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커뮤니티 > 모임게시판 세레니시마 2nd
  • 2013-03-11 21:55:48

  • 0

  • 1,619

Lv.1 메모선장

세레니시마는 도미니끄 에르아르의 1996년작인데, 이번에 박스 사이즈와 턴 순서 등 여러가지를 일신하여 새로 재판되었습니다. 도미니끄 에르아르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디자이너인데, 콘도티어, 일리아드, 마라케슈 등을 디자인한 분이더군요.
이전 버전은 해보지 못했는데, 재판된 버전은 무엇보다 박스 사이즈가 적당해진 것이 마음에 들어 구매해서 해보니 매우 훌륭했습니다. 대항해시대보다 약간 이전인 14세기의 지중해에서 벌어지는 무역을 다루고 있는 게임으로, 잔룰이 좀 있긴 하지만 모두 합리적인 규칙이라 이해하는데는 별 무리가 없었습니다(까먹는 것은 좀 있었지만).
플레이어들은 각자 지중해의 항구 하나씩을 거점으로 잡고 갤리선 두 척을 가지고 시작하는데, 턴을 진행하는 방식이 매우 신선했습니다. 갤리선 하나하나에 각각의 고유번호가 있고, 보드 한쪽에 이 번호들이 기입된 바퀴가 있어서 마커가 시계방향으로 진행하며 도착한 번호의 갤리선이 행동을 하는 방식입니다. 플레이어가 턴을 받는다기보다는 배가 턴을 받는 셈이죠.
자기가 가진 갤리선이 움직일 차례가 되면 플레이어는 갤리를 움직이거나, 아니면 투자 액션을 할 수 있습니다. 투자 액션은 자기가 소유한 항구에 선원을 고용해 두거나, 배를 사거나, 아니면 요새 또는 대성당을 짓는 관리 액션이고, 주로 하게 되는 갤리 액션은 선적-이동-판매 혹은 전투로 이루어집니다. 선적은 정박한 항구에서 생산하는 상품을 구매해서 싣거나, 아니면 항구에 있는 선원들을 싣는 액션인데, 상품의 가격 체계는 굉장히 심플해서, 종류를 가리지 않고 자기항구에서 산다면 1개는 무료, 이후 개당 1 더컷이고, 중립 항구나 남의 항구에서 산다면 1개당 1더컷을 은행이나 소유주에게 지불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동을 할 수 있는데, 이동 체계도 지극히 합리적입니다. 타고 있는 선원의 숫자만큼의 칸만 이동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도착한 항구에서 그 항구가 생산하거나 그 항구 창고에 없는 상품을 팔면 되는데, 이때는 항구의 창고의 가장 낮은 숫자칸에 상품을 놓으면서, 그만큼의 돈을 은행에서 받으면 됩니다(단, 자기 항구에서는 돈을 못 받습니다).
판매 대신 전투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일단 이동 중이나 혹은 판매를 하려고 할 때 그 칸에 자신의 배에 탄 선원보다 많은 선원을 보유한 플레이어가 봉쇄를 선언할 수 있습니다. 봉쇄를 당하면 그 자리에서 턴을 끝내거나 전투를 해야 하는 것이죠. 전투 역시 기본은 굉장히 간단합니다. 양쪽이 전투력만큼의 주사위를 동시에 굴리는데, 전투력은 선원의 숫자에서 그 턴에 이동한 칸의 수를 빼면 됩니다. 즉 봉쇄를 선언한 쪽은 선원의 숫자가 곧 전투력인 셈이죠. 이때 굴리는 주사위는 6면체긴 하지만 해골은 3면에 그려져 있습니다. 확률은 딱 반인 셈이죠. 그렇게 전투해서 해골의 개수만큼 선원을 죽이고, 생존한 쪽은 당연히 상대의 배에 있던 상품을 약탈할 수도 있습니다. 항구를 빼앗기 위해 항구와 전투를 벌일 수도 있는데, 이때도 마찬가지로 항구의 선원들을 모두 죽이고, 텅 빈 항구에 자기 선원을 내려 점령하면 됩니다.
바퀴에서 마커가 한 바퀴를 돌면 한 라운드(매뉴얼에는 턴으로 표기)가 끝나는데, 이때 총독 카드를 펼쳐 나온 모래시계만큼 턴 마커를 진행합니다. 보통 1칸이나 2칸을 진행하는데, 포도가 그려진 카드도 있어서, 이게 공개되면 와인을 생산하거나 저장중인 항구의 소유자는 3 더컷을 받습니다. 그리고 화살표가 그려진 카드가 나오면 카드들을 섞어서 다시 사용하면 됩니다.
턴 마커가 점수 계산 칸에 멈추거나 칸을 지나가면 점수 계산을 하는데, 보유중인 항구의 창고가 얼마나 차 있는가에 따라 더 많은 돈을 받습니다. 그리고 만일 대성당이 있다면 5 더컷을 추가로 받습니다.
이런 식으로 진행해서 최종적으로 돈이 가장 많은 플레이어가 승리하는 게임이죠.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느낀 것은 지금까지 다른 보드게임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자유도가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플레이어는 여러 항구를 돌면서 열심히 무역만 할 수도 있고, 선원으로 가득 채운 전함을 만들어 해적질을 하고 다닐 수도 있고, 빠르게 자원을 가져다 자기 항구에 대성당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뭘 하면 좋을지 별다른 가이드라인은 없고, 비슷한 선택지는 굉장히 많습니다. 요즘 게임은 흔히 퀘스트를 던져줘서 플레이어의 선택지를 압축해주곤 하는데, 세레니시마는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습니다. 시스템이 존재할 뿐, 플레이어들에게 관여하지 않습니다. 누가 무슨 액션을 선택하면 따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때가 되면 역병이 퍼져서 선원을 죽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지중해를 빙빙 돌아서 상품을 배송하면 배송에 걸린 시간만큼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GTA 같은 샌드박스 게임처럼 느껴지더군요. 때문에 뭐든 할 수 있는 막막한 상태로 시작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항구들의 창고가 점점 차고, 중립 항구도 줄어들기 때문에 차츰 뭘 해야 이득을 볼 수 있는지 계산하기는 편해집니다. 그리고 후반으로 갈 수록 무역으로 얻을 수 있는 돈 보다는 항구에서 점수 계산으로 벌 수 있는 돈이 더 많기 때문에, 후반에는 벌어놓은 돈으로 선원을 사서 창고가 가득 찬 항구를 빼앗는 세기말적 양상을 띄게 되더군요. 결국 이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역처럼 보이나, 그것은 군자금을 모으는 토대일 뿐 실제로는 얼마나 훌륭한 항구를 많이 보유하느냐가 되는 듯 합니다. 때문에 이 게임의 무역 시스템은 은근한 딜레마를 갖게 됩니다. 내 항구의 가치를 높이려면 내 항구의 창고를 채워야 하는데, 직접 하면 돈을 벌 수 없고, 돈을 벌려고 남의 항구를 이용하면 남의 항구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죠. 두 사람이 결탁해서 서로 이용해주면 아주 좋겠지만, 말에는 구속력이 없다고 매뉴얼에도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항구의 창고를 자기가 채우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케일러스나 로즈 오브 워터딥에서 자기 건물 이용하는 것과 흡사한 모습이죠.

결론적으로 플레이어들의 재량과 조합에 따라 양상이 크게 변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이런 게임은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인데, 그래도 세레니시마는 협잡의 재미, 그리고 배송 게임이 갖는 고유의 매력과 지중해 항해의 로망이 그냥 장난감으로 써도 좋을 컴포넌트와 함께 잘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누구든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을 듯 합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4인으로 인원이 약간 제한적이라는 것 하나 뿐이군요.


  • link
  • 신고하기

관련 보드게임

  • 관련 보드게임이 없습니다.
13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2013-03-11 22:17:59

    메모선장님 글 솜씨의 유려함이야 알고 있었지만, 정말 기름에 슥 담갔다가 뺀 것처럼 술술술 읽히는 리뷰군요. 잘 읽었습니다.
    • Lv.24 카린
    • 2013-03-11 22:50:30

    메모선장님 글은 언제봐도..잘 쓴다는..평론가 성향의 글 같은.디굴님 모임에서 글 보면 대부분이 그렇게 쓰시는듯..잘 쓴다는 말입니다.^^
    아쉬운점이 저랑 같군요...전쟁이 있는지라 5인이 하면 더 좋을텐데 말입니다..아주 대박 전쟁만 할텐데..
    하우스 룰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어차피 자기색 마커가 점수 선원만 있으면 되니깐요..
    • Lv.6 geonil
    • 2013-03-11 23:49:32

    어떻게보면 고전 보드게임들이 플레이의 자유도는 월등한것같기도 합니다.(물론 다른말로하면, 게임 플레이의 양상에대한 책임을 지지않는거지만) 제가 고전 보드게임들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구요.

    잘봤습니다. 어렴풋이 '수요공급' 시스템이라 창고에 없는물건 넣으면 돈 엄청벌고, 많은물건넣으면 돈 조금버는 그런 시스템인줄만 알고있었는데, 전혀 아니였군요;
    • 2013-03-11 23:54:38

    정말..너무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팬심을 확 불러일으키는 글재주를 가지고 계시네요..요즘 방송 왜안하시는지..^^
    • Lv.1 바닥군
    • 2013-03-12 10:31:16

    보드게임방 알바할 때 스티커를 붙였던 기억이 나네요.
    컴포넌트도 좋고 나름 참 재미있는 게임이었는데 이렇게 재판이 되서 반갑고, 메모선장님 글도 잘 읽었습니다.
    • Lv.1 메모선장
    • 2013-03-12 15:37:37

    jade/ 감사합니다. 술술술 읽어주셨다니 즐겁습니다.
    카린/ 5인 플레이를 하기에는 맵이 좁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약간의 하우스룰과 마커, 선원만 더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긴 합니다.
    minorityb/ 고전에 비하면 요즘 게임이 굉장히 치밀해졌기 때문에 옛날 게임이 자유도가 높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최신 게임들의 치밀함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어서 가끔은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하더군요.
    파란만장한참개암나무/감사합니다. 방송은 저도 계속하면 좋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바빠지기도 하고 소재를 공급하기도 벅차다보니 여유가 생길 때까지 중단하고 있습니다.
    바다 / 감사합니다. 전 경매가 싫어서 구판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재판에서 경매가 없어졌다고 해서 사보고 만족했습니다.
    • Lv.6 geonil
    • 2013-03-12 15:59:25

    아니면 플레이에 대한 간섭만 늘어났거나요...
    • Lv.2 눈누난나
    • 2013-03-12 16:33:15

    요즘 제가 집에서 집사람, 큰딸과 한참 돌리고 있습니다.. 처음엔 평화롭게 무역하다 어느순간 해적으로 돌변하기 때문에 약간 빈정 상할수도 있습니다. (울 딸내미 제가 갑자기 공격해서 항구를 막 빼았으니까 울더군요..ㅠㅠ) 이 점 조심해야 합니다..ㅋㅋ
    • Lv.1 거북아
    • 2013-03-12 17:45:13

    아~~ 즐거 웠습니다..
    벌써 한번 돌린듯한 느낌이네여....
    이 기대감 ^^ 절 흥분 시키고 있네요 ㅋㅋㅋ
    • Lv.4 ☆Felix★
    • 2013-03-12 19:05:08

    웬지 이제 이 게임 입고되고 바로 안사면 사기 힘들어질거 같네요 ㅎ
    잘 읽고 가요~ ^^
    • Lv.1 닥터플럼
    • 2013-03-12 21:37:10

    카린님댁에서 게임해보고도 지름신이 안왔는데 이글을 읽고 지름신이 오는군요;;;
    • 2013-03-12 22:16:40

    세레니시마 배송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1인 입니다. ㅎㅎ 소감글 너무나 잘읽었습니다.
    < 상인과약탈자 > 카드 한글화 작업이 안되어 아직 돌려보지 못한 상황에서 이 게임을
    기다리고 있는데 같은 대항의시대라도 조금 더 부담없이 편하게 돌릴수 있을거 같아
    기대감이 상당합니다. 정말 메모선장님 글 읽고 나니까 한판 돌린 느낌입니다. ^^
    • 2020-05-29 13:32:00

    안녕하세요. 질문이 있어 댓글 달아봅니다.
    1. 이동중, 판매중, 중립지역점령중 봉쇄를 당할 경우 전투에 돌입하여 승리하면 이동, 판매, 중립지역 점령을 재개할수있는건지 아니면 이겨도 그대로 턴이 종료인지요?

    2. 이동중, 판매중 봉쇄의 경우 갤리선들의 선원이 더 많아야 선언할수있다고 되어있는데.. 활성화배는 같은 구역에 자기배가 있더라도 전투에 참여하는건 활성화 배 만이라는건 알겠는데.. 봉쇄하는 사람은 한 구역내 자신의 여러배를 합하여 봉쇄선언 조건이 되고 전투도 여러배 모두 참가 가능한건가요? 아니면 선언조건은 합쳐서. 전투는 한척씩 차례로.인가요?

    3. 중립지역점령중 봉쇄는 플레이어 수의 제한이 적혀 있지 않은데 그럼 수가 같거나 적어도 봉쇄선언이 가능한가요?

베스트게시물

  • [콘텐츠] [만화] 일단사는만화 2 - Lv.10
    • Lv.11

      당근씨

    • 7

    • 249

    • 2024-11-18

  • [자유] 엄마가 정신차리지 않으면 보드게임 페스타에서 일어나는 일
    • Lv.10

      뽀뽀뚜뚜

    • 7

    • 811

    • 2024-11-18

  • [자유] 기업 이미지가 중립이 아닌 한쪽으로 치우친 이미지로 가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 Lv.7

      플리페

    • 9

    • 527

    • 2024-11-14

  • [자유] 왜 충성 보드게이머를 폐륜아으로 몰고 가신 거죠?
    • Lv.11

      vallentine

    • 9

    • 466

    • 2024-11-14

  • [자유] 뒤늦게 사건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코보게에게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 Lv.3

      두이니

    • 9

    • 437

    • 2024-11-16

  • [자유] 묻고 싶습니다. 특정 단어가 게임 디자이너의 의견인가요?
    • Lv.18

      닥터M

    • 19

    • 646

    • 2024-11-13

  • [자유] 코보게 명예 훼손으로 신고해도 되나요?
    • redhoney

    • 9

    • 661

    • 2024-11-12

  • [자유] 코보게의 입장문에 대해
    • Lv.23

      leonart

    • 12

    • 800

    • 2024-11-13

  • [자유] 코보게 응원합니다. 모든 혐오와 편견에 반대합니다.
    • Lv.14

      지금이최적기

    • 11

    • 966

    • 2024-11-12

  • [자유] 게이머스 게이머들이 전부 매도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 한마디 올립니다.
    • Lv.11

      꿀떡이

    • 8

    • 1043

    • 2024-11-13

  • [자유] 축하합니다, 코리아보드게임즈.
    • Lv.27

      WALLnut

    • 8

    • 637

    • 2024-11-12

  • [자유]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김미란 교수(대한폐경학회 회장)
    • Lv.19

      라이클럽

    • 11

    • 540

    • 2024-11-13

  • [자유] 응원합니다.
    • Lv.27

      방장

    • 10

    • 705

    • 2024-11-11

  • [자유] 그동안 너무 초월번역이라고 띄워주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 Lv.34

      크로스21

    • 8

    • 391

    • 2024-11-12

  • [자유] 해명문 잘 봤습니다. 정말 화가 나네요.
    • Lv.35

      로보

    • 15

    • 767

    • 2024-11-12

게임명 검색
Mypage Close My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