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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게시판 > 서스펙트 게임 (스포 없음) 성인용 연극놀이, 빙의형 추리게임 - 서스펙트 게임: 리로드 리뷰
  • 2023-04-23 02: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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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3 안타아
사실 이전부터 <서스펙트 게임>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보통 3명이 모이던 우리는 4인 전용인 서스펙트 게임을 하기 어려웠고, 드디어 4인 팟이 된 후에도 판매가 끝난 시점이라 구할데가 없었다. 그러다 후속작 <서스펙트 게임 리로드>를 포착, 낼름 사서 해봤지.

 
중요한 건 박스를 여는 마음


성인용 연극놀이, 빙의형 추리게임


연극놀이란 게 있다. 공연으로 보는 연극 말고, 연극적 기법을 가미해 노는 건데, 이게 아주 찰진 재미가 있다. 내가 처음 연극놀이를 만났을 때 4,50대 수염 시커먼 아저씨들이 손에 손 잡고 펑퍼짐한 엉덩이를 흔들며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우리집에 왜 왔니>를 부르는 걸 보고 충격과 공포에 떨었는데, 막상 해보니 정말 즐겁더라. 어른들도 순수한 동심으로 돌아가 놀 수 있는 거구나 감탄했달까. 쪽팔림 극복과 이러고 같이 놀아줄 친구들을 다수 확보해야 한다는 중대한 진입장벽만 건넌다면 힐링마저 느끼는 경험이 가능하다.

<서스펙트 게임 리로드>(이하 서스펙트 게임)는 몸통은 추리인데, 팔다리는 연극놀이에 가깝다. 엄마 역할, 아빠 역할 나눠서 소꿉장난하던 놀이터처럼, 각자 한 사람의 역할을 맡아 내가 아닌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방식이다. 그간 해본 추리게임은 전부 협동게임들이었다. 주어진 캐릭터는 게임 내에서 써먹을 능력 차이 외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서스펙트 게임은 아예 내가 캐릭터로 빙의해 연기를 펼치며 진행한다. 이 게임 컨셉을 처음 알고 나서, <내가 캐릭터고 캐릭터가 나인, 물아일체로 빨려들어간단 말인가!> 기대에 부르르 떨었더랬다. (크라임씬 그런 거 안 봤다구) 그렇게 내게 주어진 캐릭터는.

 


아...... 게임 캐릭터가 나일순 없지. 나의 고유한 주체성을 갖고 게임에 임할 뿐, 캐릭터가 내가 될 순 없는 거지. 암.
 
 

캐릭터 설정 숙지가 게임의 절반 이상

우리가 해본 추리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드러나지 않는 정보를 함께 파헤치곤 했는데, 이 게임은 서로에게 들켜서는 안 될 비밀들이 있다. 범인은 당연히 지가 범인인 걸 들키면 안 되고, 나머지 두 사람도 야로가 있단 말이다. 자연스레 범인이 아닌 캐릭터들도 범인으로 의심 받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범인인 게 들통나더라도 나머지 두 캐릭터의 비밀을 모두 파악하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 룰이 있어서 범인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 비밀을 추리해내야 한다. 그동안의 추리게임들이 다 함께 컴퓨터게임 끝판 깨는 느낌이었다면, 서스펙트 게임은 유저와 유저가 맞붙는 본격 멀티플레이 느낌이다.

헌터맵 중간에서 우리편 테란이 사이오닉 스톰에 녹고 있는데 <잠깐 빌드 좀 읽어보고 올게요> 채팅을 날리고 여유롭게 다음 업그레이드는 뭐가 좋을지 숙고한다면, 분명 <3 si 18 no ma> 같은 정겨운 대꾸가 화면을 가득 채울 거다. 한창 연극 공연 중인데 어떤 배우가 "어, 잠깐만요, 대본 좀 보고 올게요."하고 무대 뒤로 나갔다 들어와서 머리 벅벅 긁으며 다음 대사를 친다면 관객들이 리플렛 투척으로 화답할테고. 마찬가지로 작가가 고안해둔 서스펙트 게임의 몰입을 극한으로 체험하려면 캐릭터를 사전에 충분히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게 플레이 경험에 절반 이상 영향을 미친다.

마치 대본 리딩을 위해 모인 연극배우들처럼, 각자의 시나리오를 몰래 읽으며 캐릭터를 숙지하는 거다. 이 설정집에는 자기 캐릭터가 범인인지 아닌지,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 적혀있다. 우리가 해본 다른 추리게임과 달리 이 게임은 주어진 세계관 내에서 얼마든지 구라를 칠 수 있기 때문에 서로의 추리 쾌감을 만끽하려면 충분한 캐릭터 분석이 필수다. <룰마해주던 놈이 오늘도 애써줄테니 대충 훑고, 하면서 익히자>는 식의 폐습이 서스펙트 게임까지 이어진다면 큰일난다. 내가 아니면 누가 살피랴, 기말고사 전날 벼락치기하던 심정으로 뚫어져라 읽어보자. 나는 진상이다, 나는 진상이다, 나는 진상이다...... 쿨럭.
 

 
이 캐릭터 카드를 활용해 캐릭터별 PDF 파일을 나눠주고 미리 읽어와서 만나면 더욱 좋겠더라. 우린 몰랐네만. 쩝.
 

범인을 잡는 게 아니라 사건의 실체를 파헤친다는 자세로

이 게임은 3인 전용이다. 나는 당연히 내가 범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만약 내가 범인이 아니라면 둘 중 하나가 틀림없다!! 저 녀석이 대답할 때 왠지 피식피식 웃음을 참지 못하는 걸 보니 범인인 게 틀림없다!! 어떠냐, 나의 추리가. 음하하하하하!! 대충 이렇게 흘러가면 서스펙트 게임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마피아 게임류를 하는 게 낫다. 초등학교 시험도 보기가 4개인데 찍어도 50% 확률인 범인 찾아내기가 게임의 핵심이라면 심각한 하자가 있는 거다. 이 게임의 즐거움은 누가 범인인가가 아니다. 즐거움의 반은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고, 나머지 반인 <결과>는 <사건의 전모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거다.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선 상대방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지 나름대로 파악해 서로 가설을 제기하고, 논리를 펼치고, 그걸 반박하는 동안 엎치락 뒤치락 소름 돋는 반전의 장면들이 연출된다. 물론 우리는 초보 연기자들이라서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을 때마다 웃음이 터지는 바람에 음산한 BGM을 틀어두었음에도 거의 파티게임 수준의 코믹극 분위기였지만,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결과에선 어지간한 추리 매니아가 아닌 이상 뜨헉!할 최후의 반전이 들었다. 범인을 맞춰도 이게 이렇게 된 거라고? 놀랄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다. 그건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난이도가 녹록치 않다는 얘기다. 눈알 튀어나오도록 집중했는데 결말이 틀리면 1차로 허탈한데, 사건의 실체를 내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면 2차로 한번 더 허탈해지기 쉽다. 허니, 서스펙트 게임을 하기 전에 단계별 추리게임을 밟고 접근하길 추천드린다. 한 사람이라도 <추리가 뭐야? 먹는 거야?> 눈빛을 반짝이며 뭔가 먹고 있다면, 플레이 경험이 수직으로 낙하할 가망이 크다. 우리가 해본 게임들이 몇 개 없어서 예를 들기 빈곤한데, 최소한 <셜록파일즈> 급의 간단한 추리게임은 해보고 서스펙트 게임으로 넘어오는 게 좋겠다.

 
과연 누가 범인일까?가 아니라 과연 누가 왜 어떻게 죽인 걸까? 되물으며 플레이 하자.
 

가방끈 짧은 팟의 추리게임史

가는 곳마다 살인사건이 벌어지던 소년탐정 김전일이 중년탐정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미유키는 대체 무슨 죄인가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다행히 소년탐정 때만큼 자주 등장하진 않는단다). 추리하면 보통 누가 죽었는데 밀실이라거나, 누군가 <범인은 이 안에 있어!> 외쳐야 시작되는 일련의 미스테리 풀이였다. 서스펙트 게임을 하면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추리를 해보니 캐릭터와 현실의 사람이 겹쳐서 사소한 영감을 받았다. 일상에서도 추리 능력이 무척 중요하겠다는 거. 대통령이 대체 왜 저러나, 저 자식이 과연 내게 마음이 있나 없나, 애인이 뭔가 불만인 거 같은데 말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 등등.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건의 전모를 모르겠을 때, 나는 뜻모를 추리한 기분에 휩싸였다.

 



추리게임을 처음 해본 건 <디텍티브 모던크라임>이었다. 당 떨어진다는 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체력소모가 심하더라. 안타레스 경찰서에 파견 나간 경상도 형사란 설정으로 사투리 작렬하며 사건 파일을 읽는 등 장장 20시간에 걸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이 게임 이후 우리는 한동안 추리게임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하얗게 불태운 종결미가 있었달까.

두 번째로 해본 추리게임은 <셜록파일즈>였다. 6개월 정도 쿨타임이 지나고, 좀 더 간단한 추리게임을 찾다가 평이 좋아서 샀던 기억이 난다. 요걸로 추리게임을 시작했더라면 좋았을 걸. 우린 뭐든 첫 판부터 <제일 유명한 거 해보자>는 식이라 진도가 뒤죽박죽이다. 디텍티브 때 영혼을 갈아넣는 수사를 펼치다 탈진 직전까지 갔던 멤버들은 다소 심심하다는 평을 내렸다.

세 번째로 해본 추리게임은 <디텍티브 확장: LA 크라임>. 전설의 천리안과 하이텔을 기억하는 멤버 2명은 일단 수사 시스템 접속하자마자 뜬 파란화면을 보며 감격에 젖었다. 80년대 음악이 BGM으로 흐르고 CD..과 DIR 등 도스 명령어를 입에 침 튀어가며 추억하던 우리를 20대 둘은 저게 뭔데 호들갑이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중국 갱단들의 초딩스런 네이밍 센스에 대해 웃다가 결국 범인 검거엔 실패하고 말았다.

네 번째로 해본 추리게임이 <서스펙트 게임: 리로드>다. 하나의 보드게임을 파고 들어가기보단 아직 안 해본 장르가 많은 팟이라 여행으로 친다면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아하! 하는 광역 명작 기행 중이다. 결과를 완전히 지배한 명탐정은 나오지 않았으나 과정이 무척 즐거웠다. 시종 웃음을 참지 못해 벌어지던 엉뚱한 추리들 사이, 불쑥 튀어나오는 소름 돋던 순간들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런 장르 게임이 뭐가 더 있는진 잘 모르겠는데 본판 <서스펙트 게임: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도 해보자는데 전원 의견이 일치했다. 우리 팟 멤버 중 1명이 제주도에 가 있어서 돌아오는대로.

덧. 추리게임을 하며 늘 하라는 게임 내 정보 분석은 안 하고, 작가의 의도를 추리하며 <이 정도 시점에서 이런 강한 정보가 공개된다는 건 작가가 바보 아닌 이상 얘가 범인이 아니라 떡밥이란 거다> 따위의 가설을 즐겨 구사했던 내겐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게임 밖으로 나오지 말고 세계관 내에 머물며 끝까지 달려보길 권한다. 어차피 상대방 얼굴 보면 웃음이 나긴 할테지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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