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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러너의 보이지 않는 정보들을 활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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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1 07: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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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 TEnOTT
"요즈음에는 불필요한 정보라는 게 거의 없다는 건 정말로 슬픈 일이다." - 오스카 와일드
안드로이드:넷러너라는 게임의 표면상에 드러난 것들 외에, 사실 물 밑에서는 정보를 둘러싼 치열한 또 하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을 승리하는 것이 빡빡하고 전략적인 메인 게임에서의 승리에 필수적이지요. 안 그래도 비싼 인터넷 패킷을 "넷러너에서는 왜 정보가 중요한가" 같은 걸 끄적이는 데 낭비하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정보가 많으면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만 쓰고 넘어가도록 하지요.
이 글의 포커스는 제가 중점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정보의 소스들이 모두 저평가되거나 잘 활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경험이 많은 플레이어들은 "경기에 집중하면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돼요" 라고 말합니다만, 정작 우리들은 손에 카드가 한 무더기, 게임 필드에 레즈 안 된 카드 한 무더기를 보면 분석이고 뭐고 멍해지는 일이 많지요. 저는 여러분에게 "매 턴에서의 필드 상황" 외에도 넷러너에는 많은 정보들이 흘러다닌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이전 턴에서 무슨 행동을 했는가, 그리고 상대가 거기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등등 말이지요.
* 러너가 회사에게 제공하는 것
러너로 플레이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건 "상대가 NBN이라서" 같은 단순한 이유가 아닙니다. 러너로 플레이하면서 가장 슬픈 사실은, 매 턴마다 회사가 내 목을 조르도록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정보를 러너 자신이 줄줄 흘리고 다니게 된다는 점입니다. 러너의 모든 카드는 마치 (주 : 이번에 해킹당해서 물의를 빚은) 제니퍼 로렌스의 iCloud 계정처럼 회사에게 죄다 페이스-업으로 노출이 되어있지요. 물론 그립 안의 카드는 (특별한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비공개이고, 거기 안에 카드를 숨겨두는 건 해볼만한 일이기는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Wraparound를 회사가 레즈하기 전까지 참고 기다리다가 코로더를 깔아서 회사를 물먹이는 식으로 말이죠.
제가 제일 문제삼고 싶은 부분은 힙입니다. 러너가 카드를 버리는 게 너무나도 많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 어떤 카드든 : 지금 내 핸드에서 이 카드가 가장 가치 없어
- 콘솔 : 이미 손에 콘솔 한 장이 더 있어
- 플라스크리트 : 당분간은 초토화를 맞고 죽을 리가 없지
- 아트만 : 아트만을 지키고 클론칩을 버리느니 클론칩을 지키고 아트만을 버리는게 낫지
- 코로더 : 손의 카드가 너무 좋은데? 배리어 한두개는 어떻게 해 줄 수 있어
- Special Order / SMC : 이미 핸드에 아이스브레이커 3종류를 모두 모아서 딱히 필요가 없어
물론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러너가 버리는 카드든 러너에게 가치를 잃었거나, 혹은 클론 칩, Same Old Thing으로 건져올리려고 하는 카드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플레이어들이 평소에는 러너가 뭘 버리는지는 관심도 없고, 단순히 "러너가 영향력이 몇포인트나 남았을까"를 세고 싶을 때 그제서야 힙을 뒤지곤 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초토화 콤보덱을 들고와서 러너를 상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러너가 "플라스크리트를 버립니다". 여기서 러너가 런을 하면 많은 회사 플레이어들은 "플라스크리트도 빠졌고 콤보 모으면 이기겠네. HQ 아이스를 레즈해서 콤보 카드를 모으고 있다는 걸 모르게 해야지" 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게임의 상황은 이미 변해버렸습니다 - 러너는 자신의 그립 상황을 보고 "당분간은 플라스크리트가 없어도 된다"는 확신이 생긴거지요. 그러면 어떻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Special Order, 아이스브레이커 인스톨, 4클릭째에 사이펀 맞고 게임이 와장창이 됩니다.
러너가 포커 테이블에 앉아서 레이즈를 했습니다. 거기에 우리는 콜을 부른 꼴이죠. 콜을 했으니 각자 패를 까보면? 털려야지요.
* 회사가 러너에게 제공하는 것
하지만 회사는 태생적으로 러너에게 정보를 적게 제공합니다. 러너는 회사의 카드들을 수동으로 탐색해서 밸런스를 맞추지요. 좋은 회사 덱들은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좋은 카드'라는 잘 알려진) 좁은 범위에서가 아니라 넓은 카드 풀에서 흥미로운 방법으로 영향력을 사용하여, 러너가 막연하게 회사의 덱에 "어떤 카드가 있겠지" 라고 예측하는 것을 위험하게 만듭니다.
물론 유명한 덱의 리스트나 아키타입에 익숙해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 심지어는 저조차도 - 남의 '좋은 덱' 리스트를 읽어보고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일부 카드가 바뀔 수는 있겠습니다만, 몇 장이 바뀌는 것만으로 그 덱의 기본 전략이 바뀌는 일은 드물거든요. 스스로의 판단을 신뢰하되, 회사가 덱을 섞다가 실수로 쏟아지는 바람에 슬쩍슬쩍 보이는 카드들을 절대 놓치지 마시고, 토너먼트에 나가거든 "이번 토너에서 뭔가 신묘한 방법으로 플랫라인 당한 사람 있나요?" 라고 물으러 다니는 걸 잊지 마세요.
* 바디 랭귀지가 제공하는 것들
우리가 진테키에서 제작한 클론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남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 보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하지만 상대방이 하는 행동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정보를 제공합니다. 바디 랭귀지를 읽어서 게임 정보로 만드는 것은 개인의 감정과, 지적 능력과, 영감과, 게임에 대한 이해에 따라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건 이렇다"는 식의 가이드로 압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신 우리의 바디 랭귀지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과 무관계하게 만드는 것이 좋겠지요.
흔히 할 수 있는 행동이 실제로 어떤 걸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 뭔가를 센다 : 뭐가 되었든 숫자를 세기 시작할 때, 의도적으로 절반까지만 세고 중단하세요. 칼같이 정확한 숫자가 필요하면 모르되, 감을 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반쯤만 세고 두 배를 하면 됩니다.
- 정보를 요청하기 : 물론 스윕스윅이나 초토화를 쓰기 전에 카드가 몇 장인지를 묻는 건 중요하지요... 그러니까 "크레딧이 얼마고 핸드가 몇 장이에요?" 라고 한꺼번에 물으세요.
- 페이스다운 카드 : 페이스다운 카드가 뭐였는지를 확인할 생각이라면, 특정 카드가 중요하다는 인상은 가능한한 풍기지 말고, 매번 다른 카드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카드를 한꺼번에 확인하도록 하세요.
- 드로우한 카드 : 드로우를 하자마자 일단 핸드에 있는 카드를 셔플하세요. 손에 들어온 카드를 굳이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 핸드의 카드를 모두 읽으세요. 러너가 "회사가 지금 HQ에 아젠다가 다섯장 뭉쳐있어서 드로우한 카드만 쓰고 턴을 넘기는구나" 같은 걸 알게 하면 곤란합니다.
- 패턴 : "언제나 진테키 PE를 상대로는 어드밴스 안된 카드에 런을 하세요" 같은 조언은 얼핏 그럴싸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맹점이 있다면, "언제나 XXX를 하세요" 라는 접근은 넷러너 세계에서는 재앙과 같다는 것입니다. 패턴에 대해서는 아래쪽에서 한 번 더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 시선 집중 : 한 서버만 노려보는 것은 하지 마세요. 뭔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다면 테이블의 특정 지점을 노려보게 되기 마련입니다. 시선을 자연스럽게 여기저기로 분산하도록 노력하세요. 상대방 플레이어가 뭔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결국 아무런 의미있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꽤 큰 정보를 노출한 것입니다.
* 정보 유도
넷러너는 수많은 사람들을 새로 만나서 지적인 유희를 즐기는 게임인 것과 동시에, 고작 그림만 살짝 다른 카드 몇 장과 예쁘장한 게임 패드 하나 때문에 그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아야 하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어쨌건, 토너먼트에서 뉴페이스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나와의 게임에 유용한 정보를 적게 제공하도록 주의를 기울이세요.
가끔 상대방들은 농담조로 내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행동들을 제시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 회사 플레이어가 새 서버를 만들고, 아이스를 설치합니다. 그리고 내 턴이 오자마자 말합니다. "첫 클릭 원격 서버에 인사이드 잡이죠?"
- 진테키 RP 플레이어를 상대하고 있어서, 이번 턴에는 뭘 할지 계획을 짜고 있는데 말합니다. "아카이브 런 원격 서버 런이겠네요?"
- 2클릭 남아서 뭘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데 회사가 끼어듭니다. "크레딧, 크레딧, 패스하면 되겠네요."
많은 경우 이런 식의 제안은 게임 테이블에서 흔히 할 수 있는 농담에 가깝고, 별로 의미가 있는 건 아닙니다. 딱히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게임에 순수하게 재미를 느끼기 때문에, 이런 식이 되면 재미있겠다 라는 이유로 하는 정도의 소리입니다. 하지만 일부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테이블 토크로 "yes ladder"를 구축해서 당신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게 될 수도 있습니다.
주 : yes ladder. "그렇네요" 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질문만을 반복해서 원하는 결론 쪽으로 사고를 제한시키는 화술. "그렇네요" 라는 답을 계속하다 보면 그것을 계속하고 싶어지는 약간의 충동 때문에 "아니오" 라는 답을 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이걸 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는 조종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나쁠 수 있으므로 남발하지는 않도록 할 것.
토너먼트에 나왔다면, 무슨 카드가 있다, 혹은 없다에 대해서 확답을 줄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방은 상대방의 정보 풀에서 헤엄치도록 내버려 두세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주 : 아마도 농담조로 말한 상대방의 기분도 해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상대방에게 정중하게 "생각 좀 더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패턴을 만들고 깨기
저는 psi 게임(0, 1, 2 비딩)을 할 때 0비딩을 하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저와 게임을 많이 해 본 사람들은 그걸 이용할 가능성이 높지요. 그래서 저는 psi 게임을 하면서, 실제 비딩과는 별 상관이 없이 "나는 어떤 방법인지는 알려주지 않겠지만 랜덤하게 비딩할거야"라는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일부러 주사위를 한 번 굴립니다.. 이런 식의 "패턴"이라는 것은 게임을 효율적으로 플레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한 게임에서 내가 갖고 있는 수많은 패턴들에 모두 역패턴을 걸어서 혼란시키는 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나는 어떤 패턴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어느 시점에서 느닷없이 패턴을 깨는 것이 전략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걸 이해하는 것입니다. 넷러너에서 이러한 패턴을 만들고 깨는 가장 좋은 예는 "원격 서버에 런을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원격 서버에 런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더라도,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가서 클릭을 허공에 뿌리고 오는 것도 좋습니다. 이러면 회사에게는 never-advance 아젠다로 블러프를 하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지요.
예가 하나 더 있다면 아카이브의 페이스다운 카드를 확인하는 습관입니다. 크리미널 같은 경우 Security Testing 같은 걸 아카이브에 걸어버리고 영영 확인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가끔은 가서 일부러 클릭을 잃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이러면 회사가 당당하게 NAPD를 거기다 파묻어놓는 일은 없게 되지요.
* 정리
넷러너는 정말로 환상적으로 깊고 복잡한 게임입니다. 온 사방에 해야만 하는 결정들이 널려 있거든요! 실제로 한 게임을 진행하면서 내리는 결정의 숫자를 세어보면 멍해질 정도입니다.
(주 : 그리고 그만큼 초보를 가르치는데 애를 먹습니다. "나 뭐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징징대니까요)
모든 정보를 인지하세요. 그리고 상대방이 이렇게 준 정보는 좋은 결정을 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물론 쏟아지는 정보를 모두 활용하겠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에게는 커다란 도전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집중하고 연습하면 매 게임마다 물밑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정보 전투를 인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 그 정보들을 활용하여 승리할 수 있게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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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리듬이 망가진 김에 하나 더 번역해서 올립니다.
그나저나 게시판 참 불편하네요... '며ㅈ'이라고 쓰면 글이 잘리는 게시판이라니,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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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노트님 글 읽을수록 '내가 즐겼던 넷러너는 도대체 무언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ㅎ읽을수록 즐길거리가 늘어나는 글이네요. 좋은 번역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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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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