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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게시판 > [스포없음] 서스펙트게임:리로드 리뷰
  • 2023-04-22 21: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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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89

Lv.1 제뉴어리
※스포일러 없는 리뷰의 특성상, 아직 게임을 해보지 않은 '이거 구매해서 해봐도 괜찮은걸까?' 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게임의 특징을 소개해서 구매여부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소개를 해주는 방향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깊고 찐한 개인적인 후기는 스포있음 버전으로 따로 작성해볼까 합니다.


※스포일러라고 부를만한 수준의 내용은 없습니다만, 게임의 전반적인 진행 전개 스타일 및 게임 극초반 1라운드도 시작하기 전에 알 수 있는 사전정보 수준의 내용이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혹시나 그런 내용조차 조금도 알고 싶지 않으시다면 이 글을 닫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방에서 죽어있습니다.
오종탁, 실제 일어났던 범죄사건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엎드린 채 등에 많은 칼자국이 난 채로 피가 흥건해져 있네요.
옆에는 흉기로 보이는 칼도 떨어져 있습니다.

피해자의 상태로 봐서는 평범한 자살 사건은 아닙니다.
아무리 유명하다곤 하지만 일개 작가에 불과한 그가 왜 칼에 잔뜩 찔려 죽는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걸까요.
실제 범죄사건을 다루는 그의 작품이 거슬린 누군가의 범행일까요?
순간적으로 화가 난 누군가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일까요?
아니면 돈을 노린 범행? 



당신은 한예지입니다. 피해자 오종탁에게 고용된 입주 요양보호사입니다.
지난 4년간 이 집에서 피해자를 돌보며 살아왔습니다. 반쯤 그의 비서 역할을 하기도 했구요.
누구보다 피해자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가 갑자기 이렇게 죽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진상입니다. 피해자 오종탁의 첫 작품부터 함께 해온 편집자입니다.
오종탁의 새 작품 문제로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다른 약속이 잡혀있다고 해서 잠시 물러났습니다.
불과 몇시간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당신은 홍학규입니다. 부동산 건설 개발업체의 사장입니다.
피해자 오종탁과는 일면식도 없고, 그저 유명작가에게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요청이 와서 응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방문한 집에서 약속 상대가 시체가 되어있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갑자기 사람이 죽었습니다. 당장이라도 경찰을 불러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어쩐지, 세 사람 모두 경찰을 부르기를 주저합니다.


당신은 한예지가 사실 XXX XX XXXX XX XXXX 는 것을 숨겨야 합니다. 
당신은 진상이 사실 XXXX XX X XXX XX XX 이라는 것을 숨겨야 합니다.
당신은 홍학규가 사실 XXX XXX XXX XX 이라는 것을 숨겨야 합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요양보호사, 출판편집자, 방문객이고, 그들에게 닥쳐온 뜬금없는 살인사건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내심 감추고 싶은게 하나씩은 있는 상황이네요.

범인이 아닌 당신은 내가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을 잘 숨긴 채로 범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범인인 당신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범인이라는걸 들키지 않아야 합니다. 혹여나 들키게 된다면, 다른 두 사람이 감추고 있는 비밀을 찾아내서 내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덮어볼 수도 있겠네요.


이제 게임을 시작하면, 당신은 이 세 사람 중 한 명이 됩니다.





서스펙트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몰입감입니다.

캐릭터가 현재 처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한 시나리오책자로 확인하면서
'그때 넌 뭘 하고 있었냐?'
'과거에 피해자와 이런이런 일로 연관이 있었던거 아니냐'
같은 물음에도 대답해줄 수 있을 정도로 인물 지식을 습득할 수 있으며,
현장감을 잘 살려서 그려진 게임판과 단서 카드가 몰입도를 한층 더해줍니다.

누군가의 수첩을 열었더니 수첩 내용물 카드가 게임판에 펼쳐져서 조사할 수 있게 된다거나,
바닥에 있던 작은 잠긴 문을 열었더니 비밀통로가 열리면서 게임판에 직접 스티커를 붙여서 비밀통로 조사구역을 새로 추가한다던가
(실제 게임과는 상관이 없는 예시를 들었습니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조사 범위가 확장되어가는 점도 한층 몰입감을 높혀줍니다.

특히 전작에 비해 이번 작품은 단서들끼리 서로 조합해서 새로운 단서를 얻는 시스템이 생겼습니다.
작은 발전일지 몰라도 이런 부분을 통해 조사하고 있다는 느낌, 내가 사건의 퍼즐을 맞춰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더 확실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이런 서스펙트 게임의 몰입감은, 같이 즐긴 게이머들에게 보다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남깁니다.

이렇게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두 사람이 서로 같은 책을 읽어보기로 하고 일주일 뒤에 다시 만나 그 책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할 때와
같이 영화관에 들어가서 영화를 시청하고 나와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방금 본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끼어든 옆 차 때문에 사고가 날 뻔한 일을 겪은 직후.

어느 쪽에서 더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일주일이나 시간을 둔 간접체험(독서)은 그 책이 아주 즐거웠더라도 그 경험이 선뜻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거창한 독후감은 아닐지라도 요약해서 적어놔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 수도 있겠구요. 중간중간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중요 대목이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분명 간접체험이지만, 대형 스크린과 입체 음향효과, 컴컴한 조명은 몰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영화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나고 재미있게 이야기 할 수 있겠죠.

바로 지금 차사고가 날 뻔한 이야기는 너무나 분명한 직접체험입니다. 말 없이 조용히 가고 있던 중이었을 지라도 이후 사고 낼 뻔한 그 나쁜 운전자놈을 향해 함께 욕을 하며 시끌시끌 해질 수 있겠죠.


보드게임은 간접체험과 직접체험 사이에 놓여진 컨텐츠입니다.
내가 직접 농사를 짓는건 아니지만 농작물 카드를 손에 쥐고 밭에 내려놓고 키워서 팔면서 잠시나마 농부가 되어볼 수도 있겠고, 유럽지도에 철도 조형물을 놓으면서 대도시들을 연결하는 철도회사를 경영하는 체험도 해볼 수 있습니다. 작품에 따라 그 몰입도는 천차만별이겠지만요. (솔직히 티켓투라이드를 하면서 정말 철도회사 경영을 상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서스펙트 게임은 적어도 보드게임 카테고리 안에서는
역대 최고라고 생각될 정도로 직접체험에 가까워진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범인임을 들키지 않고 거짓말로 연기해야 하는 긴장감, 내가 범인이 아닌데 나에게 불리한 몇가지 증거들을 통해 범인으로 의심받을 때의 약간의 불안감. 다른 게임들(특히 마피아게임류)에서도 비슷하게 느껴볼 수 있는 감정이긴 하지만 몰입감과 거기에서 오는 감정의 크기가 확연히 다릅니다. 
특히나 내가 범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숨기고 있는 무언가를 들키지 않아야 된다는 점이 이 게임의 텐션을 유지하는 데에 엄청나게 큰 역할을 합니다. 

나에게 쏠린 의심의 눈초리를 정확한 증거와 논리적인 변호로 '난 그 시점에 도저히 범행을 저지를 수 없었다' 고 입증하면서 빠져나가고, 다른 사람에게 의심이 쏠린 사이에 안도감을 느끼며 다른 증거들을 찾고. 플레이어들 사이에 복잡한 감정이 오고가는 와중에 다른 사람이 뒤에 뭘 숨기고 있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지금 벌어진 살인사건과 전혀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혐의가 없어보이던 사람이 유력 용의자로 다시 떠오르고. 

그렇게 진행한 게임이 끝나면, 게임 중에는 서로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쏟아집니다.



'야 충무로의 별이 되었을 사람이 우리 중에 있었네. 니가 연기를 했어야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

'와 거기서 A가 그런 논리로 날 몰아붙이는데, 분명히 내가 한거 아니고 반박해야 됐는데 그걸 반박하려면 내가 숨기고 있는 이걸 일부 털어놔야된단 말야? 도저히 그걸 말하진 못하겠고 부당한 혐의로 날 몰아가는데 그거 얼마나 억울한지 아냐?'

'이 사건 범인 B였잖아. 근데 동기가 이거 맞아? 오히려 현실이라면 당연히 이런 이유의 살인도 있을 법 하긴 한데, 게임에서 이런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는게 나올줄은 몰랐어. 그래서 끝까지 얘는 아닌줄 알았지.'
(위 대화들은 전부 이번 작품 및 전작을 즐기고 친구들 사이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입니다)



생생한 직간접 경험이 가져다주는 풍부하고 반짝거리는 이야깃거리들이야 말로 서스펙트 게임이 가져다주는 큰 즐거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임판을 그대로 펼쳐놓고 다시 게임을 되짚어보면서 이야기 해도 좋고, 커피나 술 한 잔 마시면서 되는대로 떠들어봐도 좋습니다. 등장인물의 정확한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도, 사건의 일부 장면이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감정의 소용돌이를 같이 즐겼던 다른 친구가 '아 그거?' 하면서 떠올려 줄겁니다. 
그리고 게임을 했던 경험과 즐겁게 뒷풀이 했던 기억이 같이 플레이했던 친구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좋은 윤활유가 되어줄겁니다. 


게임의 유일한 단점은 둘도 아니고 넷도 아니고 정확하게 셋이 모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전작이 셋도 아니고 다섯도 아닌 정확하게 넷이 모여야 했던 게임이라는걸 생각하면 전작을 같이 즐겼던 친구들이 있다면 그 중에 한명을 빼고 셋이 해야한다는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 역시 전작 플레이어 네명이 모두 신작도 해보고 싶다고 해서 굉장히 고민했었습니다. 한명이 너무 바빠서 못 오는 바람에 무사히 셋이서 즐겼지만요.



마지막으로 이 게임을 앞으로 즐기실 분을 위한 몇가지 조언을 드리며 마무리할까 합니다.

제약이 없는 편안한 장소를 잡으세요. 제가 가장 추천하는건 일행 누군가의 집입니다.
제 경험상 3시간 정도는 시간여유를 잡아놔야 게임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할 수 있습니다. 편안한 자세를 잡을 수 있는 공간과 뇌에 연료가 될 간식거리도 준비해두면 좋겠구요. 한번 즐기면 더 이상 즐기지 못하는 레거시 방식의 게임이 이럴 때에는 좋죠. 과자 같은 간식을 집어먹으면서 해도 게임 구성품에 묻는걸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게임 중에도 의견을 많이 나누세요.
'라운드 시작합니다. 누구부터였죠? 네 다음. 네 다음. 뭐 조사했는지 한번씩 말씀해보시겠어요. 아 예 잘 들었구요. (정적) 그럼 다음 라운드 가겠습니다'
이렇게 해버리면 15라운드고 뭐고 순식간에 날아가 버립니다. 조사한 단서 발표한 후 다음 라운드 시작 전까지 그냥 얘기하세요. 막 물어보세요. 게임에 관련된 거라면 뭐든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라운드에 조사한거랑은 좀 동떨어진 내용이긴 한데, 너 사건이 일어났던 시간에 어디서 뭐 하고 있었다고 했지?'
'야 내가 생각한거 한번 들어봐. 이 사건 이렇게 저렇게 해서 벌어진 일인거 같은데, 혹시 내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 있을까? 뭐? 피해자가 그 시간에 거기 없었다고? 내가 잘못 봤었나? 아님 누가 거짓말을 했나?' 
많은 얘기가 오고갈 수록 좋습니다. 그 와중에 범인 플레이어의 거짓말/무언가 숨기고 싶은 다른 플레이어의 거짓말이 섞여들어가면 방향이 산으로 가고 나중에 헛다리를 짚을 수도 있겠지만, 뭐 어떤가요. 그거 즐기자고 하는 게임 아니겠습니까. 


너무 동기 하나 / 물증 하나에 집착해서 거기에만 매달리지 마세요.
이번 작품을 포함, 전작까지 다섯개의 시나리오에서, 이 사람에겐 동기가 없을거 같다 싶은 캐릭터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동기를 가지고 범인이었던 적도 있었고,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나 싶은 사건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세요.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사실, 완벽한 물증이 나왔을 때에만 거기에 해당하는 부분만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라고 판단하는게 좋을거 같습니다. 범인 외에 다른 사람들도 숨기고 있기 때문에 뭔가 하나 찾았다고 그게 범인의 단서라고 단정지어버리면 나중에 완전히 헛다리 짚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제 경험담입니다.




이 게임은 보드게임 매니아에게 무조건 해보시라고 권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보드게임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인다는 이유로, 보난자나 티켓 투 라이드 같은 게임을 즐겼던 분들에게 이 게임을 내민다면 꽤 당혹스러워 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오히려 보드게임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추리/미스터리물이나 수사물, 범죄스릴러 또는 비슷한 장르의 소설이나 드라마를 선호하는 분에게 더 적합할 게임입니다.

그런 느낌적인 느낌을 가진 사람을 자신 외에 둘 정도 더 모을 수 있다면, 함께 그들과 게임을 즐길 장소를 구할 수 있는 분이라면.

사세요.

이 게임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을 수 있어도 게임값 2만5천원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정도의 즐거움은 줄 수 있을겁니다. 오래 고민할 필요 있을까요. 치킨 한 마리일 뿐인데.



PS.
전작 '서스펙트 게임: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 를 하고 난 후 저는 제발 다음 작품이 나오길 바랐습니다.
이번 '서스펙트 게임:리로디드' 를 하고 난 후 저는 더 이상 다음 작품에 대해 그렇게 간절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번 작품이 너무 만족스러운 작품이었고, 이 정도라면 차기 작품도 때 되면 당연히 나와 줄 것임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오는거 맞죠? 느긋하게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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