 입니다. 작가들이 좀 마이너한 18xx 시리즈를 내다가, 철도 테마의 일꾼 놓기 게임을 만든 것이 러시안이죠. 물론 게임 내 내용하고는 전혀 상관 없습니다. 노선을 만들고 기차를 가져오는데서 테마성이 있긴 합니다만, 게임의 템포가 빠르기도 하고 에이지 오브 스팀 같은 가시적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니라 크게 실감 나는 요소는 아닙니다. 하지만 표지를 보면 뭔가 끓어오르게 하는 매력이 있죠. 제가 러시안을 샀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구요. 사실, 게임 내의 테마성도 상당히 짙습니다. 성 건설이 아닌 케일러스는 상상할 수 없고, 농경 테마가 아닌 아그리콜라는 상상할 수 없듯, 철도 테마가 아닌 러시안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간결하게 필요한 요소만 보여줍니다.
러시안에서 승리를 위해 필요한 핵심은 3가지입니다. 철도, 기차, 공장. 이 3가지 중 하나라도 소홀히 한다면 이길 수 없습니다. 기술자도 있지만, 이것은 핵심이라기보다 게임을 매끄럽게 만들어주는 존재죠. 여기서 잠깐 사족을 달고 가자면, 제가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비슷한 것입니다. 플레이마다 양상이 비슷하거나, 플레이가 끝나고 너도 이렇고 나도 이렇고.. 이런 것을 별로 안 좋아해요.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것과 모순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만, 러시안은 여기서 한층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줍니다. 각 분야를 세부화시킨 것이죠.
아아.. 노선이 길고 아름답습니다.
철도는 3개의 노선으로 나뉩니다. 각 노선은 특징이 뚜렷해서, 어느 것을 타든 다른 양상이 나타납니다. 철도를 다 챙길 수도 없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 템포가 빠르고, 발전한 철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기차가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안 쓰게 해주는 것도 몇 개 있긴 합니다. 라인 끝의 10점이라던가, 3번째 라인의 일꾼이라던가. 하지만 점수를 뽑아내고, 보너스를 받으려면 기차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이 기차가 자동으로 발전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일정 수의 기차가 나가던가 (기차 생산의 시행 착오를 거치던가) 일정 수의 공장이 나가던가 (기술 발전이 이루어지던가) 해야합니다. 이걸 받아오는 방법도 가지 각색입니다. 공장 뒷면의 기차로 가져오던가, 액션 칸에 들어가던가, ? 마커를 열고 9 기차를 받던가, 기술자를 이용하던가.
공장도 같은 공장이 아닙니다. 각 공장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균형 있게 탈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공장 콤보를 노리는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공장 콤보 정도가 아니라, 아예 2개의 산업화 마크를 가지고 본업(?)인 철도보다 공장에 치중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기술자가 있다면 후반의 고득점을 노려볼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물론 상기한 모든 요소들 중 어느 하나라도 획득하려면 액션을 소모해야 하므로, 다른 플레이어들의 선점을 뚫고 가야하므로, 발전시킬 시간은 빠듯합니다. 러시안이 짧은 게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속도감있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거기다 모든 공간이 처음부터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고려해야할 것은 다른 플레이어의 행동 밖에 없습니다.
이쯤에서 잠시 워터딥 얘기를 해볼까요. 다른 분들께 러시안을 얘기할 때 종종하는 말입니다만, 러시안과 워터딥은 대척점에 있습니다. 워터딥은 자원만 있고 테크는 없습니다. 러시안은 테크는 있고 자원이 없습니다. 워터딥의 건물과 퀘스트는 선택이지만, 기본적으로 랜덤하게 나온다는데서 테크라기보다는 선택지를 늘려주는 존재들입니다. 러시안에서의 금화는 자원이라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액션의 가짓수를 하나 늘려주고, 일꾼 대신 쓸 수 있는 윤활유 같은 존재죠.
그런 의미에서 이 두 게임의 양상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워터딥에서는 군주에 따라서 어떤 퀘스트를 깨야할 것인지, 그리고 그 퀘스트 다음에 깰 퀘스트는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플레이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는 전체적인 틀을 짠다기보다 짧으면 1 라운드, 퀘스트의 수나 크기에 따라서 2라운드 정도까지 보는 것이 고작입니다. 오히려, 그 때 그 때 상대방의 일꾼이 어디에 들어가는지, 뽑혀나오는 내 모략 카드와 상대방의 모략 카드에 맞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이런 임기응변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러시안은 어떨까요? 게임은 인원수에 따라 5라운드, 또는 6라운드면 끝납니다. 빠르면 처음 시작부터, 늦어도 1라운드 끝나기 전까지는 방향을 잡아야합니다. 상대방의 견제에 따라 조금씩 틀어질 것을 각오하고, 어떤 기술자를 먹을지, 어떤 공장을 먹어야할지 계획을 잡아야하죠. 물론 그 과정에서 대처하는 것은 워터딥과 마찬가지로 임기응변이 필요합니다만, 퀘스트가 아니라 게임 끝의 모습을 기반으로 행동을 정한다는데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좋-아! 다음 라운드부터 다시 시작하자! 가 안 된다.
테크만 있는 러시안의 단점은 뭘까요. 워터딥에서 한 라운드 동안 이것저것 삽질을 했다고 가정합시다. 원래 필요한 것은 마법사 8에 도적 2인데, 괜히 욕심이 나서 전사도 들고 오고, 성직자도 들고 오고, 돈도 들고 오고. 그리고 상대방은 자기 할 몫을 충실히 했다고요. 그래서 점수 20점 차이가 난다 한들, 그것은 20점 차입니다. 아니, 그 차이도 안 됩니다. 상대방은 20점짜리 퀘스트를 깨느라 액션을 소모한 것이고 (군주까지 치면 24점도 되려나요?) 저는 돈과 전사와 성직자가 있습니다. 마지막 라운드가 아닌 이상, 어디서든 쓰일 여지가 있습니다. 다른 퀘스트를 들고 와도 되고, 보이는 퀘스트가 없다면 다 없애도 되고, 하다 못해 그냥 끝나도 모험가는 개당 1점에, 돈은 2개당 1점이 됩니다. 적어도 워터딥에 한해서는, 정신 차리면 다음 라운드부터 좁혀나갈 수 있단 얘깁니다.
하지만 러시안에서는 그게 불가능합니다. 게임의 라운드 차이가 아니라, 각 라운드가 훨씬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뜻입니다. 원래 계획 없이 1 라운드를 진행했다고 가정합시다. 1노선도 늘리고, 2노선도 늘리고, 3노선도 늘리고, 공장도 하나 가져오고. 다음 라운드가 되면 이 중 하나는 쓸모가 없어집니다. 상대방 중 누군가는 3노선을 진행하여 일꾼을 하나 가져갔을 수도 있고요. 누군가는 마지막 라운드를 위해 1노선에 집중했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산업화 콤보를 위해서 공장 테크를 탔을 수도 있겠죠. 어차피 1, 2, 3 노선 조금씩은 다 쓰지 않냐, 뭔 상관이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아닌게, 러시안에서는 1 라운드 차이로 콤보가 터지느냐 안 터지느냐가 결정이 되고, 1노선 차이로 ? 토큰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이 됩니다. 단순히 어느 행동을 하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언제" 했는지가 중요하단 뜻이죠. 하다못해 선을 잡는 타이밍마저 중요합니다. 이번 라운드 선을 먹으면, 다음 라운드는 확실하게 먼저 플레이할 수 있어도 다다음 라운드에서는 1등이 아닐 수 있거든요. 그 차이로 내가 원하는 기술자나 행동이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이번 라운드 선을 잡으려 해도 2등을 잡을지 1등을 잡을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죠.
결국 내가 낭비한 행동은, 단순히 한 행동을 넘어서 훨씬 더 뒤쳐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물론, 위에서 든 것은 극단적인 예시입니다. 사실 모든 플레이어가 게임 내내 단 한 번도 어긋나지 않고 플레이할 일은 없기에, 또 내가 놓은 것은 남들이 못 놓기에 저런 행동 했다고 게임에 지는게 확정되지는 않습니다. 회색 철도를 가기 위해서라도 1노선이 필요하고, ? 토큰을 지니기 위해서 2노선이 필요하니까요. 3노선도 일꾼 이나 점수 짤짤이 때문에 갈 수도 있는 것이고. 하지만 라운드마다 행동의 가치가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러시안의 마지막 라운드는 거의 모두가 행동이 정해져있거든요.
이겼을 때 성취감은 말할 수 없다.
이 시스템은 좋게 보면 장점일 수 있고, 나쁘게 보면 단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철저한 계획을 세운 자에게 주는 보상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뒤쳐진 자에게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 시스템일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초중급자에게 권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게임입니다. 의외로 설명할게 꽤나 있기도 하고, 10~20점 차가 아니라 100점 차로 진다면 다시는 꺼내들기 힘듭니다. 하지만 전략 게임을 즐기는 사람하고 게임을 한다면, 정말 재밌는 게임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러시안과 비교하는 작품으로 워터딥과 케일러스를 꼽습니다. 케일러스는 러시안과 닮은 점이 많습니다. 스노우볼이 굴러가기도 하고, 게임 셋팅 외의 진행 중 랜덤 요소가 없습니다. 다만 러시안이 뒤에 나온 작품이니만큼, 깔끔한 맛은 덜 하지만 조금 더 화려하고 양념이 쳐져있다고 할 수 있죠. 물론, 케일러스와 러시안, 더불어 워터딥 셋 다 명작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래저래 말이 샌 감이 있습니다만, 정리하겠습니다.
적당한 플레이 시간에 (1시간 30분 가량) 풍부한 전략성을 담은 게임을 원한다면, 케일러스를 재미있게 플레이하셨던 분이라면 러시안을 추천드립니다. 게임 양상은 얼핏 비슷해보일지라도, 한 수 한 수에 따라서 각 라운드는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산업화에 쓰지 않은 한 턴 때문에 30점이 날아가기도 하고, 2배 토큰 하나를 놓쳐서 20점이 날아가기도 합니다. 반대로 계획대로 딱딱 맞춰 돌아간다면, 그만큼 재미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전략 게임의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지만, 러시안의 300점, 400점 고공행진을 보고 있자면 다른 게임에서 30점 가지고 버둥대던게 무엇인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뤄양 다음에 하면 훨씬 더 재밌습니다.)
스노우볼을 안 좋아하는 사람, 게임 내내 계획을 세우는 것이 답답한 사람, 철도 테마가 싫은 사람, 점수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안 좋아하는 사람, 플레이마다 완전하게 다른 양상을 원하는 사람은 별로 권유하고 싶지 않습니다. 스노우볼과 계획은 설명 드렸고, 철도 테마는 싫어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그리고 점수는 25점과 35점으로 지는 것과, 250점과 350점으로 지는 것은 멘탈 상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_-; 마지막으로는 플레이가 두는 수에 따라 많이 달라지긴 하지만,끝나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크게 봐서는 2, 3 노선 산업화, 2 노선 산업화, 3 노선 산업화, 1 노선 산업화 정도가 전부기 때문이죠. 기술자를 어떤 것을 쓰는지, 어떤 노선을 먼저 타는지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끝나고 보면 별로 차이가 안 보입니다. 적어도 게임 보드 상에서는요. 그런 분들에게는 오히려 워터딥이나 석기시대를 권유드리고 싶네요. 훨씬 더 직관적이면서, 시원시원한 면이 있습니다.
사실 이 리뷰를 쓴 것은 확장 소식 때문입니다. 전 제가 본판 게임을 좋아한다는 전제 하에 확장 출시를 굉장히 반깁니다. 어쨌든 추가되는 요소들은 게임의 재미를 늘려주고, 잘 빠진 확장들은 본판의 양상을 판이하게 뒤바꾸기 때문이죠. 대표적인게 워터딥 확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러시안 확장은 상당히 재밌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유행인 모듈 확장인데, 관심없는 솔플은 제껴둔다면 새로운 개인보드, 새로운 자원이 추가됩니다.
길이가 가변적인 노선, 보드를 바꿔주는 판과 함께 추가되는 ? 토큰이 추가됩니다. 기본 보드를 쓰거나 이 보드를 쓰면 되므로 게임의 리플레이성이 확 늘어나겠죠.
석탄은 공장이나 기차를 업그레이드시키는데 사용하거나, 석탄 공장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 외에 석탄을 사용해서 다른 것에 도움을 줄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금년도 에센을 기점으로 출시된다고 하는데, 워터딥 확장에 이어 새로운 마스터피스가 나올지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독일을 달릴 준비를 하면서 기차를 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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