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 한국어판이 발매될 예정입니다.

라이너 크니치아의 게임은 테마와 게임 시스템이 아주 약한 상관관계만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그렇고 지금 소개하려는 사무라이 역시 테마와 게임 시스템 간의 상관관계가 희박한 편입니다. 오다 노부나가나 도쿠가와 이예야스같은 전국시대 다이묘가 뛰쳐나올 것만 같은 게임이지만, 한스 임 글뤽에서 처음 발매된 사무라이에는 게임의 배경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막연히 '전국시대'와 '사무라이'로 대표되는 일본의 이미지만을 가져왔을 뿐이죠. 이번에 새로 나오는 FFG에서는 게임 규칙서에 게임의 배경에 대한 문단이 있는데, 오다 노부나가 등이 활약하는 전국시대보다 더 이전인 남북조 시대 직후의 혼란상을 게임의 배경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아마 게임 작가의 원래 의도와는 상관없는 새 편집팀의 설정일 것으로 추측되는군요. 사무라이 역시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인지 게임성에 비해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1998년 처음 발매돼 2002년 경에 몇몇 보드게임 카페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소개됐지만, 이미 게임이 독일 시장에서 철수하고 있었던 관계로 널리 보급되지 못했습니다. 프랑스판을 냈던 데카르트 에디션이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흘러들어온 프랑스판 재고가 한국 게이머의 수요를 미미하게나마 충족시켜줬을 뿐이죠. 사무라이는 독어판이 단종됐음에도 불구하고, 2006년 스칸디나비아판, 2007년 브라질판, 2008년 폴란드판, 2010년 일본판 등 여러 퍼블리셔들로부터 꾸준히 선택받아 여러 판본이 나왔습니다. 이는 사무라이가 그저 너무 일찍 시장에 발매됐었다는 간접적인 증거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장 상황이 많이 바뀐 현재, 미국 퍼블리셔 팬터지 플라이트 게임즈에서 추상적인 모습을 많이 띠었던 기물들이 좀 더 디테일한 플라스틱 말로 바뀌는 등 그래픽이 완전히 바뀐 새로운 판본으로 재발매됐습니다.

사무라이의 게임판의 참가자 수에 따라 일본 열도 중 얼마만큼이 사용되는지가 결정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무라이는 참가자의 수와 상관없이 게임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게임의 목표는 경제력, 군사력, 종교의 지지라는 극도로 추상화된 3가지 영역의 상징물을 모으는 것입니다. 플레이어는 자기 차례에 타일 하나를 놓습니다. 타일을 놓음으로써 그 타일에 표시된 숫자만큼 표시된 상징물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도시 주위의 육지 타일이 둘러싸일 때, 그 도시에 놓인 상징물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높은 플레이어가 해당 상징물을 가져가는 식입니다. 모든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타일 세트의 구성은 똑같으나, 무작위적으로 뽑은 5개 중 1개를 선택하게 되기 때문에 뽑힌 타일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상징물을 많이 모으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 게임은 지금까지 명작이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게임에서 승자 결정을 위한 점수 계산 규칙은 매우 독특한데, 3가지 영역 각각에서 해당 상징물을 가장 많이 모은 플레이어가 해당 분야의 지도자 토큰을 받습니다. 누군가가 지도자 토큰을 2개 이상 가진다면 그 플레이어가 승리하지만, 그런 플레이어가 없다면 사무라이만의 고유한 동점자 처리 규칙이 빛을 발합니다. 각자 자기가 지도자 토큰을 얻는 데 사용된 상징물이 아닌 다른 분야의 상징물 개수를 비교합니다. 그마저 같다면 지도자 토큰을 얻는 데 사용된 상징물까지 포함해 총 개수를 따집니다. 단순히 상징물을 가장 많이 모으기만 한 플레이어는 어느 분야에서도 지도자 토큰을 받지 못해 게임에서 승리할 수 없는 경우도 나옵니다. 승리에 필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리메이크 된 노래에서는 그 노래가 나왔을 당시의 유행에 의존했다기 보다는 시대를 초월한 어떤 힘을 느낄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재발매되는 보드게임에서도 그런 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단종으로 인해 잠자고 있다가 다시 돌아온 고전 게임 사무라이를 통해 시대를 초월한 명작을 다시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