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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그리콜라] 초보다. 그래서 [야그리콜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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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15: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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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5 다이스군
가족 게임 [아그리콜라]...
햇살이 어둠을 내쫓고 마당에 드리우는 농촌의 아침을 생각한다. 바쁘진 않지만 성실한 마음으로 하루 일을 준비하고 나서는 발걸음에서 정직함을 읽는다. 굴뚝에서는 매케함을 머금지 않은 순백의 연기가 피어올라 하루를 든든히 할 준비에 손이 분주하다. 고만 생각했다. [아그리콜라] 이전에 말이다.
[아그리콜라]는 가족 게임이다. 물론 다과를 한 상 차려놓고 하하호호 하는 의미에서의 그런 가족 게임을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눈에 뵈는 게 가족뿐이라서 하는 이야기가 가족 게임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아그리콜라]는 가족 늘리기에 눈깔이 뒤집어지는 요물 게임이다. 이것은 비단 다른 전략 방향을 고민하지 않는 유저의 잘못으로 몰아가기에는 확실히 곤궁한 게임의 시스템이 차지하는 몫이 절대적으로 크다. 식구가 곧 라운드에서 활동할 수 있는 횟수, 그러니까 시스템적인 이야기로 AP를 결정짓는 일꾼이기 때문에, 거기다 가족을 제외한 방법으로는 활동 반경을 늘릴 수 있는 요소가 절대적으로 제약돼 있다는 게임의 특성 때문에 가족 늘리기는 게임을 이루는 한 축이 아닌 알파요 오메가를 뜻하게 된다. 제군은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 그들은 가족이 아니다. 그들은 병력이다.
특히 이런 사태는 게임이 별로 고려하지 않는 2인 플레이 시 상황이 더욱 나빠진다. 산술적인 의미에서 1인 게임 시 나무는 2개씩 차곡차곡 쌓인다. 이것조차도 넉넉하지 못한 판국인데도 2인 플레이 시에는 나무가 고작 3개씩 쌓인다. 들어가는 입은 2배로 늘었는데, 입에 들어갈 나무(?)가 나오는 구멍은 더 작아진 것이다. 물론 이런 유비에 대한 부당성 지적은 정당하다. 1인은 어디까지나 자기완성의 고득점 체계이고, 2인은 서로를 통한 자기를 완성하는 경쟁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한편으로 가정을 꾸리고 오순도순한 삶을 낙점했던 기대와는 다르게 개간되지 못해 불모의 땅이 되어버린 구멍들을 바라보는 찹찹한 심정 역시 [아그리콜라]를 해본 누구든 동감할 수 있는 점이다. 이곳에서의 삶은 바쁘고 도시보다도 치열하다... 가족을 먹여 살릴 책임감은 졸지에 타오르는 경쟁으로, 그래서 상대는 고통을 동반하는 반려자가 아니라 내가 쓸 자원을 탐닉하는 불한당, 공유지의 비극, (홉스적으로) "사람은 사람에게 있어서 늑대"이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만이 유일한 값이 된다. 너도나도 한마음 한뜻으로 가족을 원한다. 여기에 나무는 한정돼 있다. 차례는 늘 변할 수 있지만, 먼저는 항상 먼저인 사람에게 있다. 답은 뻔한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똑같은 게임이 되풀이된다. 같이 즐기자고 하는 게임인데 -하필이면 꼭~ 내가 이제 가지려고 여태껏 모아온 나무를 막 가져가려는 참에!- 누구 하나가 나무를 싹쓸이해가면 걷잡을 수 없이 얼굴이 상기되며 붉으락푸르락 해진다. 자식도 치고 살림도 넉넉해진 상대의 살이를 자신의 빈궁한 삶과 비교하면서 게임은 자괴감에 빠진다. 희망을 잃으니 의욕도 감퇴하고, 이제 할 일은 언제 게임이 끝나나 하는 싫은 소리나 하면서 자원이나 채워주는 운영체제의 역할뿐이다. 이런 분위기에 멋쩍은 상대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자신의 개인 부지만 바라볼 뿐이렸다. 시선은 사선을 가로질러 허공의 멋쩍은 게임만 별다른 내용도 없이 붕붕 떠다닌다... 째깍 째깍... "아, 지겹다."
그러나 명심하라. 이것은 다이브다이스 'vayu'님의 말처럼 하수의 도(道), 그러니까 하인의 길이다. 누군가 앞서는 길을 똑같이 뒤따라 나서봤자 똑같은 굴레의 반복일 뿐이다. 당신은 똑같은 빌드의 역전을 꿈꾸지만 게임은 쉽게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후회의 시간과 같은 태도이다. 후회한다고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의 비가역성은 오직 절대로 응답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회의 태도를 달리 바꿈으로써 절대적인 시간은 진리적으로 달리 구성될 수 있다. 시간이 돌아와 새로운 시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 해답의 실마리는 우리가 너무 익숙해 간과하고 있던 풍경으로부터 찾아들어 우리를 환히 비춘다. "농부들에게 쉽지 않던 시기인 17세기에..." 그렇게 우리는 [아그리콜라]를 한다. 리비도적 허물을 사랑하지 말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라.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할지니." 상도(相到)! 공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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