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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아지트 게임 모임 후기 - 십자군의 이름으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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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8 09: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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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2 Equinox
5. 십자군의 이름으로
개인적으로 전쟁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교육기관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고, 역사를 읽어내는 코드로 전쟁만큼 흥미로운 것도 드물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따지고 보면 보드게임에 제가 심취하는 건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게임들이 많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네요. 어쨌거나 전쟁, 그것도 역사 속 전쟁을 게임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제겐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박스 모습
십자군의 이름으로(Im Zeichen des Krenzes)라는 게임은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에서 많은
활약(?)을 했던 5명의 영주(군주)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 이슬람에 정복된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살라딘을 주인공으로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 다소 아쉽기는 해도 오직 “기독교 만세”만을 외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그 아쉬움은 상쇄될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일반적인 전쟁 게임의 경우 적과 아군으로 나뉘어 서로 상대해야 하는 구도를 취하고 있지만, 이 게임은 참가자 모두 십자군의 일원이 되어 예루살렘
회복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향해 가기 때문에 얼핏 보기엔 “기독교 만세”의 협동게임처럼 보여집니다. 하지만, 실제 게임을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게임의 매력입니다.
전사(戰史)적 관점에서 보면, 십자군 전쟁은 명분과 실제 목적이 다른 대표적인 전쟁으로 손꼽힙니다. 교황이 성지 회복을 외쳤고, 많은 기사와
영주들이 이에 호응하여 군대를 일으켰지만, 실제 목적은, 당시 막대한 부의 원천인 동방에서 한 몫 챙겨보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탐욕스런 동기였던
것이지요. 많은 전쟁들이 명분과 실제 목적이 다르지만, 이 십자군 전쟁에서 특히 두드러졌던 이유는, 적(敵)이었던 이슬람 군대가 십자군의
계산보다 훨씬 막강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십자군이 승승장구했더라면, 그들의 탐욕은 패자에게서 취한 전리품이 채워주었을 것이기 때문에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슬람 군대는 강했고, 따라서 그들의 명분만으로는 진짜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에 십자군은 돌변합니다. 약탈자로
말이지요.
이 게임은 바로 십자군의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기독교 세력의 해방군과 탐욕스런 약탈자의 모습을 둘 다 살렸다고나
할까요.
전투 결과를 만들어내는 전투타워
아울러 전쟁에서 작용하는 우연성과 우발성을 전투타워라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주사위 시스템보다 조금은
더 실제 전쟁적인 요소를 잘 구현한 것 같습니다. 설명서에서 “석방된 포로”라는 설명을 읽었을 땐 무릎을 탁 쳤을 정도니까요.
전술(前述)한 바 있는 베네치아라는 게임은 이 게임의 디자이너인 로날트 호프슈태터입니다. 게임이 좋으니, 디자이너를 기억하게 되었고, 그 결과
묻혀있던 또 다른 게임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이 게임이 얼마나 제게 마음에 와 닿았는지 아시겠지요? ^^;
개인 야영지와 요약표
사실 개인적으로 꽤나 공을 들이기도 했습니다. 제목부터 느낌이 나지만, 이거 독어판입니다. 독어판 게임이 하나 둘이겠냐마는, 각종 글귀가
난무하는 카드와 요약표 등은 이 게임을 손에 넣고도 오랫동안 처박아 둘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지요. 암튼 우여곡절 끝에 한글화 자료와
설명서를 입수했지만(비X 스X블님 땡큐~), 설명서가 독어 설명서의 글씨만을 한글로 번역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심지어는 그림의 풍선속에
들어있는 글씨까지도 별다른 표시 없이 국어만 적혀있음), 다른 설명서에 비해 선뜻 손이 안 가더군요.(만드신 분(누군지 아직 모름. -_-;)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고맙지만서도….) 어쨌거나 모임을 갖기로 마음 먹었고, 모임에서 돌리겠다고 마음 먹은 다음에야 손을 댔기 때문에 짧은 시간,
많은 수고를 들이게 되었습니다. 카드도 한글화 시켰고, 설명서도 원문 설명서랑 나란히 놓고 그림과 대조해가면서 해독(!) 작업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긱에 올라와 있던 영문 요약표를 짧은 컴퓨터 실력으로 한글화시켰다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다고 할까요. 험험~
어쨌든 게임은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유럽대륙의 지도가 중세분위기로 그려진 게임 판에 십자군 표식 5개가 올라가고, 도시 표식이 올라갑니다. 도시 표식은 이슬람 도시와 기독교
도시로 나뉘고, 표식 뒤에는 약탈 시 얻게 되는 보물의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는 이슬람 군이 무려 15개나 올라와있습니다.
십자군이 출정할 때 대부분 3~5개의 부대만을 거느리기 때문에 15개 부대는 결코 적은 부대가 아니지요. (게다가 게임 진행하면서 예루살렘에는
이슬람군이 계속 증원됩니다.)
십자군들은 게임 판에 그려진 지형과 같은 지형카드를 통해 부대를 이동시키고, 적을 만나면 전투를 합니다. 그리고 도시에서 이동을 멈추면
도시에서의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 도시는 오직 약탈의 대상이며, 기독교 도시에서는 세 가지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부대의 사기를
올려주는 기도, 부대원을 증원하는 군대 모집, 그리고… 약!탈!
십자군이 기독교 도시를 약탈하는 이 설정이야 말로 십자군의 성격을 잘 살린 겁니다. 그런데, 이 약탈은 도저히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도저히 기독교 도시를 약탈할 수 없어~!”라고 외치며 오직 예루살렘만을 향해서 돌진하는 사람은, 막강한
이슬람군에 치여서 패배의 쓴 잔을 들이켜야 합니다. 부대는 부족하고, 부대를 모을 수 있는 보물도 부족하고, 이슬람 도시는 기독교 도시에 비해
거리도 멀고 방어력도 높습니다. 어쩝니까? 만만한 기독교 도시를 털어야죠. 그래도 십자군에게 양심은 있어서, 기독교 도시에 대한 약탈은
성공/실패 여부를 묻지 않고 사기치 -3을 초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탈은 매력적이니, 기가 막히게 잘 구현된 게임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적은 이슬람군만이 아닙니다. 수시로 해적과 이슬람군을 내 쪽으로 몰아주는 것도 모자라, 아예 직접적인 방해를 일삼는 다른 십자군들 또한
잠재적 적군입니다. 게다가 예루살렘을 먼저 공격하는 쪽에게 교황이 화끈한 보너스까지 얹어주니까, 약간의 레이싱적 요소까지 담고 있다고나 할까요?
어쨌거나 5명 모두 처음 하게 된 이 게임은, 본 후기만큼이나 장황한 본인의 설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상황과 진행을 참가자별로 요약해보면,
삑사리님 – 프랑스 일대에서 출정하여, 보무도 당당하게 이베리아 반도를 향해 나아갔으나, 다른 십자군의 방해공작으로 그라나다
일대에서 활동중인 이슬람군과 격돌하여 장렬히 패배. 곧, 군대 수 0의 비극이 찾아왔으나, 액션카드의 도움으로 다른 십자군들로부터 2개 부대씩
갈취(!)하게 되었음. 갑자기 8개 부대로 증원되자 오기가 발동하여 이슬람군에게 맹렬히 달려들었으나, 약 5회의 전투 가운데 이긴 것은 단
한번. 바로 군대 수 0의 상황으로 몰림. 잦은 패전으로 사기치는 바닥을 치고, 낮은 사기치는 카드의 재보급에 제약을 주기 때문에 후속
행동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 이후 그는 이베리아 반도를 한동안 전전하다가 간신히 재기하여 북아프리카 일부로 나아갔음. 하지만, 게임 시간의 약
80% 가량을 혼자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고군분투한 덕분에 “이베리아 반도의 해방자”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게 됨. (게임의
목적지를 망각한 것이 아니냐는 핀잔도 더불어….)
삑사리 부인님 – 남부 독일에서 출정, 착실한 약탈로 순식간에 보물 상자의 숲에 파묻힘.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더 이상 동원이
불가능할 정도의 부대를 동원했고, 다른 십자군들의 활약이 지지부진한 틈을 타, 예루살렘을 단 두 번의 공격만으로 격파함. 이를 견재 가능했던
유이한 두 사람이 서로 견재하느라 바쁜 틈을 탔다는 설이 유력함.
제 연인 – 가장 먼 영국에서 출정, 기나긴 원정거리를 착실하게 밟아나갔으나, 삑사리님의 의외의 카드 플레이로 콘스탄티노플에 발이
잠깐 묶였음. (자신은 이베리아 반도에 있으면서 콘스탄티노플을 봉쇄할 건 뭐람? ^^;) 잠깐의 주춤함이 있었으나 이내 콘스탄티노플 약탈로 봉쇄
돌파. 예루살렘 공략조건인 이슬람 도시 1개 정복을 달성코자 흑해를 건넜으나, 본인과 거만이님의 태클로 멀리 알렉산드리아까지 건너감. (본인이
한 발 앞서 타르수스를 공략했고, 거만이님은 안티오키아와 트리폴리스에 각각 이슬람군 3개 부대씩을 증원시켰음) 겨우 예루살렘 공략조건이 충족되자
게임이 끝나버림. 이동거리만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장거리 지그재그 행군을 기록.
거만이님 – 목적지와 가장 가까운 이탈리아 반도에서 출정하여 가볍게 지중해를 건너 크레타섬까지 상륙. 최초로 예루살렘을 공략하며
게임을 끝내는가 싶었는데, 본인의 치열한 방해공작으로 크레타섬에 갇히게 됨. 참고로 크레타섬은 기본 규칙에서는 약탈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물
획득과 병력 증원을 위해서는 유럽 본토로 건너가야 함.) 이후, “내 목적? 보물이야! 예루살렘 따윈 관심없어. 교황이 주는 보너스 때문에
잠깐 들렀을 뿐. 이제 고향으로 갈거야~.”를 외치며 크레타섬에 정착함. 게임 시간의 약 6~70%를 크레타섬에 머물면서 오직 본인에게
태클 거는 것에 집중하였다고 함.
본인 – 북부 독일에서 출정하여, [기도 후 약탈]이라는 십자군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며 차근차근 전진. 기독교
도시를 무려 3개나 약탈하면서 한 때 최고의 부와 무력을 손에 넣었으나, 예루살렘을 향해 쾌속 전진하는 거만이님의 꼴을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해적과 약탈 콤보로 치명적인 태클을 걸어주었음. 이에 그치지 않고, 이베리아 반도와 마르세이유 근교에서 분투중이신 삑사리님 내외께
해적과 이슬람군을 살포시 얹어드리는 바람에, 공공의 적이 되어 아테네 근교에서 떠돌게 됨. 막강한 부대를 거느리고도 변변한 전투 몇 번 못
치르고 게임을 끝내야 했던 비운의 십자군이었다 함.
게임은 협력게임이 될 거라는 통상의 상식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형태로 흘러갔습니다. 특히 예루살렘 코 앞에서 흑해 깊숙한 곳까지 본인을 유배시킨
거만이님과, 이에 사기치를 1로 만들어버리는 회심의 반격으로 맞대응을 가한 본인의 치열한 상호 태클은 게임 내내 십자군의 참모습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해주는 듯 했지요. (물론 제 공격은 [신의 손]이라는 카드로 허사가 되었습니다. 상대의 태클을 대비해 치밀하게 대비를 하고
계셨다고 하지요. 그런데 그럼 뭐합니까? 크레타 섬에서 나오질 못하는 걸…. 푸훗~)
전투 타워의 내부
박스 크기(퀸 게임즈 라인업 가운데 가장 큽니다.)가 말해주듯 장대한 스케일의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구조는 매우 쉽고, 진행 속도도
빨랐습니다. 게임 설명을 포함해서 2시간 남짓한 진행시간으로 마음껏 웃으며 즐길 수 있었지요. 특히 전투 타워의 의외성에 모두들 울고 웃고
난리를 쳤습니다. 적을 2개 부대 넣었는데 6개가 나왔을 때는 당사자 한 명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박장대소했다지요.
십자군 전쟁이라는 장대한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느라 다소 기력을 소모한 멤버들은 기력 재충전을 위해 식탁으로 자리를 잠시 옮겼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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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본 후기들중에..
정성이 엄청나군요..
미리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을 정도로.. = )
Im Zeichen des Kreuzes 을 플레이 해보시다니..
부럽습니다..
참.. 베켓님에게 죄송하게 받았던 스톡 & 본즈를 최근에야 플레이 해보았는데..
매우 심플~ 한 주식 게임이더군요..
언제 한번 후기라도 올려야 할탠데..
요즘은 짬이 않나네요..
하여튼..
멋진 후기 감사 드리고..
언제 한번 스톡 & 본즈 같이 즐기실 수 있기를.. -
죄송하긴요. 제게 있었다면 아마 세상 빛 보기 어려웠을텐데, Ryu님께 들어가서 돌아갈 수 있었다면, 값어치 있게 된 것이죠.
이름에 오타가 있군요. 관사가 빠지고 칼을 T로 인식하고 말이죠.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조쉬 베켓님,,, 잘 보았습니다...
혹시 십자군의 이름으로 한글화 자료 공유해 주시면 안될까요?^^
저도 언어의 압박에 한번도 플레이 못했습니다..^^
eddyd@hanmail.net -
메뉴얼 읽고 쉬워서 아무때나 돌려야지 하고 쳐밖아 놓았던 것이 후회되는 후기이군요.;;
빨리 한글화 자료나 자료실에 올려주셔요. :) -
저도 매뉴얼 다해석해서 자폐놀이 두번이나 하면서 룰을 다 익히긴 했는데.. 결국 다른 사람들과는 못해보고 처박혀 놓고 있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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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켓킹님의 게임 사랑 대단하십니다 ~*
^0^ -
제가 만든 한글화는 아직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공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질문 게시판에 올렸는데, 카드 제한이 있는 사기치가 정확히 몇부터인지 애매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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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이하면 예루살렘 공략불가, 3이하면 카드두장뽑기, 1이하면 한장뽑기인걸로 아는데요.. ^^: 독어라도 대충 해석이 가능한데, 개인 보드판도 그렇게 되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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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럼 한글화 요약판을 제대로 만들었군요. 저도 그렇게 이해했었는데, 한글 설명서의 말들이 좀 애매했었거든요.
안선생님 파일 어제 보내드렸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시네요. 혹시 안 도착했나요?(메일을 믿을 수가 없어서리.. 쩝~) -
아..스팸메일로 왔군요..
확인했습니다..그 파일은 있던건데..ㅠㅠ
빨리 공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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