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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2-13 10:46:16

  • 0

  • 1,314

Anno Domini 3114 (제국력 27년), 마흐넬 추는 한 명의 비서와 함께 회의장에 들어섰다. '식민지 부흥 원조기금', 건물 곳곳에 쓰여진 그 이름을 볼 때마다 그는 목깃이 목을 죄여오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이제는 정말 지구의 간섭이 필요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그는 문득 '추'라는 자신의 성에 생각이 미쳤다. 이것도 지구의 잔해. 남들은 자신을 보고 중국계라고 하지만, 중국은 어디인가. 황량한 사막이 끝없이 이어지는 '옛 지구'의 위성사진을 보아도 그는 어디가 중국인지, 무엇이 중국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이 미쳐 끝나기도 전에 회의실에 도착했다. 문이 열려있는 회의실엔 두 사람이 미리 와 있었다. 비서가 그의 귓가로 슬며시 다가왔지만 그는 손을 들어 필요 없다는 제스처를 보여주었다.

'보기만 해도 알겠군.'

다리를 꼬고 앉아 신경질 적으로 허공과 다른 사람들은 번갈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최근 태양이 초신성폭발의 징후를 보여 최근 '최후를 맞은 세계'로 불리게 된 '파에톤-831'의 대표인 마르보레 영. 그리고 비스듬히 맞은 편에 앉아 말 없이 천천히 이쪽 저쪽으로 눈을 굴리며 앉아있는 것이 엡실론 에리다니의 대표 맥스웰 앤더슨. 이렇게 만나는 것은 처음이지만 알고 있는 얼굴들이다.

마흐넬은 조용히 '에테르-73'이라고 적힌 자리에 앉았다. '에테르-73', 속칭 '잊혀진 식민지'. 다른 행성들에 비교해서 제법 큰 규모의 경제를 가지고 있고, 이곳에서 생산된 제품은 성간 이동을 통해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잊혀진 식민지' 취급이다. 하지만 그런 점은 지금은 참고 넘어갈 수 있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니까.'

조용히 심호흡을 하는 찰나 두 사람이 들어온다. 한 명은 나이가 많은 지구인, 한 명은 렙틸리아인인가 하고 쳐다보았지만 본 적 없는 인종이다. 렙틸리안을 생각나게 하는 피부와 긴 얼굴이지만 다부진 몸에 체격도 인간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더 크다. 이족보행을 하는 다리는 역관절로 꺾여있고 옷은 전혀 걸치지 않았다.

'요즘 화제인 어비소브라툴라의 고대종족이로군'

인간 쪽은 그가 어릴 때 부터 알파 센타우리의 대표였던 남자다. 둘은 회의실에 들어오자 가벼운 눈 인사를 주고 받고는 다른 자리에 가서 앉는다. 이제 더 이상 회의실에 빈 의자는 없다. 지구인의 비율이 굉장히 높다. 곧이어 들어온 '식민지 부흥 원조기금'의 의장도 지구인이다.

"지금부터 식민지 자치를 위한 자원 배분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의장은 모인 사람들을 눈으로 한 번 휙 훑고는 계속 했다.

"다른 자원도 그렇지만 우리에겐 시간도 굉장히 한정적입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여기까지. 그럼, 보고서를 제출해주십시오."

거만한 표정으로 얘기하는 의장을 보면서 마흐넬은 속으로 짜증을 냈다. 그리고 비서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보고서 내용은 어제와 같은가."
"네, 솔리테어-1181 행성으로 새로운 정착민들을 이주시키는 것이 현재의 우선과제입니다."

비서의 말을 듣고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의장의 단말기로 보고서를 보냈다. 의장의 눈이 동시에 다섯개의 보고서를 읽으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잠시 뒤 갑작스레 눈의 움직임이 멈추고 처음보다 더 시큰둥한 표정으로 의장이 말했다.

"보고서 검토결과, 제 고견은... 올해는 가치있는 자원을 찾을 수 없을 것으로 사려되는 바. 외우주 탐색에 자원을 일절 배분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이 시간 이후 성계연방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탐사 목적으로 이용되는 모든 성간 이동은 성간 이동기술 남용 방지와 희귀원소 낭비 방지 정책에 의해 제제가 있을 예정이니 이 점을 유의 하십시오. 이외에도 성계 연방정부는 식민지에 거주중인 모든 인류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새로운 연구개발에 자원을 투자 할 예정입니다."

조삼모사로군. 마흐넬은 생각했다. 식민지의 자치를 보장하고 그것을 지원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이전보다 더 엄격하게 식민지의 행동을 제제하고 있다.

"새로운 행성으로의 정착민 이주는 본 정부에서 이전부터 장려하고 있었지만, 올해에는 특히 크게 장려될 것입니다. 또한, 식민지 자치 정부의 경제활동을 돕고 과도한 생산으로 인한 가격 붕괴를 막기 위해 연방정부에서는 특정 품목의 생산품을 시중가에 우선적으로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당해 연도에 만일 행성의 소비능력을 초과하는 상품이 과도하게 생산된 식민지는 역시 희귀원소 낭비방지 정책에 의거 처벌받게 될 것입니다."

의장은 다시 대표들을 졸린듯한 눈으로 휙 훑어보고는 말했다.

"다른 의견이 없으실 듯 하니 이번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혼자 휘적 휘적 걸어나갔다. 마흐넬은 관자놀이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비행정으로 걸음을 옮기며 비서에게 말했다.

"진행하려 했던 탐사계획들은."
"다음 달 부터 두 개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취소로 인한 우리쪽 피해는."
"약 3천만 스텔라입니다만, 이후 파라이바-71 행성의 이주민 정착등의 대안들이 있으니 이후 예상할 수 있는 피해는 적습니다."
"모든 탐험계획을 연기한다. 기술개발은."
"계획된 바는 없습니다만, 현재 적자지출 연구 안을 보고 받은 상태입니다."
"필요 없어, 그 연구는 파기 해. 현재 이용할 수 있는 누적상품은?"
"현재 누적되어 있는 물량은 없습니다."
"연방놈들이 금지시켜버린 탐험, 초과 생산 계획은 전부 백지화 시키고, 연구와 소비촉진도 포기한다."
"네."
"행성의 모든 자원을 솔리테어로의 이주민 정착에 집중한다. 현재 연방정부에서 이주계획에 지원하는 자금도 최대한으로 끌어 와야 해."
"네."
"이쪽 이주계획 자금을 노리는 다른 세력은?"
"엡실론 에리다니 뿐입니다."
"에리다니 녀석들의 호전적인 점은 주의하면서 정착계획을 진행해 나가도록."

비행정에 탑승한 마흐넬은 목깃이 목을 조여오는 것 같은 기분에서는 벗어났으나 여전히 목줄에선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는 꺼림직한 느낌을 받으며 그의 고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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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갤 A.I.를 하다가 생각이 나서 적어본 글입니다.
몇달전에 갈겨쓰고 손보지 않은 물건이라 지금 읽어보면 좀 창피한 부분도 제법 있네요.
올려둘 곳이 없어서 왔다갔다 하다가 분실하기 전에 한 번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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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2012-12-13 12:25:19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이 궁금해지네요!
    • Lv.1 바닥군
    • 2012-12-13 12:40:32

    아 이런 필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 Lv.1 양쌤
    • 2012-12-13 16:52:00

    이거슨... 그냥 끄적거린 수준이 아니라 출판용 초본?!!!
    • Lv.24 카린
    • 2012-12-13 18:14:24

    직업이 공상과학 소설가 세요?....그냥 놀라운 필력이네요..
    소설로 나오면 반드시 구입해 보겠습니다.
    너무 재미있네요..당기는 맛이 있는 필력입니다.
    • 2012-12-14 02:55:27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른 일이 있어서 2월까지는 이런 글은 쓰기가 힘들겠네요.....
    저는 글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는 않고 그냥 아직 졸업 못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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