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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 모임게시판 초등학교 보드게임 교실
  • 2014-07-23 10:58:29

  • 0

  • 1,601

Lv.1 빼빼로
<블로그 글을 그대로 가져와서 반말입니다. 죄송.>
 
아침 10시, 초3 아들이 다니는 교실을 찾아갔다. 한 손엔 보드게임을 가득 들고.
어느 날 아들 선생님과 이야기하다가 보드게임 이야기가 나왔는데, "교실에서 한번 보드게임 시간을 가지면 좋겠네요."라고 제안하셨던 것이다.
 
나 와에도 아내,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 한 분이 도우미로 참여하셨다. 선생님과 학부모님께 게임 진행 방법을 설명해주기 위해 30분 먼저 만났다. 나름 공들여 작성한 규칙 요약지도 드렸다. 혹시라도 게임 도중 헷갈리면 어떡할까 긴장된다고 하셨다. 아내도 옆에서 홀로 쿵쿵짠 연습.
 
시간이 되자, 먼저 준비한 ppt를 보여주며 오늘 할 게임에 대한 간략 설명과 함께 게임 태도에 대해 말해주었다.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이 즐기고, 또 다른 사람이 즐기도록 돕는거야."
원래는 아이들에게 게임을 모두 소개해주고 원하는 모둠을 선택하라고 할 예정이었는데, 선생님께서 직접 모둠을 편성하는 카리스마(?)를 발휘하셨다. 아이들의 상성과 궁합을 고려하셔서 모둠을 나누시는 것 같았다.
 
준비한 게임은 총 8가지. 학생들을 4 모둠으로 나누고 각 모둠별로 2개의 게임을 했다.
피트 - 픽 피크닉 : 6명 + 선생님
정글 스피드 - 위너스 서클 : 5명 + 학부모 도우미
쿵쿵짠 - 티켓 투 라이드 : 5명 + 아내
픽셔너리 - 사보티어 : 9명 + 나
 
아내가 책상을 모두 교실 중앙으로 밀고 네 모서리의 바닥에 앉아 게임하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Good idea!"
내 모둠의 경우, 아이들을 3명씩 3 팀으로 나눠서 픽셔너리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처음엔 차분하고 꼼꼼하게 그렸는데, 나중에 게임 흐름을 눈치채고는 그림 속도가 빨라졌다.
약 40분 동안 한 게임을 끝내고 사보티어를 시작했다. 다행히 규칙을 다 알아듣는 분위기.. 여기서도 초반엔 사이좋게 길을 놓다가 나중에는 의심가는 한 친구에게 방해 카드를 몰아주며 견제에 열을 올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량한 광부였다는.T T 그래도 세 번 모두 광부의 승리로 돌아갔다. 마지막 판에서는 계속 사보티어만 되어서 금을 못 만져봤다는 원성과, 반대로 사보티어 한번 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청원이 있어서 역할 카드를 내가 직접 정해서 나눠주었다. 사보티어 옆에 앉아 허리를 쿡쿡 찌르며 조심스레 조언을 했건만 또 다시 광부 승리.
 
 
내 모둠의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게임을 할 수 있을만큼 적응이 되자, 내가 전체 진행의 책임자라는 걸 그제서야 인식하고 다른 모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았다. '규칙대로 제대로 하고 있을려나...' 
첫째 모둠은 피트를 나중에 하고 픽 피크닉을 먼저 한 모양이었다. 게임하던 한 아이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너무 재미있어요.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다행이다.
둘째 모둠은 정글 스피드가 아직도 안 끝났다. 여러 판을 돌린 모양이다. 곧이어 위너스 서클이 돌아갔는데 주사위 굴림에 탄식과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아이들의 이해력을 고려하여 간략한 주사위 굴림을 적용했는데 괜찮은 시도였다.)
세째 모둠은 비교적 조용했다. 계속해서 티켓과 지도를 번갈아 쳐다보며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아내에게 물어보니 재미있게 했다고 했다.
다행히 준비했던 모든 게임이 빛을 보았다. 아니, 사실 빛이 나는건 아이들의 얼굴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실수해서 얼굴을 붉히고, 옆 친구와 속닥이며 작전 구상.. 그 귀엽고 사랑스런 모습이라니.
 
 
 
 
 
예정된 90분이 다 넘어가는 데도 일어서는 모둠이 없었다. 어차피 다음 시간이 점심 시간이라 좀 여유가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한 게임이 끝나기 무섭게 "아까 했던거 또 해요."라며 두 게임을 반복했다. 결국 두 시간을 꼬박 채우고 나서야 정리가 되었다.
게임을 정리해서 나오는데, 아이들이 재미있었다고, 고맙다고, 담에 또 오라고 연신 인사를 했다.
 
평소 나더러 애들데리고 맨날 게임만 한다고 투덜거리곤 하던 아내가 집에 돌아오더니 하는 말,
"우리 집에다 보드게임 교실을 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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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Lv.1 빼빼로
    • 2014-07-23 11:00:31

    비형스라블님의 포스팅과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4-07-23 11:46:17

    위너스서클 같은 나름 레어를 아이들 손에 맡기시다니 용자시네요.. ㄷㄷㄷ제 로얄터프는 아이들 손에 아작이 나서 D급 물건이 되버렸.. ㅎ 그래서 저학년 아이들에겐 왠만하면 절판겜은 못내놓습니다..절판겜은 조금 고학년이거나 저학년중 나름 숙련자(?)에게만..
    • 2014-07-23 12:11:23

    이제 아이들만이라도 스마트폰에서 해방을~~
    보드게임 문화 전도 열심히 응원합니다!!
    • 2014-07-23 14:00:58

    요즘 아이들은 흙바닥에서 땅따먹기를 하거나 실뜨기, 술래잡기같은 아날로그 놀이같은건 거의 안 할 겁니다.보드게임은 그런 면에서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죠..
    • Lv.2 비형 스라블
    • 2014-07-24 00:28:33

    아이들에게 유쾌하고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D결국, 보드게임을 통해서, 아이들은 게임판 너머의 다른 아이들을 만날 기회를 가지는 것일테니까요. 아이들을 위한 멋진 일, 앞으로도 계속 하실 기회가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하하)
    • Lv.1 뒹굴쟁이
    • 2014-07-24 08:36:54

    재밌게 좋은시간을 보냈겠네요. 위너스 서클은 저도 못해본건데 ㅎㅎ 애들이 부럽네요.다만 한가지 ....  혹시 담임 선생님께 아이들 사진을블로그나 타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다고 말씀 하셨는지..요즘 개인정보보호법때문에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이런 사진같은거 인터넷에 올리려면 개인정보관련한 동의서를 받아야 하거든요..제가 그 업무를 한적이있어서 살짝 걱정이되네요...
    • Lv.1 빼빼로
    • 2014-07-24 12:34:22

    아, 그렇군요. 한번 여쭈어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Lv.1 빼빼로
    • 2014-07-24 12:43:33

    갖고 놀다가 낡고 닳아지는 건 게임 입장에서도 영광일 것 같아서..ㅎㅎ 
    • Lv.1 빼빼로
    • 2014-07-24 12:44:21

    네. 스마트폰 게임의 좋은 대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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