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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 리뷰 및 후기 위대한 게임의 시작, 연금술 아카데미(Alchemist)
  • 2014-12-20 22: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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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7 Equinox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는데, 보드게이머 십년이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운이 좋은 탓이겠지만, 주변에 십년차 이상의 보드게이머들이 꽤 있습니다. 함께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가이오트님과 전심님도 보드게이머로서 십년을 훌쩍 넘기신 분들이고, 지금은 재야, 혹은 음지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지만, 여전히 보드게이머로서의 삶을 접지 않으셔서 십년을 넘기신 분들이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의 공통된 특징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별로 없네요. 게임의 취향도 제각각이고, 선호하는 스타일도 다릅니다. 물론, 어지간한 게임들에서 모두 상급 내지는 최상급의 재미를 끌어주시는 분들이기에, 막상 테이블에 앉히면 그 순간을 잘 즐기시긴 합니다. 그래도 그들의 선호도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지요.


공통분모를 찾아가다보니, 한 가지가 나오긴 합니다. 그건 바로, 게임구매가 꽤나 까다로워진다는 겁니다. 무턱대고 질러대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서 어느정도 안정기에 접어든 탓일 수도 있고, 이제는 365클럽을 지나 730클럽도 넘어가서 더이상 공간적으로 수용이 불가능해진 탓도 있고, 모든 걸 다 처분하고, 그저 오래 즐길 게임만 남긴 탓일 수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이들이 게임의 구매를 위해 지갑을 여는 건, 매우 까다로운 필터링을 거친 결과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아직도 질풍노도의 에너지가 남아서 갑작스런 세일 광풍에 휘말리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이들이 게임구매를 위해 선뜻 지갑을 여는 게임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얼마전 전심님이 팟캐스트 녹음 도중, 은연중에 비치신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그걸 [노회한 보드게이머가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만, 전심님이 게임을 평가하는 기준이 슬며시 새어나왔던 것이지요. 적어도 전심님이라는, 이제는 게임 구매를 거의 안하는, 무위의 경지에 도달한 강호의 고수가 호평하는 게임은 이런 거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한번 소개하고자 합니다.


http://pds.joins.com/news/component/newsis/201311/12/NISI20131112_0008960094_web.jpg
(본 이미지는 본문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름)

먼저, 시스템이 참신해야 합니다. 


이전의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게임 시스템이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공해서 참신성을 극대화하는 게임이면 전심님께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물론 이로 인해 이후 게임의 주류main stream을 바꿔놓는 정도의 영향력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요. 


이에 해당하는 게임이라면, 프랜시스 트레샴의 문명과 18xx시리즈, 크니치아의 경매 시리즈, 윌리엄 아틸라의 케일러스 등이 있겠네요. 


다음으로는, 주된 시스템은 간결해야 합니다. 


기존 게임들에게서 이런저런 요소들을 차용해와서 지지고 볶고 섞어내는 게임은, 불필요한 골고문을 야기한다고 해서 전심님이 싫어하십니다. 하드 코어 게이머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는 슈테판 펠트의 게임들이 주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해서, 정작 전심님은(본인이 하드코어 게이머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고 있지 않더군요.


크니치아의 게임들이나, 알렉스 랜돌프, 미하엘 샤흐트의 게임들이 이렇게 단순한 시스템으로 그 정수를 뽑아내는 경우가 많아서 전심님이 좋아하더군요.


마지막으로는, 테마성이 잘 살아있어야 합니다. 


소문난 독서광, 그 중에서도 소설을 몹시도 사랑하는 전심님이다보니, 소설 기반의 테마 위주 보드게임에 아주 열광하십니다. 특히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왕좌의 게임 시리즈, 그리고 SF테마의 게임이면, 일단 가산점 크게 먹어주고 들어가지요.


문제는 이게 그냥 테마만 옅게 씌워진 것이 아니라, 시스템과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는 겁니다. 게임 속에서 게이머에게 시스템적으로 허용된 행동이, 테마적으로도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가와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이상의 관문들 하나하나만도 까다로운데, 이 세가지 관문을 모두 통과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만큼이나 까다롭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접한 어떤 게임이 이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 같네요. 어쩌면 전심님의 지갑을 열어제치는 역사적인 쾌거를 이룩하게 될 그 게임은 바로…


https://cdnfile.divedice.com/_data/migration/shop/gboard/data/cheditor4/1412/344a0ef1e088f8580a3c4b5564ce852d_1418091837.63.jpg
(출처: 다이브다이스)

이 게임입니다.


동일 카테고리에 선점된 이름이 있어서 한글판 명칭은 “연금술 아카데미”가 되었습니다. 누가 제안한 이름인지 몰라도 참 잘 지은 것 같네요.


이 게임은 시스템이 참신합니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추리 시스템이거든요. 


보통의 추리 게임들이 사라진 뭔가를 찾아내는 방식, 즉 소거법을 이용합니다. 수도원의 미스테리, 클루, 슬러스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추리게임들은 모두, 전체 후보군 가운데 사라진 하나를 찾아내는 방식입니다. 전체 후보군 리스트 가운데, 정답이 아닌 것들을 차근차근 지워나가다보면, 안 지워진 하나가 남게 되고, 그것이 정답인 방식입니다. 따라서 고도의 정신 노동보다는 단순 작업이나, 운에 좌우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셜록 홈즈, 트레저디 루퍼 등 시나리오 위주의 추리 게임은 좀 경우가 다릅니다만, 이 경우는 정답을 알고나면 게임의 재미가 반감한다는 단점이 존재하지요. 


http://cf.geekdo-images.com/images/pic2325793_md.jpg
(출처: 보드게임긱)

연금술 아카데미의 추리 구조는, 물질의 속성을 찾아내는 과정이므로, 감춰진 하나를 찾아내는 방식이 아닙니다. 물론, 추리 과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은 소거법이 맞습니다만, 단순 반복에 의한 소거법이라고 볼 수 없지요. 어느 정도 개연성을 가지고 실험과 관찰을 반복해야 원하는 결론을 얻을 수 있으므로, 정신 노동을 필요로 합니다.


시나리오 구조도 아니므로, 당연히 Replayablity가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추리 과정에서 첨단 기기가 동원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제는 너무 흔해져서 그다지 신기하게 여겨지지 않는 모양입니다만,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인식하는 것은 몇 해전까지 꽤나 희소성 있는 기술이었습니다. 바코드나 QR코드처럼 본래 디지털 신호였던 것을 규격화한 아날로그 신호는 오래전부터 인식이 되었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자동차 번호판 인식같은 것은, 꽤나 고가의 기술장비였거든요. 그런데, 그 기술, 즉 아날로그 신호를 카메라와 같은 광학기기로 형태를 인식하는 기술이 이제는 보드게임에 접목이 되었더군요. 바로 이 게임에서요.


http://cf.geekdo-images.com/images/pic2275968_md.jpg
스마트폰이 게임의 일부 (출처:보드게임긱)


물질의 속성을 파악하는 과학실험의 도구로 여러분들 주머니 속의 수퍼 컴퓨터가 동원됩니다. 재료 카드를 놓고,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통해 인식을 시키면, 원하는 실험의 결과를 얻게 되지요. “뾰로롱~”이라는 효과음과 함께. 


단순히 게임 기믹으로서의 가치도 매우 높습니다만, 시스템과의 조화도 매우 경이롭습니다. 고도의 호기심 유발 효과와 그 이상의 역할을 해줍니다. 참신한 시스템을 말함에 있어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http://cf.geekdo-images.com/images/pic2250780_md.jpg

참신성과 간결함의 두 마리 토끼는 동시에 잡는 것이 어렵습니다. 보드게임의 역사는,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의 시작과 그 궤를 같이하는 만큼, 어지간한 게임 시스템은 우리네 선조들이 한번씩 다 해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참신함을 추구하다보면, 이런 저런 게임의 요소들을 버무리고, 섞어서 복잡하게 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슈테판 펠트의 게임이 시스템의 참신함으로 호평을 받으면서도, 간결하다는 평은 듣지는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참신한 시스템으로 이목을 사로잡은 이 게임은, 그런데, 그 골격을 구성하는 구조만큼은 놀랍도록 간결합니다. 


물질의 속성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해야 할 일들을 떠올려 봅시다.


1. 물질의 재료를 채집해야 합니다. 2. 당연히 실험을 해야겠지요. 그리고 3. 그 실험의 결과를 학계에 발표해야 하지요. 물론, 연구에는 돈이 듭니다. 때로 4. 물약을 팔거나, 5. 그냥 재료를 날로 팔아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동료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몰래 넘보거나, 학계의 권위자로서 논문에 무게를 싣고 싶어질 때가 있겠지요? 이를 위해 6. 적당한 소도구들을 구매하고 싶어질 겁니다. 게다가 사이비 학자들이 엉터리로 논문을 작성할 때, 정의의 이름으로 이를 용서할 수 없을 겁니다. 학위 해산 청구 심판, 아니 7. 논문 반박을 통해, 학계를 어지럽히는 종북의 무리들을 척결해야 합니다. 


http://cf.geekdo-images.com/images/pic2264857_md.jpg
내가 할 수 있는 행동들이 표시되어 있는 보드 (출처: 보드게임긱)

번호가 붙은 행동들이 게임의 전부입니다. 주사위를 굴리거나, 복잡하게 만칼라 슬롯을 돌릴 필요도 없고, 카드 드래프트를 하는 것도 아니지요. 그냥 저 행동들 가운데 필요한 행동들을 설계하고 시행하면 됩니다. 간결하지요?


게다가 이 행동들은 모두 테마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실험하기 위해 소환한 조수가, 물약 먹고 상태 이상에 걸리면, 이후 실험할 때마다 보상금을 주어야만 하는데, 이 행동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더라도 게임을 하는 모두가 곧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조수에게 임상실험 참가 보상금을 줄 수 없거나, 그게 아까워서 직접 마셔보는 경우, 그 부작용을 몸소 겪게 되는 점도, 테마와 이어져 있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연금술 아카데미의 게임 제작사인 CGE는 본래, 게임 시스템의 단순함을 포기하더라도, 테마와의 연계에서 오는 재미만큼은 집착이라고 봐도 좋을만큼 확실하게 잡는 회사인데, 이 게임에서도 이러한 면모는 고스란히 보여집니다.


http://cf.geekdo-images.com/images/pic2330849_md.jpg
게임 내 등장하는 재료들과 그 속성 (출처:보드게임긱)

시스템이 탄탄한 게임은 전술을 겨루는 게임인 경우가 많고, 테마성이 짙은 게임은 가가호호하는 파티게임인 경우가 많은데, 이 게임은 그 둘의 접점을 찾은 것 같네요. 잘 만들어진 추리게임 특유의 두뇌 노동을 요구함과 더불어, 중간중간 폭소를 야기하는 요소들이 게임 내 듬뿍 담겨있으니 말이지요.


저는 프랜시스 트레샴이라는 작가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가 만들어낸 게임은 모두 게임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거든요. 흥미로운 점은, 그의 게임 가운데 하나는 매우 많은 작가들에 의해 변조되어 수많은 오마쥬가 발표된 반면, 다른 하나는 오롯이 그 게임 하나만 홀로 서 있습니다. 전자는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고, 후자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전자는 18XX시리즈이고, 후자는 문명입니다. 둘 다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었던 훌륭한 게임이지만, 전자의 경우, 다른 게임에서의 응용이 가능했던 반면, 문명은 섣불리 다른 게임에 이식이 어려웠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자체로 높은 완성도를 지니는 게임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http://cf.geekdo-images.com/images/pic2330850_md.jpg
물약을 사갈 용사들과 조력자들 (출처: 보드게임긱)

2005년 발표된 케일러스는, 이후 등장하는 많은 게임에서 응용되는 일꾼놓기의 신호탄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주류를 바꾼 게임이라는 점에서 위대한 게임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부족함이 없지요.


[연금술 아카데미]는 어떨까요? 아마도 케일러스나, 18XX이 되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어쩌면 트레샴의 문명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자체로 높은 완성도의 게임이니까요.


https://cdnfile.divedice.com/_data/migration/shop/gboard/data/cheditor4/1412/344a0ef1e088f8580a3c4b5564ce852d_1418091837.63.jpg

이렇게 훌륭한 게임을 발굴해서, 많은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 한글판을 발행하는 코리아보드게임즈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토록 척박한 환경에서 풍요로운 유희문화를 향유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리뷰를 한글판 보드게임의 발행을 위해 애써주시는 모든 분들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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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2014-12-21 05:20:01

    너무 기대되네요. 앞으로 6개월을 어떻게 기다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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