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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보드게임의 리플레이성
  • 2022-03-21 20:4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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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30 산신령

가벼운 글이 주로 올라오는 자유게시판인데, 뭔가 뜬금이 없어보여서 머릿글을 덧붙여 봅니다.

제가 어제오늘 잠시 생각해본 것들을 글로 적었습니다. 길고 무익한 글이지만, 그렇다고 해로울 것도 없으니 모쪼록 가벼운 심상으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핫..

 

 

 

어떤 보드게임에 대해 뽐을 받고는 마음에 들어서 이리저리 알아보다 보면

흔히 이런 말을 접할수가 있습니다.

 

"이거 처음에는 신기한데, 한 세판쯤 하면 더 생각 안난다"

"다섯판쯤 하고 나니까 그 이후부터는 모든 게임이 비슷해지는 것 같다"

 

소위 '리플레이성'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는 평가들이죠.

매일같이 보드게임을 하고 싶은 매니아들에게는 결코 무시 못하는 요소고요.

비단 보드게임만이 아닙니다. 스팀 같은 게임 플랫폼의 평가를 보면 플레이타임이 그 게임의 가치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죠. 한 게임만 수백 시간을 했던 사람들이 훈장처럼 플레이타임을 달아 두고 '이 게임 하지마라, 나처럼 인생 망한다'를 리뷰로 달곤 하는.

그런만큼, 게임이 주는 경험의 양이라는 것은 게임의 핵심가치 중 하나라 할만합니다. 
 

그런데 사실, 보드게임의 리플레이성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은 몇년 전의 사건으로 인해 한번 뒤집힌 적이 있었습니다.

사건이란, 그 유명한 팬데믹 레거시의 등장을 말합니다. 게임을 하고 나서 카드를 그냥 찢어버린다고? 다시 플레이할 수 없다고? 그런데 내 눈에 흐르는 이 눈물은 뭐지?

그 후로 이어진 레거시 게임의 열풍은, 경험의 질이 시간적인 양보다 더 중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고요.

 

하지만 보드게이머들에게는 다시금 리플레이성이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됩니다. 왜일까요?

명작 레거시 게임의 개수와 볼륨에는 한계가 있고, 열풍은 사그라들었기에 할만한 명작 레거시 게임들은 다 해보았으며,

평생 해도 다 못할 것만 같았던 글룸헤이븐 90여개 시나리오가 끝나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보드게임 라이프는 앞으로도 계속되기 때문이지요.

 

저는 사실 이러한 레거시 게임의 열풍을 흥미를 갖고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몇년이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보드게임에 열정을 갖게 되었죠.

따라서 저도 현재의 다른 보드게임 매니아들과 비슷하게, 전통적인 시각에 따라 '게임의 리플레이성'을 핵심 가치로 여기고 보드게임을 수집했습니다. 그렇게 '오래 즐길수 있는 게임들'을 모으다 보니, 갑자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가지고 있는 게임들을 앞으로 몇 번씩이나 할 수 있을까?

 

 

저는 어제부로 보유한 게임이 100개를 넘어갔습니다. 아시겠지만, 보드게임 매니아 기준으로 그리 많은 숫자도 아니고요. 만약 게임 한 판에 순수 플레이 시간이 1시간이라고 했을 때, 저는 1게임당 5판씩 기준으로 500시간을 할 수 있지요.

제 실내 여가 시간을 최대로 잡아서 일평균 두시간 반을 전부 보드게임만 할 경우, 매 이틀마다 새 게임으로 바꿔서 200일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200일 하고나면 다섯판 하고 질렸던 게임을 했을 때 여전히 지루할까요?

아무리 기억력이 좋은 사람도 분명 신선한 경험을 다시 하게 될 겁니다. 어쩌면 추억으로 인해 더 재미있을 지도.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가지 게임을 반복해도 좀체 질리지 않는다는, 리플레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가.

 

아마도 백여개 이상의 게임을 플레이 목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 겁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보드게임 입문을 시키려는 사람에게도 큰 의미가 없을 겁니다.

쉬운 게임을 주로 즐기거나, 간혹 어려운 게임도 부담감없이 새 룰을 익히고 시작하는 사람도요.

그리고 제가 이들 경우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보드게임 백개를 모으고서야 알았습니다.

그 게임들 중 절반이 개봉노플입니다. 하하. (주인을 원망하지 말거라. 옆에 친구 많으니 쎄쎄쎄하고 놀아..)

그냥 전시용은 당연히 아니고요, 언젠가 무조건 할 것들인데 여태 대기중인 셈이죠.

 

이것은 제대로된 기준이 없이 게임을 구매한 결과입니다.  게임을 덜 샀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제가 200여개의 게임을 가지고 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것들을 금방금방 즐길 수만 있다면요.

그런데 저는 매일 해도 안 질릴 게임을 찾느라, 부담없이 할 수 있는 게임들을 놓쳐 왔던 겁니다.

어렵고 복잡하며 익히는 데 시간이 필요한.. 고정멤버 모으기도 만만치 않은 게임들을 쌓아올리느라, 쉽고 테마성 있고 누구든지 깔깔거리며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 들어올 자리를 막아둔 셈입니다.

따라서 저는 앞으로의 보드게임 구매에 리플레이성은 거의 고려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몇번 하고 말아도 좋으니, 고민 없이 꺼내서 누구와도 즐겁게 할수 있는 게임을 우선하기로요.

 

 

이런 제 생각이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오히려 소수에게 해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드게임 매니아라면 모를 수가 없는, "요새 모임가면 이거만 하는것 같다" 라고들 하는 갓겜들을 살펴볼까요.

테포마, 버밍엄, 푸체거, 그웨트, 가이아, 테라미스티카 등등.. 

와우... 이 게임들의 긱순위를 다 더해도 100이 안 됩니다. 살아있는 전설 같은 게임들이죠.

게임의 가치는 그로부터 오는 재미의 양적 측면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셈이죠. 커뮤니티의 평가가 이야기하듯이.

 

그래서 저는 게임의 평가 기준이라는 것이 상대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뻔하디 뻔한 이야기지만, 제가 이걸 게임 백개를 사고 나서야 알았으니 생각보다 안 뻔한 이야기일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게임의 평가기준이 사람마다 중요도가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겁니다.

게임이 200개 있는 사람에게는 리플레이성이 무조건 안 중요할까요? 만약 그가 190개 게임은 한판씩만 해본뒤 소장 목적으로 보유중이며, 10개의 게임만 매일같이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매일 해도 안 질리는 게임을 찾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겠죠.
190개 중의 하나가 될 게임이 아닌, 10개 중 하나가 될 게임 말이죠. 

 

 

그래서 저도 글을 쓰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스스로를 보드게임 매니아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가장 사랑하는 취미생활에 얼마나 진지해 보았나... 카드 슬리브가 입고되었는지는 매일같이 살펴보면서, 유저 제작 컴포넌트는 무엇을 살지 그렇게나 고민하면서

내게 필요한 게임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중 중요한/덜 중요한 평가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어째서 생각해보지 않았나.

 

그래서 저는 보드게임의 리플레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제가 필요한 게임이 무엇인지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고민을 마치고 나서 어쩌면 이전보다 게임을 더 많이 사게 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 게임들은 제가 이전에 샀던 게임들과 달리, 언제 누구와 할지 그림이 그려지는, 당장 이번 주말에라도 시작할 수 있는 게임들일 것이거든요. 

 

 

 

제 생각을 공유하고자 글을 올린다기보다, 길게 글을 적어본 김에 어딘가 남기고 싶어서 올려 봅니다.

글이 꽤 긴 만큼, 헛점도 많고 지루함도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만큼 그냥 가볍게 읽고 잊어주십사 자유게시판에 적었습니다.

모두들 오늘 하루 잘 마무리하시고, 앞으로도 보드게임과 함께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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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Lv.47 폭풍먼지
    • 2022-03-21 20:53:13

    잘 읽었습니다. ㅎㅎ 전 절대적인 시간보다 경험의 밀도가 더 중요시 하는 편입니다.
    똑같이 30분이 걸리는 게임을 했는데 하나는 시간 아깝고
    다른 하나는 즐거웠다...인 게임이 있어서..
    • Lv.30 산신령
    • 2022-03-21 20:58:49

    계속 생각해보고 있는데, 저는 아무래도 같이할 사람이 바로 반길만한 게임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랑 같이 보드게임 해줄 사람은 많은데, 대부분 입문자 레벨이고
    제가 쌓아둔 게임들은 긱웨이트 4점대 게임들이라 ㅠㅠ
    소위 갓겜 모으느라 중요한걸 다 놓쳐왔더군요
    • Lv.5 안티구아
    • 2022-03-21 21:06:46

    같이 하실만한 분들이 있는 곳을 찾으시것도 좋을것 같아요.
    • 관리자 [GM]언테임드
    • 2022-03-21 20:56:49

    잘 읽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들 클래스 게임을 꽤 선호합니다. 자주 돌리기 쉽고, 고정 팟이 아니라도 보드게임을 해본 적만 있으면 배우기도 어렵지 않고요. 최고의 명작이 아니면 주목받지 못하는 시대라 중간급이 빛을 보긴 어렵지만요.. ㅠ
    • Lv.30 산신령
    • 2022-03-21 21:00:52

    웨이트가 어중간한 게임들이 보통 높은 평가를 못받더군요. 그래서 뭔가 숨은 보석을 찾는 느낌이 드실 것 같습니다 ㅎㅎ 저도 내공이 쌓이면 그런 게임들을 좀더 찾아볼까 합니다. 저랑 제 지인들이 찰떡같이 좋아할 만한, 그러면서도 단순하지 않은.
    • Lv.47 폭풍먼지
    • 2022-03-21 21:51:06

    그건 바로 키포지! ...라는 말이 달릴줄 알았습니다 ㅋ...
    • Lv.5 안티구아
    • 2022-03-21 21:00:59

    카네기가 중간과 하이엔드 급 중간에 서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너무 재밌네요 다음달에는 오겠죠 제발요~~
    • 관리자 [GM]언테임드
    • 2022-03-21 22:43:03

    제가 말씀드리는 미들 클래스는 보통 타이니 타운, 미니빌, 엘도라도, 마이시티 정도라 카네기만 해도 꽤 고난이도로 봅니다 ㅎㅎ 이런 종류의 게임들은 하드코어 유저 사회에서는 묘하게 환영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국내 시장의 특성이라고 봐요.
    • Lv.5 안티구아
    • 2022-03-22 07:31:21

    아촤촤! 입문자분들과 하드게이머분들의 간극이 좀 크긴 하더라구요. 그 사이를 탄탄하게 받쳐줄분들이 많이 유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 Lv.5 안티구아
    • 2022-03-21 20:59:03

    공감이 많이 가는 글 입니다. 리플성이 좋은 게임들은 전략의 자유도가 높고 상대방을 많이 타는 게임이더라구요. 즉 인터액션이 있고 매 게임 다양한 양상으로 흘러갈 수 있는 게임들은 플레이 후에 다른것도 해보고 싶고 다른 상대와 했을때 느낌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자꾸 손이 가는 것 같아요. 카네기, 테포마, 도미니언, 가이아, 버밍엄, 아콜, 푸코, AOS 등이 여기에 해당되구요. 게임을 즐기는 것에는 여러가지 방법(TTS,아레나,동호회,기타모임)이 있으니깐 잘 활용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즐거운 보드라이프 하세요~
    • Lv.30 산신령
    • 2022-03-21 21:02:56

    제가 실물로 하는 보드게임을 훨씬 선호하는 성향이 있는데, 그것도 본문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가이아 버밍엄 같은건 저도 재밌게 즐길 수 있는데, 제 주변 사람들이 안그런지라 결국 온라인으로 해야 해서..
    • Lv.5 안티구아
    • 2022-03-21 21:06:04

    오프의 맛을 온전히 온라인에 느끼기는 어렵지만 온라인의 편의성과 접근성이 사기급이라서요. 아쉬운대로 자주 하기는 좋더라구요 ㅎㅎㅎ 저도 온라인 보드게임에 굉장히 회의적인 사람이었는데 막상 해보니 위에 언급한 사기성때문에 자주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오프가 최고죠 ^^
    • Lv.30 산신령
    • 2022-03-21 21:19:09

    네 ㅎㅎ 손맛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요새 아레나에서 게임을 한번씩 해보고 있습니다. 할수록 오프에서 사람이랑 하고싶은 마음이 커져서 문제긴 한데, 나름 아쉬움을 달랠 수는 있는 것 같아요.
    • 준버그
    • 2022-03-21 20:59:54

    누군가에게는 갓겜이 누군가에게는 망겜일 수 있죠~
    저도 리플레이성을 많이 생각하면서 보드게임을 구입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즐길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 그리고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
    이것 또한 고민해서 구매해요~
    물론, 저도 그렇게 고민해서 산들, 개봉 노플도 많아요;;
    • Lv.30 산신령
    • 2022-03-21 21:04:58

    그래도 고민해서 산 개봉노플이면
    처분할까? 했을때 팔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더 크더군요 ㅎㅎ
    저는 처분을 좀 많이 해야할 것 같습니다...ㅠ
    • Lv.15 유르얀
    • 2022-03-21 21:09:24

    저도 결국은 구매를 몇 번 하다보니 핫한 보드게임 따라 구매하는거도 중요하지만 결국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개 중요해지더라구요

    그런류의 게임은 질리지도 않고 개봉노플이라도 마냥 좋고 룰북만 읽어도 재밌고 ㅎ
    암튼 꼭 취향에 맞는 게임으로 리뉴얼 하시기 바랍니다
    • Lv.30 산신령
    • 2022-03-21 21:12:19

    ㅎㅎ 넵 보드게임 책장이 조만간 재개발될 예정입니다.
    전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지요!
    • Lv.17 싸뭄
    • 2022-03-21 21:11:12

    방탈출 장르는 사실상 리플레이성을 포기해야하는.. ㅠ
    • Lv.30 산신령
    • 2022-03-21 21:20:49

    그래도 방탈출 게임 특유의 그 강렬하고 긴장감있는 경험은 정말 소중하지요 ㅎㅎ
    • Lv.10 단호한결의
    • 2022-03-21 21:18:50

    보드게이머라면 한번쯤 해봤을 법한 고민입니다
    결국 같이 하는 사람들을 고려할 때는 긱 웨이트 3점 내외 게임들이 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테마나 작가의 작품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ㅠㅠ
    기준을 잘 정리해보시고, 후기 글도 꼭 남겨주셔요
    • Lv.30 산신령
    • 2022-03-21 21:22:10

    아트웍 때문에 사이드, 칸반은 포기 못할 것 같습니다. 정말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러요...
    미술품 전시하는 셈 치고 소장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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