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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콜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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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 11: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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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3 외눈박이
안녕하세요. 외눈박이라고 합니다. 아콜 리뷰를 쓰다가 소설 아닌 소설을 쓰고 말았는데, 요청이 있어, 혹은 '왠지 이곳에 남겨야 할 것만 같아' 옮겨봅니다. 흥미 위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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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한마디로 쫄딱 망했다. 아내가 미소를 잃은 것도, 아들 녀석이 나와 두 마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도. 우리 누렁이가 화덕에 들어간 것도. 이 모든 게 우리 왼쪽 집으로 이사 온 킴 씨네 가족 때문이다. 잊지 않겠다... 미스터 킴.
킴 씨네 가족은 독일 출신이 아니다. 그는 먼 타국, 조선이란 나라에서 건너왔다고 한다. 눈도 작고 몸집도 작은 이 이방인 가족은 느긋함의 대명사인 우리 마을 사람들과는 성향이 매우 달랐는데, 매사의 모든 일을 ‘빨리빨리’해결했다. 밥도 빨리 먹고, 잠자리도 빨리 들고, 기상도 빠르고, 무엇보다 달리기가 빨랐다. 매사 느긋함으로 일관해온 우리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캐기 위해 언덕을 달리고, 방목한 소를 몰아오기 위해 전투달리기를 시작한 것도, 다 킴 씨네 때문이다.
원래 배려심이 강한 우리 이웃들은 마을에 물자나 자원이 생기면 집집마다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받아가는 게 암묵적인 룰이었다. 하지만 먼 타국에서 온 이 악독한 이웃들은 도무지 배려심이란 게 없었다. 아니,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에게 왜 나누고 베풀며 살아야하는지를 알려줄 방도가 없었다. 킴 씨와 그의 부인, 그리고 악마 같은 그들의 아이들은 강가에 갈대가 자라면 낫을 들고 달려가고, 쓸만한 나무가 보이면 도끼를 들고 달려가고, 음식이 생기면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가축을 발견하면 재빠르게 자신들의 우리에 밀어 넣었다. 결국 그들이 온지 몇 주 만에 마을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먹고 살려면, 뛰어라.
뭐든지, 남들보다 한 박자 빨라야 했다....
음메에에에 ~
틀림없다. 소 울음소리다.
지난주에 수확한 유기농 당근을 씹어 먹으며 아침을 해결하고 있던 우리 가족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순간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들놈의 눈 속에선 불똥이 튀었던 거 같다.
우리 가족은 입 안에 있던 것도 내뱉고는 번개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재빨리 뒷문을 열고 나와 마을 공동 우리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소를 차지하려면 누구보다 빨리 우리에 도착해야했다. 무엇보다 킴 씨보다 빨라야 했다.
“소는 내가 데려올 게, 당신은 나무를 맡아! 아들, 넌 밭을 사수하고!”
“알고 있죠, 당신? 이번에도 소를 못 차지하면 둘 째 계획은 포기예욧!”
아내의 말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잠자리를 걸고 협박을 하다니, 그 어느 남자가 두려워하지 않을까.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두 다리에 박차를 가했다. 아내와 아들이 마을 창고를 향해 사라지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다이스강을 건너자 드디어 마을 공동 우리가 있는 넓은 언덕이 나타났다. 나는 확인 차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어느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제일 빨리 도착한 것이다.
나의 계산이 맞다면 공동 우리에 있는 소는 암소일 것이다. 우리 누렁이에게 드디어 짝이 생기게 된 것이다. 가축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성별 역시 매우 중요하다. 나는 그 사실을 여섯 마리의 양을 갖고도 매 년 한 마리밖에 새끼를 얻지 못하는 로젠버그 네 가족을 보고 깨달았다. 수놈, 수놈, 수놈, 수놈, 수놈, 암놈. 그나마 다행인 것은 머리가 모자란 그 집 둘 째가 고기가 먹고 싶다며 화덕에 밀어 넣은 게 수놈이었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내가 이렇게 소에 집착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작년부터 행에 온 ‘농가평가’ 때문이다. 영주인 게이머 경이 마을 농부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작년부터 각 농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는 얼마나 풍족하게 잘 꾸렸는지를 점검하고 점수를 매기기 시작하였는데, 가장 우수한 농가에는 적지 않은 상금과 상패를 하사했다. 작년 우리 마을 최우수 농가로 선정된 것은 다름 아닌 킴 씨 네였다. 나는 상금으로 세 번째 돌집을 짓는 킴 씨 네를 보며, 눈물의 고배를 마셔야했다. 나도 셋째, 아니 둘째가 갖고 싶다.... 아이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나는 킴 씨 네를 이기려면 단순히 빠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킴 씨는 다재다능한 멀티 플레이어였는데, 우물제작자이자, 부두일꾼, 잡화상인이자 자원상인까지 겸하는 만능 일꾼이었다. 나는 그를 이기기 위해선 다양한 손재주가 필요하단 걸 절감했고, 이른 봄부터 꾸준히 길드를 돌아다니며 기술을 익혀왔다. 지금의 나는 밭 농사꾼이자 농장 감독관, 가축조련사이자 도축업자, 양의 친구이자 박제사이다……. 뭔가 기묘한 조합이긴 하지만 우리 마을에선 다 허용된다.
아무튼 밭에는 곡물과 채소가 풍성하게 자라고, 화덕과 울타리도 마련하고, 돌집을 지을 수 있는 충분한 자원도 모았으니 이제 남은 일은 우리 안을 가축으로 채우고 고정적인 음식을 얻을 수 있는 ‘푸드 엔진’을 완성시키는 일뿐이었다. 악마 같은 킴 씨가 양과 돼지를 싹쓸이 해간 뒤라 이 소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했다. 잘못했다간 누렁이 한 마리뿐인, 텅텅 빈 우리로 평가를 마치게 될지도 몰랐다. 최악의 경우 가족이나 다름없는 누렁이를 화덕에 밀어넣게 될지도....
언덕을 다 오를 때까지도 킴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소 한 마리만 가져가기에는 이래저래 손해 볼 게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소 한 마리로는 새끼를 만들 수 없으니 말이다.
정상에 다다르자 언덕 위에 마련된 드넓은 우리. 그 안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암소의 모습이 보였다. 앞으로 안정적인 푸드 엔진을 마련해줄 아름다운 그녀가, 목 놓아 울며 날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매혹적인 눈꺼풀과 고혹적인 입술, 그리고 만지면 손끝에 꿀이 묻어나올 것만 같은 튼실한 장딴지.... 나는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을 차분히 내딛었다. 날 방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악마라도 나타나면 모를까....
그리고 악마가 나타났다.
“잠시만 기다리게. 곧 그 사람이 올테니.”
우리 관리인이 내 앞을 가로막았을 때만 해도 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조금도 알지 못했다. 항상 유쾌한 농담과 미소로 날 상대하던 관리인이 어째서인지 그날만큼은 표정이 어두웠다. 어쩌면 곧 나에게 닥칠 불행의 기운을 미리 감지한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숨을 고른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대체 누가 온다는 거야? 내가 먼저 왔으니까 저 소는 내꺼야.”
관리인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대꾸했다.
“그래. 네가 선이지. 그 사실은 틀림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저 소가 네 것인 건 아니야.”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먼저 온 사람이 먼저 갖는 게 최근 우리 마을에 고착된 룰 아니었단 말인가? 황당함을 느낀 내가 무어라 대꾸를 하려는데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세상을 구한 영웅이 등장했을 때나 들려올 법한 웅장한 음악소리.... 그리고 백마에 탄 킴의 모습이 언덕 아래서 나타났다.
킴은 화려하게 치장된 붉은색 프록과 귀족들이나 쓸법한 풍성한 가발을 쓰고 있었다. 그가 말에서 내려 우리 앞까지 오는 그 짧은 시간이 나에겐 백 만년만큼이나 오랜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는 딱딱하게 굳어있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어눌한 독일어로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이웃형제여. 식사는 하셨는지요?”
그는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주머니에서 흰색 수건을 꺼내더니 목에 둘렀다. 그리고는 지체 없이 관리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저 소는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물론이지요. ‘시식가’ 미스터 킴.”
시식가가 대체 무엇이냐는 내 질문에 관리인은 ‘먼저 맛보는 자’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킴이 암소를 데리고 유유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멍하니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리를 떠나며 킴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그럼. 이웃형제여. 되도록 선을 잡지 말라고 충고하겠어. 이 몸이 곧 선이고, 선이 곧 이 몸이니까.”
킴은 그렇게 떠났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모두 군침을 흘릴만한 자원이 생기거나 행동칸이 나오면 킴은 여지없이 시식가의 권한으로 먼저 그것을 ‘맛보았다’. 삼 돌도 먼저 먹고, 셋째도 먼저 낳고, 밭을 갈면서 씨를 뿌리고 빈 칸도 메우는 삼위일체 행위도 먼저 했다. 나는 현관 앞에 세워둔 ‘선’을 상징하는 노란 기둥에 기대어 앉은 채 하염없이 킴이 세상 모든 것을 싹쓸이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누렁이는 화덕에 들어간 지 오래였고, 아내와는 각 방을 쓰게 되었으며, 아들은 쓸모도 없는 울타리 장작이나 때우자며 대들다가 내가 던진 돌멩이에 맞아 진료소에 실려 갔다. 그리고 오늘도 킴 씨 집에서 터져 나오는 화목한 웃음소릴 들으며 외양간 안에서 잠이 들었다.
두고 보자, 킴. 내년엔 유모를 고용해서라도 꼭 셋째까지 낳는데 성공할 테니까. 아니, 네 왼쪽 집으로 이사를 가, 매번 ‘선’을 잡아버리고 말테니까. 같이 흙먼지 마셔가며 길바닥에서 구걸해보자고.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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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한마디로 쫄딱 망했다. 아내가 미소를 잃은 것도, 아들 녀석이 나와 두 마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도. 우리 누렁이가 화덕에 들어간 것도. 이 모든 게 우리 왼쪽 집으로 이사 온 킴 씨네 가족 때문이다. 잊지 않겠다... 미스터 킴.
킴 씨네 가족은 독일 출신이 아니다. 그는 먼 타국, 조선이란 나라에서 건너왔다고 한다. 눈도 작고 몸집도 작은 이 이방인 가족은 느긋함의 대명사인 우리 마을 사람들과는 성향이 매우 달랐는데, 매사의 모든 일을 ‘빨리빨리’해결했다. 밥도 빨리 먹고, 잠자리도 빨리 들고, 기상도 빠르고, 무엇보다 달리기가 빨랐다. 매사 느긋함으로 일관해온 우리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캐기 위해 언덕을 달리고, 방목한 소를 몰아오기 위해 전투달리기를 시작한 것도, 다 킴 씨네 때문이다.
원래 배려심이 강한 우리 이웃들은 마을에 물자나 자원이 생기면 집집마다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받아가는 게 암묵적인 룰이었다. 하지만 먼 타국에서 온 이 악독한 이웃들은 도무지 배려심이란 게 없었다. 아니,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에게 왜 나누고 베풀며 살아야하는지를 알려줄 방도가 없었다. 킴 씨와 그의 부인, 그리고 악마 같은 그들의 아이들은 강가에 갈대가 자라면 낫을 들고 달려가고, 쓸만한 나무가 보이면 도끼를 들고 달려가고, 음식이 생기면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가축을 발견하면 재빠르게 자신들의 우리에 밀어 넣었다. 결국 그들이 온지 몇 주 만에 마을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먹고 살려면, 뛰어라.
뭐든지, 남들보다 한 박자 빨라야 했다....
음메에에에 ~
틀림없다. 소 울음소리다.
지난주에 수확한 유기농 당근을 씹어 먹으며 아침을 해결하고 있던 우리 가족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순간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들놈의 눈 속에선 불똥이 튀었던 거 같다.
우리 가족은 입 안에 있던 것도 내뱉고는 번개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재빨리 뒷문을 열고 나와 마을 공동 우리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소를 차지하려면 누구보다 빨리 우리에 도착해야했다. 무엇보다 킴 씨보다 빨라야 했다.
“소는 내가 데려올 게, 당신은 나무를 맡아! 아들, 넌 밭을 사수하고!”
“알고 있죠, 당신? 이번에도 소를 못 차지하면 둘 째 계획은 포기예욧!”
아내의 말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잠자리를 걸고 협박을 하다니, 그 어느 남자가 두려워하지 않을까.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두 다리에 박차를 가했다. 아내와 아들이 마을 창고를 향해 사라지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다이스강을 건너자 드디어 마을 공동 우리가 있는 넓은 언덕이 나타났다. 나는 확인 차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어느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제일 빨리 도착한 것이다.
나의 계산이 맞다면 공동 우리에 있는 소는 암소일 것이다. 우리 누렁이에게 드디어 짝이 생기게 된 것이다. 가축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성별 역시 매우 중요하다. 나는 그 사실을 여섯 마리의 양을 갖고도 매 년 한 마리밖에 새끼를 얻지 못하는 로젠버그 네 가족을 보고 깨달았다. 수놈, 수놈, 수놈, 수놈, 수놈, 암놈. 그나마 다행인 것은 머리가 모자란 그 집 둘 째가 고기가 먹고 싶다며 화덕에 밀어 넣은 게 수놈이었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내가 이렇게 소에 집착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작년부터 행에 온 ‘농가평가’ 때문이다. 영주인 게이머 경이 마을 농부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작년부터 각 농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는 얼마나 풍족하게 잘 꾸렸는지를 점검하고 점수를 매기기 시작하였는데, 가장 우수한 농가에는 적지 않은 상금과 상패를 하사했다. 작년 우리 마을 최우수 농가로 선정된 것은 다름 아닌 킴 씨 네였다. 나는 상금으로 세 번째 돌집을 짓는 킴 씨 네를 보며, 눈물의 고배를 마셔야했다. 나도 셋째, 아니 둘째가 갖고 싶다.... 아이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나는 킴 씨 네를 이기려면 단순히 빠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킴 씨는 다재다능한 멀티 플레이어였는데, 우물제작자이자, 부두일꾼, 잡화상인이자 자원상인까지 겸하는 만능 일꾼이었다. 나는 그를 이기기 위해선 다양한 손재주가 필요하단 걸 절감했고, 이른 봄부터 꾸준히 길드를 돌아다니며 기술을 익혀왔다. 지금의 나는 밭 농사꾼이자 농장 감독관, 가축조련사이자 도축업자, 양의 친구이자 박제사이다……. 뭔가 기묘한 조합이긴 하지만 우리 마을에선 다 허용된다.
아무튼 밭에는 곡물과 채소가 풍성하게 자라고, 화덕과 울타리도 마련하고, 돌집을 지을 수 있는 충분한 자원도 모았으니 이제 남은 일은 우리 안을 가축으로 채우고 고정적인 음식을 얻을 수 있는 ‘푸드 엔진’을 완성시키는 일뿐이었다. 악마 같은 킴 씨가 양과 돼지를 싹쓸이 해간 뒤라 이 소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했다. 잘못했다간 누렁이 한 마리뿐인, 텅텅 빈 우리로 평가를 마치게 될지도 몰랐다. 최악의 경우 가족이나 다름없는 누렁이를 화덕에 밀어넣게 될지도....
언덕을 다 오를 때까지도 킴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소 한 마리만 가져가기에는 이래저래 손해 볼 게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소 한 마리로는 새끼를 만들 수 없으니 말이다.
정상에 다다르자 언덕 위에 마련된 드넓은 우리. 그 안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암소의 모습이 보였다. 앞으로 안정적인 푸드 엔진을 마련해줄 아름다운 그녀가, 목 놓아 울며 날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매혹적인 눈꺼풀과 고혹적인 입술, 그리고 만지면 손끝에 꿀이 묻어나올 것만 같은 튼실한 장딴지.... 나는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을 차분히 내딛었다. 날 방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악마라도 나타나면 모를까....
그리고 악마가 나타났다.
“잠시만 기다리게. 곧 그 사람이 올테니.”
우리 관리인이 내 앞을 가로막았을 때만 해도 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조금도 알지 못했다. 항상 유쾌한 농담과 미소로 날 상대하던 관리인이 어째서인지 그날만큼은 표정이 어두웠다. 어쩌면 곧 나에게 닥칠 불행의 기운을 미리 감지한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숨을 고른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대체 누가 온다는 거야? 내가 먼저 왔으니까 저 소는 내꺼야.”
관리인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대꾸했다.
“그래. 네가 선이지. 그 사실은 틀림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저 소가 네 것인 건 아니야.”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먼저 온 사람이 먼저 갖는 게 최근 우리 마을에 고착된 룰 아니었단 말인가? 황당함을 느낀 내가 무어라 대꾸를 하려는데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세상을 구한 영웅이 등장했을 때나 들려올 법한 웅장한 음악소리.... 그리고 백마에 탄 킴의 모습이 언덕 아래서 나타났다.
킴은 화려하게 치장된 붉은색 프록과 귀족들이나 쓸법한 풍성한 가발을 쓰고 있었다. 그가 말에서 내려 우리 앞까지 오는 그 짧은 시간이 나에겐 백 만년만큼이나 오랜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는 딱딱하게 굳어있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어눌한 독일어로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이웃형제여. 식사는 하셨는지요?”
그는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주머니에서 흰색 수건을 꺼내더니 목에 둘렀다. 그리고는 지체 없이 관리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저 소는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물론이지요. ‘시식가’ 미스터 킴.”
시식가가 대체 무엇이냐는 내 질문에 관리인은 ‘먼저 맛보는 자’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킴이 암소를 데리고 유유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멍하니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리를 떠나며 킴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그럼. 이웃형제여. 되도록 선을 잡지 말라고 충고하겠어. 이 몸이 곧 선이고, 선이 곧 이 몸이니까.”
킴은 그렇게 떠났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모두 군침을 흘릴만한 자원이 생기거나 행동칸이 나오면 킴은 여지없이 시식가의 권한으로 먼저 그것을 ‘맛보았다’. 삼 돌도 먼저 먹고, 셋째도 먼저 낳고, 밭을 갈면서 씨를 뿌리고 빈 칸도 메우는 삼위일체 행위도 먼저 했다. 나는 현관 앞에 세워둔 ‘선’을 상징하는 노란 기둥에 기대어 앉은 채 하염없이 킴이 세상 모든 것을 싹쓸이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누렁이는 화덕에 들어간 지 오래였고, 아내와는 각 방을 쓰게 되었으며, 아들은 쓸모도 없는 울타리 장작이나 때우자며 대들다가 내가 던진 돌멩이에 맞아 진료소에 실려 갔다. 그리고 오늘도 킴 씨 집에서 터져 나오는 화목한 웃음소릴 들으며 외양간 안에서 잠이 들었다.
두고 보자, 킴. 내년엔 유모를 고용해서라도 꼭 셋째까지 낳는데 성공할 테니까. 아니, 네 왼쪽 집으로 이사를 가, 매번 ‘선’을 잡아버리고 말테니까. 같이 흙먼지 마셔가며 길바닥에서 구걸해보자고.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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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정말 찐하게 아콜 생각나게 하는 글입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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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밌게 잘 봤습니다. :)
그런데 단편이라니 많이 아쉽네요ㅠ-ㅠ -
ㅎㅎ 재밌게 봤습니다!
시식가가 시크하게 음식을 던져주는 장면이 추가되면 더 재밌을거 같아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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