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제목 Rattus는 쥐를 뜻합니다. 박스 표지 그림에서 보듯이, 아이들 만화에 나오는 예쁜 생쥐가 아닌 커다랗고 징그러운 시궁쥐가 이 게임의 주인공입니다.

1347년, 아시아 내륙의 페스트(흑사병)가 유럽으로 전파됩니다. 페스트는 시궁쥐를 매개로하여 순식간에 유럽 전역을 강타합니다. 수년 동안 페스트는 유럽 인구의 80%를 증발시켰고 정치, 경제, 전쟁 등 사회 각 분야의 기존 체제마저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이 게임 Rattus에서 우리는, 페스트를 전파하는 쥐떼를 피해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애를 쓰게 됩니다.

게임의 주인공은, 각 플레이어들이 맡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큐브), 한쪽면에 페스트의 발병 조건이 그려진 쥐, 그리고 현재 페스트가 발발하고 있는 지역을 뜻하는 검은 페스트 말, 이렇게 셋 입니다. 이들이 엮어나가는 이야기, 전체 룰은 매우 간단합니다:
매 턴 우리는 유럽의 각 지방 중 그나마 페스트의 손길로부터 안전해 보이는 지방에 사람들을 추가합니다. 그리고 나선 페스트 말을 움직여 발병 지역을 옮기고 인접 지역에 쥐떼를 뿌립니다. 페스트를 보균한 쥐떼가 퍼져 나가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페스트 발병 지역에 사람과 쥐가 같이 있다면 쥐마커를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뒤집어 사람들을 죽여나갑니다. 해당 지역의 모든 사람이 죽든, 모든 쥐가 사라지든 – 아니면 둘 다 없어지든 – 할 때까지요.
이 간단한 기본 시스템에 한가지 추가 장치가 붙습니다. 플레이를 도와주는 6가지 직업이지요.







농부는 인구를 늘려줍니다. 보드 위에 올리는 큐브의 수를 늘려주지요.
수도승은 쥐를 쫓아냅니다. 보드 위의 쥐 토큰을 인접 지역으로 옮기지요.
상인은 돈을 풀어 사람들을 이주 시킵니다. 보드 위의 큐브를 인접 지역으로 옮기지요.
마녀도 마법을 부려 사람들을 도웁니다. 쥐 토큰 두 개를 보고 바꿔 놓을 수 있습니다.
왕은 안전지대에서 사람들을 구합니다. 큐브를 안전한 왕궁으로 피신 시키지요.
이에 반해 기사-군대-는 페스트를 퍼트립니다. 결과적으로 다른 플레이어의 큐브를 더 많이 제거하게 돕지요.

묘한 것은 이 직업타일은 누가 갖고 있더라도 조건없이 가져와 사용할 수 있는 반면, 갖고 있는 카드를 다른 사람에게 줄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게임을 하다보면 한 사람이 몇 장의 타일을 갖고 있거나 몇 몇 플레이어는 타일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플레이 하기도 합니다. 이럴 수 있는 이유는 타일이 플레이어에게 위의 혜택뿐 아니라 다른 안좋은 점도 같이 주기 때문이지요. 이는 바로, 카드를 많이 갖고 있을 수록 자신의 큐브가 페스트 발병 지역에서 죽어나갈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페스트가 발병하여 쥐 마커를 뒤집으면 윗 그림과 같은 숫자와 심볼이 나옵니다. 숫자는 페스트 발병 조건으로 해당 지역에 있는 큐브의 총 수가 이보다 크면 아래 심볼들에 의해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아래 심볼들은 각각의 직업 타일을 상징하고 해당 지역에 있는 큐브의 주인이 그 직업 타일들을 사용하고 있다면 큐브 하나를 잃게 됩니다. M(Majority, 다수 큐브 제거), A(All, 모든 큐브 제거)는 타일을 아예 안받고 플레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옵션들 입니다.
곧, 타일을 많이 갖고 있으면 갖고 있는 모든 카드들의 잇점을 다 받지만, 거꾸로 페스트 발병지역에서 큐브가 죽어나갈 확률이 그만큼 커지게 됩니다. 특히나 일단 한 번 손에 든 카드는 다른 플레이어가 갖고 가기 전에는 내 앞에서 계속 효력을 발하고 있기에, 어느 타이밍에 어떤 카드를 가져올 지, 아니면 그대로 타일없이 진행하는 것이 나은지를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개괄적인 설명에서 쉽게 드러나듯, 이 게임은 순수 영향력 게임입니다. 그리고 전략게임 치고는 비교적 가벼운 게임으로, 몇몇 고전 영향력 게임처럼 한 수에 수십 가지의 경우의 수를 예측해야 하는 강도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테마를 즐기며 떠들 수 있는 가족게임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게임은 필요한 미덕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깔끔하고 간결한 룰에, 소요시간은 적고 게임의 진입장벽은 낮으며, 초보자와 숙련자 사이의 실력 차이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장점을요.

한때 영향력 게임이라는 장르는 꽤나 인기있는 분야였으나 근년들어 다양한 게임 시스템이 개발되며 순수 영향력 게임은 거의 자취를 감춰가는 듯 합니다. 이 게임 Rattus는 오랜만에 등장한 정통 영향력 게임으로, 이 장르의 올드팬들에게는 옛 향취를 느끼게 해주고, 생소한 게이머들에게는 가벼운 마음으로 영향력 게임이란 장르의 맛을 보게 해줄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